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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양복점 밤엔 대리운전 … 하루 18시간 일했는데 빚만 3000만원 늘어

낮엔 서울 청계천 광장시장에서 맞춤 양복점을 운영하고 밤엔 대리운전을 하는 정종윤씨. 57세의 나이에도 가족의 생활과 자녀의 학비를 위해 밤낮없이 뛴다. 그가 종로의 겨울 밤거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대리운전 요청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정종윤씨가 광장시장에 있는 자신의 가게 ‘원스패션’에서 양복을 재단하는 모습. 1982년부터 30년 가까이 맞춤 양복점을 운영한 그는 “요즘에는 경기가 나쁜 데다 기성복을 찾는 흐름때문에 한 달 중 반은 손님 없이 공친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낮엔 양복점, 밤엔 대리운전. 나이 50줄에 다가선 2003년부터 하루 17~18시간을 뛰었다. 환갑을 3년 앞둔 지금도 그렇게 일한다. 그래서 얻은 건 빚, 잃은 건 점포 반쪽이었다.

영세 자영업 벼랑 끝에 몰리다 <중> 나는 한평생 워킹 푸어러(working poorer)
‘워킹 푸어러’ 정종윤씨 잃어버린 8년



 서울 청계천 광장시장에서 양복점 ‘원스패션’을 운영하는 정종윤(57)씨. 그는 5년 전인 2006년 9월 중앙일보의 ‘워킹 푸어(working poor), 자영업자의 4계절’ 시리즈에 소개됐던 인물이다. ‘워킹 푸어’란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일컫는 말. 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더 살기 힘들어진 ‘워킹 푸어러(working poorer)’였다. 20㎡(6평)쯤이던 점포는 2007년 초 일찌감치 반으로 줄였다. 원래 점포의 반은 양복점이고, 나머지 반은 와이셔츠 원단 가게였다. 그러나 2006년부터 조금씩 경기가 꺾이면서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맞춤보다 기성복을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 결국 임대료를 아끼려고 점포를 축소했다. 1982년 시작한 ‘주종목’ 양복점만 놔두고 원단 가게는 정리했다.



 생활비에 두 딸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 빚은 약 2000만원에서 5000만원가량으로 늘었다. “학비 절반을 대줄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딸들이 별도로 빌린 학자금 융자도 있어요. 그거 뺀 부채가 이만큼이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큰딸은 올 초 졸업해 중소 문구업체에 들어갔고, 작은딸은 대학 4학년 재학 중. 정씨는 “큰애 월급이 있지만 학자금 융자 갚고, 제 교통비와 밥값 내고 나면 생활비에 보탬을 줄 정도는 아직 아니더라”고 말했다.



정씨가 등장했던 본지 2006년 9월 19일자 6면 ‘워킹 푸어’ 자영업자의 4계절.
 그는 “지난 5년 내내 월말이 무서웠다”고도 했다. 전기·수도·가스 요금 같은 각종 공과금 고지서 때문이었다.



 지금은 5년 전보다 더 노력을 한다. 대리운전을 하고 오전 6시에나 집에 들어가는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이에 더해 스스로 휴일을 없앴다. 지난해부터는 1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밤에 운전대를 잡았다. 그 전엔 작고한 아버지의 제삿날과 모친의 생일, 이렇게 이틀은 반드시 손을 놓던 대리운전이었다. 쉬지 않는 이유는 “몇 만원이 아쉬워서”였다.



 허리띠도 졸라맸다. 오전 11시쯤 하던 광장시장 양복가게로의 출근을 점심 이후로 늦췄다. 점심값을 아끼려는 노력이었다. 경기가 안 좋아 오전에 나와 봐야 손님이 없다는 사실도 출근을 늦출 구실(?)이 됐다. 저녁 겸 밤참은 대리운전 요청을 기다리는 사이 편의점 햄버거와 우유로 때우고 있다.



 전보다 더 뛰고, 가계는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는데도 경제력은 점점 추락했다. 한때는 청계천이 복원되면 유동인구가 많아지리라는 기대감에 청계천변에 있는 광장시장 임대료가 뛰기까지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도로가 편도 4차로에서 2차로로 좁아졌습니다. 10개이던 버스 노선은 하나로 줄었고요. 그 바람에 손님이 확 줄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더욱 많이 기성복을 찾게 됐고….”



 그는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이 나이에 대안이 없더라”고 했다. 정씨에 따르면 지금 양복점은 그저 겨우 수지를 맞추는 정도. 손님이 줄어서 얻은 작은 위안거리라면 ‘대리운전 때문에 부족한 잠을 가게에서 살짝 보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돈벌이가 되던 대리운전도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대리운전을 부르는 이는 줄고, 대리운전이라도 하겠다며 업계로 뛰어드는 초보기사가 많아져서다. 중앙일보가 정씨를 5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만난 지난달 23일엔 “전날 밤 손님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터에 오전 6시쯤 을지로에서 경기도 파주로 가는 손님을 잡았다”며 “오전 9시쯤 겨우 집(서울 북아현동)에 돌아가는 바람에 늦잠을 잤다”고 전날의 상황을 전했다.



 몸에는 이상이 생겼다. 가위질을 하도 많이 해서인지 오른손 엄지에 힘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엄지로 펜을 꽉 잡아주지 못해 메모를 하다가 펜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도 양복점은 당분간 계속할 예정. “이거 접는다고 당장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수지는 어떻게든 맞추니까요. 저는 가봉 정도를 하고 잔바느질은 하청을 맡기니까 양복점을 계속하는 데 별문제는 없습니다.”



 그는 “정말 가슴에 찔리는 일이 하나 있다”고 털어놨다.



 “석 달 전 고2 막내아들이 ‘학원이 안 맞는 것 같다’며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학원이 안 맞는 게 아니라 아빠가 학원비 대느라 힘들어하는 게 안쓰러워 그런 것 같아서…. 중3 때 반장을 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인데….”



 열심히 일해도 어려워지는 생활. 하지만 세상을 탓하지는 않았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지 않습니까. 그저 능력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지요.”



 바라는 바는 있었다. 서민층 대출과 학자금 융자 이자율을 좀 낮춰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반값 등록금, 하기 어려운 거잖아요. 그것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국민이 미래를 위해 교육에 들이는 돈이니 더 싸게 빌려쓸 수 있었으면 할 따름이지요. 신문을 보니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이 6% 저금리 학자금 대출을 해준다는데, 어떻게 나라에서 힘을 보태 더 이자를 낮출 수는 없을까요.”



 그에게 바보스럽게 들릴지도 모를 질문을 던졌다. “뭔가 희망이 보입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경제력이 나아지리란 생각은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나는 게 기쁠 따름입니다. 여유 좀 생기면 10년 넘게 그대로인 아이들 방 벽지를 바꿔줬으면 좋겠고요.”



특별취재팀=권혁주·김기환·심서현·채승기 기자





◆워킹 푸어(Working Poor)=열심히 일해도 좀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일컫는다. 국내에서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워킹 푸어가 증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역시 워킹 푸어가 될 위험성이 큰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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