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중앙시평] 박근혜당 대 안철수당

김진국
논설실장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큰 고비의 하나였던 1987년. 당시 정치부 막내기자였던 필자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찾아가는 것이 첫 일과였다. 다른 기자들은 찾아오지 않는 덕분에 매일 함께 아침을 먹으며 DJ의 정치적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날부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이야기를 슬금슬금 꺼내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조사를 했더니 우리나라 국민의 60~70%가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존 정당은 모두 보수 정당이어서 노동자·농민·중소상공인·서민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필자는 “아, 이제 양김(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는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분당(分黨)의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은 언제 물어봐도 그 정도가 된다.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DJ는 평민당을 만들어 대통령에 출마했다. 평민당은 기존 정당보다 좀 더 진보적인 정책을 채택했다. DJ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물갈이했다. 외부세력 영입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지분을 할애했다. 그런 변신 덕분인지 집권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불만이었던 60~70%의 부동층(浮動層)은 아직도 떠돌고 있다. ‘DJ당’ 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등 새로운 정당이 무수히 나왔지만 어느 정당도 무당파(無黨派)를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누가 한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현금이라면 그것을 싫어한다는 부분은 어음과 같다. 현금화할 때 상당한 할인율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단기간에 이 무당파를 결집해낸 건 놀라운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표로 현금화하느냐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기성 정치권이 싫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명박(MB) 대통령이 싫다는 게 핵심이다. 왜 싫으냐, 싫다는 이유가 정당하냐고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그것을 되돌려 놓기에는 선거가 너무 임박했다. MB의 임기는 1년3개월이 남았다. 하지만 과거 어느 정부를 봐도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는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어렵다.

더구나 내년 총선은 임기를 10개월 남겨놓은 시점에 치러진다. 한나라당으로선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 자칫하면 함께 레임덕의 늪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상아탑 속에 숨어 있는 안 교수만 쳐다보고 있다. 정당은 집권 의지를 놓치는 순간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가 세(勢)불리에도 불구하고 집권 의욕을 보였던 건 그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대권 의지를 접는 순간 자민련은 무너지고 말았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은 ‘더 큰 민주당’으로 통합하기로 했다지만 몸집을 불려봐야 여의주 없는 이무기다. 최소한 안철수 교수가 출마 포기를 선언하거나 ‘나와 함께 할 정당’이라고 손을 들어주기 전에는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건 기존 정당의 리더십 외에도 소속 정치인, 정책이 모두 싫다는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건 역시 시대정신을 읽은 새로운 리더십이다. 물갈이고, 정책이고, 리더십을 세워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김 정치는 비난을 받았지만 리더십은 있었다. DJ는 말뚝만 꽂으면 당선된다던 호남에서 96년 17명 중 10명, 2000년 9명의 현역의원을 탈락시켰다. 정책도 중심이 있었다. 지금은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고 정책을 내놔봐야 총선과 대선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살아남겠다고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낸다. 이래서야 애꿎은 국민들 주머니만 털어내고 전체적인 국가전략에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대통령은 어느 날 명동거리에서 외모만 보고 캐스팅할 수 있는 연기자가 아니다. 산초만 데리고 출전하는 돈키호테도 아니다. 역사의식은 어떠한지, 경제관은 어떠한지,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 다 만들어놓은 정당에 얼굴마담으로 얹힌 후보가 있을 수도 없고, 정당은 정당대로 대통령 후보는 후보대로 제각각 다른 철학과 노선을 내세울 수도 없다. 일찌감치 후보와 정당이 비전을 공유하고, 정책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다. 대선과 총선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하루빨리 박근혜당 대 안철수당, 아니면 그 누군가의 당으로 빨리 옮겨가는 것이 국민에게 성실한 태도다.

김진국 논설실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