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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영하 4도의 추위 속에 13세 소녀는 길 건너편의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을 꼭 다물고, 주먹 쥔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꼿꼿이 앉아 꿈 많은 자신의 인생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해 버린 나라의 대사관을 향해 수평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절망과 분노를 속으로 지그시 삼킨 얼굴이었다.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다. 가슴의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가 짓밟히지 않는 새로운 생명으로 환생하는 것은 모든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피맺힌 소망이다.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씨의 제작의도대로 그것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소녀의 두 발 위에는 털목도리가 둘러지고 오른편 빈 의자에는 꽃묶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초현실 같지만 어김없는 현실이었다. 1992년에 시작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시민모금으로 제작된 청동 소녀상의 이름은 ‘평화비’다.

 소녀상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야 할 일본 정부는 소녀상의 철거를 한국 정부에 요구한다. 빈협약에 주재국은 외국 공관의 안전과 품위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규정을 들어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 소녀상 어디에도 일본제국의 천인공노할 만행 어쩌고 하는 규탄의 말 한마디가 없음에도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들의 인간적 존엄성이 짓밟힌 사실보다는 그들 대사관의 안전과 품위를 먼저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이 거기 서 있다는 것 말고는 일본대사관의 안전을 위협하지도, 그 품위를 떨어뜨리지도 않는 소녀상의 철거 요구를 거절한 것은 당연하다. 소녀상은 정부의 참여 없이 순수 시민모금으로 건립된 것이어서 정부가 철거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그런 외교적 수사(修辭)를 떠나서, 평화비를 거기 세운 것은 위안부 할머니와 시민들의 합당한 권리요, 의사표시다. 전혀 정부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문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위안부 출신 할머니와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일본 정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저지른 인류에 대한 범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그런데도 속이 좁아터진 일본 사람들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두 나라 간의 청구권협정 체결로 식민 지배의 모든 문제가 청산되었다는 입장에서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일본을 제외한 세계 여론은 일본 정부가 아직도 위안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96년 일본의 배상을 촉구한 것, 미국과 유럽 의회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고, 한국과 대만과 필리핀 등 아시아 여성들에게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다는 준엄한 심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인권의 모체가 되는 자연법에 근거한 인류의 양심의 법정이 내린 판정이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 중에서 생존자는 이제 63명밖에 안 된다. 그들 모두 초고령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전적 배상보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다. 사과 한마디 듣고 상징적으로라도 전쟁터의 성노예로 짓밟힌 여성의 존엄성을 되찾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요구를 거절하는 나라가 어찌 선진 문화국가, 경제대국, 아시아의 강자 대접을 받겠는가.

 한국 정부는 65년의 청구권협정 3조 1항에 따라 일본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협의를 제안했다. 일본이 거부하면 3조 2항에 명시된 제3자 중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이 응하지 않으면 성사가 안 된다. 최선의 길은 주말에 일본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할 대승적인 결단의 요구가 결실을 보는 것이다. 정부는 위안부 배상 문제 해결에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일본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도덕적인 짐을 내려놓는 게 국가 이익에 합당할 것이다. 그것이 경제대국의 도덕적 책임이다. 종전(終戰) 이후 90년대 초까지의 냉전기간 중에는 위안부 같은 인간의 문제는 안보의 무게에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 이후의 세계는 생활의 질과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가치와 정책과 담론의 우위에 둔다. 일본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면 지금같이 고립 속의 침몰과 표류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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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