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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갔던 신발공장, 부산 U턴

30년 경력의 이재녀 과장이 생산라인에서 신발 품질검사를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9일 오후 부산시 강서구 녹산공단 ㈜트렉스타 본사. 신발을 찍어내는 족형(足形) 틀에서 등산화·스포츠화가 쉴 새 없이 밀려 나왔다. 컨베이어 벨트 에는 60여 명의 직원들이 본드로 신발 밑창을 붙이느라 바쁘다.

 이 회사는 중국 현지 공장에서 4개의 생산라인을 가동해 매달 12만 켤레의 특수화를 제작해 미국·유럽연합(EU) 등에 수출해 왔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중국 생산라인 2개를 줄여 8만 켤레만 생산하고, 4만 켤레는 국내 생산라인을 늘려 수출하고 있다. 직원도 20명에서 60명으로 세 배나 늘렸다. 생산량이 늘면서 사원들은 여름휴가를 반납했고, 요즘도 매일 야근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예상한 미국 바이어들이 몇 달 전부터 주문을 해 일감이 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래처를 선점해 관세의 단계적 폐지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바이어들은 중국보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다.

 요즘 숙련공을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트렉스타 이재녀(51·여) 생산과장은 바쁜 생산라인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부산 신발업체에서 30여 년 근무한 이씨는 검정 고무신부터 운동화, 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된 첨단 기능화까지 모두 만들어 본 부산 신발산업의 산증인이다. 이씨는 “여름휴가를 반납하기는 30년 만에 처음이다”며 “잘나가던 부산 신발산업이 쇠퇴하면서 숙련공들이 다른 직종으로 이직해 사람을 구할 수 없어 힘들다”고 말했다. 충북 보은이 고향인 그는 1977년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으로 와 당시 국내 최대 신발업체였던 국제상사에 취업했다. 16세 앳된 소녀였다. 낮에는 회사에서 검정 고무신을 만들고 밤에는 구포여상 산업체 특별학급에서 공부했다.  

이씨는 결혼한 뒤 두 아들을 키울 동안 잠시 그만뒀을 뿐 지금까지 신발 생산라인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부산 신발산업은 80년대 세계 유명 브랜드 신발의 80%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높은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생산라인을 중국과 동남아로 옮겨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이씨는 중소 신발업체를 전전하면서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003년 트렉스타에 입사해 지난해 과장으로 승진한 그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생산라인을 돌면서 봉합선의 마무리 상태와 본드 접착 상태를 꼼꼼히 살핀다. 이씨는 “현재 주문받은 물량을 소화하려면 6개월이 걸린다. 10여 년 만에 되살아나는 부산 신발산업의 부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30여 곳의 신발 수출업체들이 몰려 있는 녹산공단은 한·미 FTA가 통과되면서 미국 바이어들의 상담과 방문이 부쩍 잦아졌다. 한·미 FTA 비준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지난달 12일 이후 세계 10위권에 드는 미국의 4개 신발 업체가 다녀갔다.

부산=김상진·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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