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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 병상에서 쓴 이임사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임명장은 “구조조정 업무를 진두지휘하라”는 위임장이나 마찬지였다. 1998년 4월,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오른쪽). 가운데는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 서리. [중앙포토]

영 기분이 안 좋다. 배가 쥐어짜듯이 아프다. 어지러울 정도다. 진땀이 난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공교롭게 이런 자리에서…. 2000년 8월 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중식당. 이규성 전 장관과 진념을 앞에 두고 낯을 펴기가 어려웠다. 진념은 재경부 장관이 되기 직전이었다.

 “오늘 저는 술 안 마시겠습니다.”

 이 전 장관의 표정이 ‘왜’냐고 묻는 듯했다. 두주불사 이헌재가 술을 다 사양하다니. 놀랐을 것이다. 나도 평생 이런 말은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소?”

 “아닙니다. 별일 아닙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2차 가서 얘기 좀 합시다.”

 공교롭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나는 이미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다. 곧 개각이 있을 거란 소문이 파다했다.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가 교체 1순위라는 소문이었다. 진념은 강력한 후임 후보였다. 그 자리에서 낯을 찌푸리고 술을 사양했으니 오해를 살 만했다. 밤새 아픈 배를 끌어안고 끙끙대다 다음 날 아침 영동세브란스를 찾았다. 고등학교 친구 김현승이 부원장으로 있는 병원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급성맹장인 것 같은데…. ”

 수술을 할 의사가 없었다. 마침 의약 분업에 반대해 의사들이 죄다 파업 중이었다. 김현승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의사를 찾으러 다녔던 모양이다. 김현승은 “사람이 죽어가는 일이니 수술부터 하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간신히 의사를 구해 수술에 들어간 시각이 정오. 나는 12시간 넘게 통증을 참느라 탈진 상태였다.

 하필 개각 직전에, 의약 분업으로 의료계가 마비된 이때에, 교체 대상 재경부 장관이 수술실에 들어가다니. 참 공교로운 일이다. ‘하긴 이 뿐이랴. 발버둥쳤던 지난 2년 반이 다 공교로운 것을….’ 마취로 정신이 아득해질 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랬다. 야인으로 살다가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났고, 그 한복판에서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DJ정권과는 인연 한 줌, 지분 한 조각 없었다. 그리고 2년여가 흘렀다. 정권이 내게 맡겼던 권한들이 조금씩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 이젠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낸 것도 그래서였다.

 하기야 청와대로선 내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당시 내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는 ‘위기’ 아니면 ‘구조조정’이었다. DJ 정부는 더 이상 내 이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했다. 내가 사라져야 ‘위기’도 ‘구조조정’도 끝날 터였다. 이미 DJ는 ‘IMF(국제통화기금) 조기 졸업’을 선언해 놓은 상태였다.

 수술 이틀 뒤, 병상에서 개각 소식을 들었다. 예상대로 후임은 진념이었다. 직원을 시켜 이임사를 전했다. 이임사는 병상에서 구술했다.

 ‘ 구조조정은 일과성이나 일회성에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닌, 연습이 용납되지 않는 냉엄한 진검승부다.’

 진검승부. 나는 이 말을 자주 썼다. 이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마음을 벼렸다. 구조조정이 아니어도 정책에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라의 명운과 회사의 존립, 서민의 일자리가 걸린 구조조정임에야. 이임사는 직원들에게 전하는 말로 마무리했다.

 ‘외형 성장의 화려함이나 안락하고 평탄해 보이는 길에 유혹받지 말고 안정 기반을 구축하는 빛 안 나고 인기 없는 일에 전념해 달라. 외로운 마음이나 서운한 심정이 없을 수 없겠지만 긍지를 가지고 시장경제의 뿌리를 내리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해 달라.’

 외로운 마음. 서운한 심정. 내가 아는 한, 이것이 관료의 숙명이다. 미친 듯이 일한다. 밤을 꼬박 새울 때도 많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긍지 하나다. 그렇지만 문득문득 찾아드는 허허로움, 관료의 삶은 이 허허로움과의 싸움이다.

 이임 절차는 간단했다. 인수인계랄 것도 없었다. 과천에서 가져온 ‘인수인계서’에 사인 한 줄. 그게 전부였다. 조세연구원에서 같이 일했던 최흥식이 문병을 와선 괜히 눈물을 비쳤다. 나도 공연히 울적해졌다. DJ정권의 ‘구조조정 전도사’ 이헌재의 2년 반은 이렇게 끝났다.

만난 사람=이정재 경제부장, 정리=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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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