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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 <8>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 『어쨌든, 잇태리』 펴낸 박찬일 셰프

발칙한 여행서 한 권을 받아들었다. 이름하여 『어쨌든, 잇태리』(난다·사진). 도서 분류 기준에 따라 이 책은 음식의 천국 이탈리아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다. 지은이도 이탈리아 유학파 셰프라니, 이 분류법은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쫀득쫀득 맛 여행기, 파스타 반죽처럼 온몸으로 치대서 뽑았죠

 그러나 이 괴상망측한 책은 여행서의 기본 약속을 거부한다. 여행서라 하면 본래, 여기는 이러저러하여 좋으니 돈 들이고 시간 내 꼭 찾아가 보시라, 권유 나아가 설득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여행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마저 위반한다. 그러니까 이탈리아는, 이 책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나라다.



 ‘소매치기가 악머구리 떼처럼 달라붙고 각종 야바위꾼이 어수룩한 여행자를 등친다. 연착을 밥 먹듯이 하는 국적 항공기는 승무원도 불친절하고, 인천공항에서 실었던 짐은 엉뚱한 데로 배달돼 있거나 며칠 뒤에 도착하기 일쑤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며 아슬아슬한 해안도로를 질주하고, 로마 테르미니 역의 기차표 자동발매기는 돈을 먹자마자 먹통이 된다. 화장실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더 억울한 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싸구려 식당에서는 접시를 집어 던진다.’



서울 홍익대 앞 거리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꼼마’에 가면 글 쓰는 셰프가 있다. 박찬일. 그의 글처럼 파스타 맛도 쫀쫀하다. [‘난다’ 제공]


 지은이는 작정하고 ‘이래도 이탈리아에 갈래?’라고 묻는 듯하다. 속셈이 궁금했다. 이탈리아에서 3년 가까이 음식을 배우고 돌아와 지금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꼼마’를 운영하고 있는 지은이를 만나 따져 물었다. “이탈리아에 가라는 거요, 가지 말라는 거요?” 참, 지은이 이름은 박찬일(46)이다. week&에서 열 달째 ‘박찬일의 음식잡설’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그 까칠한 셰프 말이다.



  그는 대답 대신에 두 주일 전 이탈리아에서 구해 왔다며 이탈리아 화이트와인과 몇 가지 음식을 내놨다. 이름을 잘 모르는 치즈 따위와 함께 라르도가 나왔다. 라르도는 소금에 절인 돼지 비계를 대패로 밀어 창호지처럼 얇게 썬 이탈리아 전통음식인데, 그의 책에 따르면 딱딱한 시골 빵에 오직 라르도만 넣어서 먹었을 때 ‘순수하게 기름과 소금이 만나 만드는 절정의 제3의 맛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맛’이 난다. 이탈리아 전통음식에 무지한 혀를 지닌 입장에서는 그 경지를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박찬일은 이른바 글 쓰는 셰프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잡지사 기자를 전전하다 1999년 아내와 자식을 처가에 떠넘기고 돌연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거기서 3년 가까이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 강남의 여러 레스토랑을 떠돌다 지난해 9월 홍대 앞 거리에 정착했다. 그사이 책 다섯 권을 펴냈다.



 그는 주변머리가 없다. 그래서 걱정이다. 10월부터 오너 셰프가 됐는데, 그렇다면 경영자가 된 것인데 이윤이 많이 남는 음식을 메뉴판에 ‘인기 메뉴’라고 적을 용기가 아직 그에게는 없다. 한번은 손님을 쫓아낸 적도 있었다. “무슨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발사믹 오일이 없어”라고 투덜대는 손님을 그는 가차없이 내보냈다. 정통 이탈리아 음식에 발사믹 오일이란 건 없다.



 그는 운전도 못하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직접 새벽 수산시장에 나가 식재료를 사온다. 좋은 음식의 기본은 좋은 재료에 달려 있다는 철학 때문이다. 하여 이번 인터뷰가 실패한 건 전적으로 지은이 책임이다. 그는 책에 관하여 물을 때마다 답변을 피했다. “농담이죠”와 “부끄럽습니다”. 5시간에 걸친 만남 동안 가장 많이 들은 그의 대사다.



 이번 책은 음식을 아는 글쟁이, 글을 쓰는 셰프의 이탈리아 이야기다. 하여 읽는 맛이 남다르고,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는 깊이가 있다. 말하자면 그가 만든 파스타처럼 야무지다. ‘라꼼마’는 특히 파스타로 유명한 레스토랑인데, 면발이 단연 압권이다. 포크로 면발 하나를 들었다 내려놓으면 스프링처럼 통통 튄다. 그가 책에서 극찬한 이탈리아 토리노의 파스타집 ‘구이도’의 시뇨라 리디아 알치아티의 팔뚝처럼 그의 팔뚝도 굵은 편은 못 되지만, 라꼼마는 파스타 면 대부분을 반죽을 치대서 만든다. 그는 글도 온몸을 치대서 뽑는다.



 이 책도 명색이 여행서라서 쏠쏠한 여행 팁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중에서 유용한 하나를 소개한다. 이탈리아를 제법 들락거려 이탈리아 수돗물은 석회석이 많으니 생수를 사먹어야 한다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는 축도 미처 모르고 있을 고급 정보다. ‘석회석 가득한 수돗물 대신 생수를 사드신다고? 흥. 네가 먹는 피자와 파스타는 그럼 에비앙으로 반죽한 줄 알아?’



 참, 박찬일은 이 책을 읽고 맨 처음 품었던 질문의 대답을 책에 적어 놓았다. ‘적어도 당신은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 그래, 맞다. 우리네 일상은 언제나 지옥이다. 하여 낯선 그곳을 향하는 걸음은 늘 설렌다. 비록 그 낯선 그곳이 이탈리아여도 말이다.



 손민호 기자



●박찬일은 …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월간지 기자로 일하던 1999년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으로 날아가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서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로마의 소믈리에 코스와 슬로푸드 로마지부에서 와인 수업을 마쳤고, 시칠리아 ‘파토리아델레토리’ 레스토랑에서 현장 요리 수업을 거쳤다. 2002년 귀국해 청담동 ‘뚜또베네’와 신사동 ‘논나’의 셰프 등을 거쳐 현재 홍대 앞 ‘라꼼마’ 오너 셰프로 있다. 저서로 『와인스캔들』(넥서스), 『보통날의 파스타』(나무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창작과비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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