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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87> 국가의 상징, 국새

2006년 개봉한 영화 ‘한반도’를 아십니까? 일본이 대한제국의 가짜 국새(國璽)가 찍힌 조약을 들이대며 경의선 등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항해 ‘진짜 국새’를 찾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과거 국새는 곧 임금이었습니다. 현대의 국새는 왕이 아닌 국가의 상징물로 쓰입니다. 행정자치부의 국새 규정에 따라 헌법의 개정안, 주요 외교문서와 훈·포장,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무원의 임명장 등에 연간 1만3000여 차례 날인됩니다. 지난달 25일에는 제5대 국새가 첫 날인을 했습니다.



용·거북이·봉황 … 국새 손잡이 시대따라 새 모습

최모란 기자



예부터 왕이 바뀔 때는 국새를 제일 먼저 챙겼습니다. 왕 즉위식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도 국새를 인수인계하는 것이지요. 국새를 국인(國印)·새보(璽寶)·어보(御寶)·대보(大寶)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새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학계에서는 2000년을 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삼국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 남해왕 16년(서기 19)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인(濊王之印)‘을 주워 (임금께) 바쳤다’는 내용입니다. 예맥(濊貊)으로부터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가 갈려 나온 것으로 볼 때 국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지요.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월 25일 국새 규정이 공포됨에 따라 저축의날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는 황순자(62)씨 훈장증서에 제5대 국새를 처음으로 찍었다


신라 남해왕 ‘예왕의 인’ 최초의 기록



“차대왕(次大王)이 시해되자 좌보(左輔) 어지류가 여러 대신과 의논하고, 사람을 보내 왕의 동생을 모셔오게 하였다. 그가 오자 어지류는 꿇어앉아 국새(國璽)를 바치며 말하기를, ‘선군(先君)이 불행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이 있으나 능히 국가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무릇 인심(人心)은 지인(至仁)에게 돌아가므로 삼가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니 청컨대 대위(大位)에 나가소서’ 하였다.” 국새가 왕위선양의 역할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475년간 중국의 거란(契丹), 요(遼), 금(金), 원(元), 명(明)나라로부터 책봉과 함께 인장을 받았습니다. 인문(도장모양)에는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고 적혔고, 인뉴(손잡이) 모양은 낙타와 거북이 두 종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국새는 중국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의 황제들에 의해 책봉과 동시에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일부 조선의 국왕은 이 도장을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만 사용하고 국내 문서용 국새는 따로 제작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종 황제가 비밀리에 쓰던 황제어새.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국새를 제작해 사용한 것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입니다.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를 끝내면서 종전의 책봉에 의한 국새 인수제도를 폐지한 것이죠. 이때 만들어진 국새가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입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등 9종의 국새와 황제어새(皇帝御璽) 등 비밀 국새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부 국새는 손잡이를 황제국의 상징인 용 모양으로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 정부가 2009년 한 재미동포 사업가에게 구입한 거북이 모양의 황제어새를 제외한 나머지 국새들은 1910년 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1963년 2대 국새, 1999년까지 37년 사용



1 2대 국새. 63년부터 37년간 사용. 2 봉황이 무궁화를 품고 있는 3대 국새. 3 사기 논란을 일으켰던 4대 국새. 4 5대 국새는 100년간 사용 가능.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새도 새로 제작됐습니다. 1대 국새입니다. 개국국새라고도 불리지요. 1949년 5월부터 1962년 12월까지 13년8개월 동안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남아 있는 것은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관인대장에 등록된 인영뿐입니다. 한자의 소전체로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지요. 도장 크기는 6㎝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1대 국새는 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모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2대 국새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3년께 만들어졌습니다. 국새의 인문은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입니다. 1963년 1월부터 1999년 1월까지 무려 37년간 사용됐습니다. 약 7㎝ 크기로 국새 윗부분의 장식은 거북이 모양입니다. 인문에는 한글 전서체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겼습니다. 1대 국새와 마찬가지로 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하는 내내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한글로 ‘대한민국’을 새겼지만 한글서체의 획을 의미 없이 구부리는 등 독창성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또 손잡이 모양도 과거 중국의 황제가 제후국에 하사하던 거북이 모양이었습니다. 옥이나 금이 아닌 은으로 제작했다는 것도 국새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3대 국새입니다. 1998년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국가의 보물이자 예술품으로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을 담는다’는 거창한 취지로 만들어졌지요.



국새의 높이는 10㎝, 인면의 너비는 10.1㎝입니다. 손잡이는 봉황이 무궁화꽃잎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은으로 만들었던 1대, 2대 국새와 달리 재질은 금속합금으로 금 75.2%, 은 11.8%, 동 11.6%, 아연 1.4%으로 제작됐습니다. 인문은 한글 가로쓰기로 ‘대한민국’을 새겼습니다. 사용기간은 1999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입니다. 하지만 사용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국새 인장 부분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감사원의 요청에 따라 즉시 사용이 중단되고 2008년 2월부터는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국새가 지난해 ‘사기국새’ 논란을 일으켰던 4대 국새입니다. 2008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사용됐지요. 한글 가로쓰기로 ‘대한민국’을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서체로 새겼고, 손잡이는 봉황이 구름 위에 앉은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국새는 제작단장인 민홍규씨의 이름 등 개인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 사실이 드러나 국가 상징물로서 위엄을 잃고 국가기록원으로 보내져 폐기됐습니다. 그리고 균열로 사용이 중단됐던 제3대 국새를 임시로 다시 사용하게 됩니다.



새로 만든 5대 국새 지난달 25일 첫 날인



지난달 25일 첫 날인한 5대 국새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국새들의 단점을 보완해 만들어졌습니다. 봉황 1마리로 구성된 4대 국새와 달리 5대 국새는 2마리의 봉황이 무궁화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입니다. 겉은 더 반짝이고 속은 단단해졌습니다. 가로·세로·높이 각각 10.4㎝로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3대 국새보다 가로와 세로가 0.3㎝씩 커지고, 높이가 0.4㎝ 높다고 합니다. 전체 무게도 3.38㎏으로 3대 국새의 2.15㎏보다 1.23㎏ 무거워졌습니다.



특히 첨단 과학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3대, 4대 국새는 모두 금, 은, 동, 아연을 섞은 합금으로 제작됐습니다. 특히 순금의 함량이 70%가 넘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재질이 물러 내구성이 약해진다는 것이죠. 3대 국새에 균열이 생긴 이유도 이런 내구성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기존의 합금보다 더 강하고 광택을 잃지 않는 원소를 찾기 위해 골몰합니다. 이렇게 찾아낸 것이 이리듐입니다. 이리듐은 운석이 충돌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희귀금속으로 금 합금에 넣으면 합금의 조직이 조밀하고 균일해지기 때문에 치과에서 사용되는 임플란트 재료로도 많이 쓰이지요. 제작단은 국새에 처음으로 이리듐을 0.95g(0.01%) 넣었습니다. 1년에 5000번을 사용해도 100년을 쓸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제작 비용으로 2억1500만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손잡이 부분과 글자가 새겨진 도장 부분도 일체형입니다. 국새는 비용 절감과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내부를 비어 놓습니다. 문제는 이 빈 공간에 거푸집을 채우고 이를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역대 국새의 대부분이 손잡이와 인문을 따로 제작해 용접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5대 국새에는 미세한 구멍을 뚫고 거기에 모래를 강하게 쏴서 거푸집만 털어내는 ‘샌드 블라스팅’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또 행안부는 국새의 상업적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달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 출원 신청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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