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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의 시시각각] 혁신은 잡스만 하나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21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누군가는 크게 열 받을 만한 기사가 실렸다. 연말 쇼핑 시즌 실적을 예상한 거였는데, 미국 최대 전자제품 양판점 ‘베스트 바이’를 ‘아마존의 쇼룸’이라고 깔아뭉갠 것이다. 사람들이 물건 구경은 베스트 바이에서 하고 정작 구매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 할 거란 얘기였다.

 예측은 적중했다. 시즌 시작을 알리는 ‘블랙 프라이데이’(현지시간 25일). 아마존이 이끄는 미국 온라인 쇼핑 매출은 1년 전보다 무려 24% 증가했다.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3% 증가에 그쳤다. 아마존은 자체 상품인 태블릿PC ‘킨들’ 시리즈를 작년보다 4배나 더 팔았다. 같은 날 외신은 조만간 아마존이 자체 스마트폰을 출시하리란 소식도 전했다. 어디선가 쩌렁쩌렁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애틀에서 가장 큰 소리로 웃는 남자’ 제프 베저스(47) 아마존 창업자 얘기다.

 그런 별명은 아마존 본사가 시애틀에 있고, 실제 베저스가 속없어 보이는 파안대소를 시도 때도 없이 터뜨리는 데서 연유한다. 작은 몸집에 패션 감각도 젬병이다. 이런 그가 다음엔 어떤 패를 던질지, 삼성·애플·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일급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날 선 긴장 속에 주시하고 있다. 이유야 분명하다. 기자는 어제 몇몇 IT전문 파워 트위터러들에게 “‘포스트 잡스’ 시대를 이끌 혁신가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21명 중 6명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꼽았다. 그래서 2위. 1위는 역시 9표를 받은 베저스였다.

 아닌 게 아니라 잡스와 베저스는 공통점이 적잖다. 베저스도 잡스처럼 양아버지를 친부로 알고 컸다. 열일곱에 그를 낳은 어머니가 이혼 후 쿠바계 남성과 재혼했기 때문이다. 프린스턴대 수석졸업 뒤 승승장구하던 베저스는 1994년 돌연 사표를 내고 집 차고에서 세계 최초 온라인 서점을 열었다. 위기를 기회를 바꾸는 능력도 닮은꼴이다. 2000년 초 닷컴 버블 붕괴 땐 외려 취급품목을 음악·영상 콘텐트에서 전자·생활용품까지 늘리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 두뇌 또한 잡스만큼 명석하다. 아마존 출신 유명 블로거 스티브 예이그는 그를 “차라리 인간과의 접촉에 흥미 있는 초지능적 외계인으로 취급하는 게 낫다”고 푸념했다. 잡스만큼 잔혹한 보스이기도 한데, 예이그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건 태형과 같다. 두들겨 맞은 사람들은 햇빛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어 제 상처를 핥는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둘은 열정의 방향이 다르다. ‘예술가’ 잡스는 디자인에 집착했다. 설사 그 때문에 소비자가 약간의 불편을 겪는다 해도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완벽한 세련됨이다. 그 결과 애플은 럭셔리 브랜드가 됐다.

반면 ‘장사꾼’ 베저스는 숫자에 집착한다. 그의 지상목표는 ‘박리다매’다. 질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할 수 있다면 깡패니 독재자니 하는 비난도 개의치 않는다. 직원들에겐 허름한 나무책상을 지급한다. “아마존은 고객을 위해서만 지출한다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아마존이 세계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이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최적의 물류·관리 시스템을 창출하려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돌려야 한다. 그 비용을 최소화하려 애쓴 끝에 최고 수준의 데이터 저장·관리 기술을 갖게 됐다. 애플이 아이패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콘텐트를 끌어들였다면, 아마존은 더 많은 콘텐트를 팔기 위해 최근 199달러짜리 태블릿PC(킨들 파이어)를 내놨다. 이는 아이패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헐값이다.

 애플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꼽히는 기업이 그와 상반된 철학을 갖고 있음은 흥미롭다. 잡스 식 혁신에 선지자적 오만이 깃들어 있다면, 베저스 식 혁신엔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장사치의 고전적 가치가 박혀 있다. 요컨대 세상엔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있을 수 있음이다. 잡스가 인문학을 강조했다고 철강회사부터 과자회사까지 나서서 장자나 소크라테스를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치고 산업이고 교육이고, 뭐 좀 뜬다 하면 우 몰려가 거품부터 만들고 보는 세태가 싫어서 하는 소리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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