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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즐겨 듣던 음악이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생긴 즐거움 중 하나다. MP3보다 훨씬 간편하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잘 정리된 앱을 싼 가격에 장만해 주로 퇴근길 버스에서 즐긴다. 클래식도 대중가요처럼 누구나 자기만의 ‘귀(耳)의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30여 년 전 대학시절 1년 남짓한 휴학기간에 클래식 다방에서 DJ를 했었다. 그때 즐겨 틀던 곡들이 내 음악감상 이력의 원형질이다.

 가끔 당혹감을 느낀다. 분명 지금보다 피가 더웠을 그 시절 흠뻑 빠져들었던 곡이 지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5분 정도 연주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왠지 답답하기만 하다.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도 1악장은 잔잔하기보다 더디고, 2·3악장으로 옮겨가며 점점 빨라져야 듣는 맛이 솟는다. 감수성이 둔해져서일까, 아니면 그 사이 빠르고 급한 음악에 인이 박여서일까.

 조상님들도 비슷한 당혹감을 느꼈다. 정조 임금은 “세종조에는 거동할 때마다 음악이 숭례문에서 시작하여 운종가(종로)에 이르러야 1장을 끝냈고, 혜정교(광화문우체국 북쪽)에 이르러 2장을 끝냈으며, 광화문에 이르러야 3장을 끝냈다”면서 자기 시대 음악은 너무 빠르다고 탄식했다(안대회 『정조치세어록』). 정조 앞 시대를 살다 간 허균도 국왕이 행차할 때 악공들이 ‘여민락(與民樂)’을 연주하는 시간이 “옛날에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출발해 숭례문에 이르러야 끝났는데, 선조대에는 광통교에서 끝나버린다. 이런 현상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사실 일반인이 듣기에는 요즘의 국악도 느려터지기 한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인 가곡(歌曲)도 지금 불리는 곡조가 옛날에는 초고속 음악이었다. 가장 느린 만대엽(慢大葉), 중간의 중대엽(中大葉), 가장 빠른 삭대엽(數大葉) 중 만·중대엽은 18세기까지 모두 사라지고 삭대엽만 남았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삭대엽마저 지루하고 답답한 것이다. 악론(樂論)을 전공한 김세종 박사(한국음악학)는 “유교사회에서는 빠른 음악이 사람의 호흡과 성정(性情)까지 거칠게 만든다고 여겨 금기시했다”고 설명한다.

 빠른 음악이 마음을 거칠게 했는가, 거친 마음이 빠른 음악을 낳았는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음악의 곡조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도 지나치게 거칠고 성말라졌다는 점이다. 시비에는 시비로, 질세라 즉각 되받아치는 세태에서 온유(溫柔)함은 한낱 약점이나 우스갯거리로 전락했다.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벌써 1년이 저물어간다. 빠르게 내닫는 세월이라고 우리 마음까지 덩달아 허둥대서야 되겠는가. 국악이든 베토벤이든 오늘 퇴근길에는 일부러 지루하고 느려터진 곡을 골라 들어보아야겠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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