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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오스만 제국의 영광 재현되나

배명복
논설위원
순회특파원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145억 달러로 가까스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 한국을 맹추격하는 나라가 있다. 터키와 인도네시아다. 터키의 지난해 GDP는 7355억 달러로 세계 17위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7067억 달러)는 18위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네 나라를 묶어 브릭스(BRICs)란 용어를 만든 짐 오닐 골드먼삭스 회장은 멕시코에 인도네시아·한국·터키를 더해 ‘믹트(MIKT)’라고 부른다. 그는 글로벌 성장을 주도할 새로운 국가군으로 믹트를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14위)의 GDP는 1조343억 달러로 한국과 막상막하였다.

 
[일러스트=강일구]

믹트 국가 가운데 최근 특별히 주목받는 나라가 터키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아랍의 봄’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터키의 국제적 영향력과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을 열망해온 터키는 유럽에 번지고 있는 위기의 불길을 이중적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여행업을 하는 세브데트(38)는 “안도와 불안이 뒤섞인 감정”이라고 말했다. 유럽국들은 온갖 구실을 붙여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지연시켜 왔다. 그토록 도도하고 오만했던 유럽이 제 발등의 불을 끄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고소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수출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EU 가입에 대한 여론도 달라지고 있다. 인접국인 그리스가 통화주권을 포기한 탓에 국가부도의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을 보면서 EU와 유로존 가입이 능사가 아니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EU 가입이라는 국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립서비스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터키의 저명한 경제학자 겸 칼럼니스트인 데니스 교옥체 교수(바체셰이르 대학)는 말한다.

 지난해 터키는 9%의 가파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신흥국 평균 성장률 7.3%보다도 높았다. 반면 EU는 1.8%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측한 2011~2017년 연평균 성장률에서 터키(6.7%)는 34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4.5% 성장하고, OECD 전체로는 2.6%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은 터키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터키는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정교분리와 세속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군부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EU 가입 조건을 내세워 군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아랍국들로서는 터키가 모델일 수밖에 없다. 터키는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터키 공화국 출범 10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GDP 2조 달러, 1인당 GDP 2만5000달러를 달성, 세계 10위권 선진 경제대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른바 ‘비전 2023’이다. 이를 위해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로 헌법을 고쳐 2024년까지 장기집권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소문이 터키인들 사이에 파다하다. ‘터키의 푸틴’이 되려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의 리더십이 계속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2003년 집권해 3연임에 성공한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용적 리더십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9년 대지진과 2001년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과감한 개혁 정책으로 터키를 고도성장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언젠가는 이슬람주의자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룬 업적과 성과에 대해서는 지식인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스탄불 대학의 알리 아슬란 교수(역사학)는 “케말파샤(아타투르크) 이후 최고의 지도자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아시아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터키는 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에 자리 잡고 있다.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오스만 튀르크는 600여 년간 유라시아에 세력을 떨칠 수 있었다. 유럽의 위기와 아랍의 봄바람 속에 터키가 또 한 번의 기회를 맞고 있다. 국력이 갑자기 커질 때 나타나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아킬레스건인 쿠르드족 문제만 무난히 해결할 수 있다면 터키는 21세기 유라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

 골드먼삭스의 오닐 회장은 2050년 경제대국 순위는 중국·미국·인도·브라질·러시아·인도네시아·멕시코·영국·터키·일본의 순서가 될 걸로 내다보고 있다. 믹트 4개국 중 한국만 빼고 모두 10위권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터키 인구는 7300만 명으로 남북한을 합한 인구와 거의 일치한다. 한국이 협력하고 경쟁할 상대로 터키가 떠오르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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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