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한국 돈으로 지어준 마닐라 전철에 한국식 여성전용칸

필리핀 마닐라시 남부를 이어주는 통근전철의 제일 앞칸은 ‘여성·노약자 전용칸’이다. 한국의 자금지원으로, 한국 기업에 의해 설립된 이 전철에는 한국이 실시했던 ‘여성 전용칸’ 제도가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1986년까지만 해도 대외원조를 받아온 개발도상국이었다. 하지만 87년 2000만 달러로 처음 대외원조에 나선 뒤 이제는 원조 규모가 60배가량으로 늘었다. 원조 받는 가난한 나라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변신하고 있는 한국의 원조는 어떤 모습일까.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 3국의 원조 현장을 찾아가봤다. 한국의 원조는 국익 우선형도, 패권 유지형도 아니었다. 한국의 문화를 다양한 색깔로 전파하는 무지개형 원조였다.

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 한국 대외원조 국가를 가다





16일 오전 8시 승용차로 베트남 호찌민을 출발해 남쪽 메콩강 방향으로 향했다. 호찌민을 나설 때만 해도 시원하게 뻗은 4차선 고속도로였으나 30분이 지나자 2차선 도로로 좁아졌다. 울퉁불퉁한 도로엔 오토바이가 가득했다. ‘빠바바~ 빵~빠바바~ 빵~.’ 운전기사는 곡예를 하듯 오토바이를 피해 운전하며 경적을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두 시간쯤 지나자 메콩강이 관통하는 동탑주(州)가 나왔다. 팜 반 통 동탑주 도로담당 부국장은 “이곳을 가로질러 두 개의 메콩강 지류가 흐르는데 강 200㎞ 구간에는 다리가 하나도 없다”며 “쌀을 수출하기 위해선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강에 가로막혀 이동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메콩강 지역에서만 쌀 수출량의 80%를 생산한다. 하지만 남북을 잇는 도로는 한국의 국도 수준인 ‘제1 고속도로’ 하나뿐이다. 이 때문에 다리가 있으면 승용차로 5분이면 건널 거리를 세 시간 넘게 우회하거나 두 시간 넘도록 줄을 서서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베트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다. 이 다리를 건설하는 데 한국이 원조했다. 한국은 베트남에 2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 사상 최대 규모다. 조건도 좋다. 이자율은 연 0.05%, 상환 기간은 40년에 달한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쯔엉찌충 베트남 재무부 차관을 만나 메콩강 ‘밤콩교량(3㎞) 건설사업’을 위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한국의 대외 원조가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데서 벗어나 개발도상국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원조’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또 건설·의료·교통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는 1987년 원조를 처음 시작할 당시 2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58.5배 수준(11억7000만 달러)으로 급증했으며 2015년에는 3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 남부 도시 락지아 우회도로(20㎞) 건설현장에서 현지 직원이 작업하고 있다.
 대외협력기금(EDCF)을 담당하고 있는 수출입은행의 심섭 부행장은 “개도국 관계자를 만나보면 해외 원조를 받는 입장이었던 한국이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발전하게 된 개발 노하우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은 베트남 남부 도시 락지아에 우회도로(20㎞)를 짓는 데 83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도로 건설에는 국내 기업이 합작회사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락지아 주민 윙반쭝(59)은 “이 도로 공사로 농업이 생업의 대부분인 이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나 기쁘다”며 “도로가 완성되면 생활까지 편리해져 농산물을 쉽게 운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신·극동·경남건설 조인트벤처의 서상섭 부장은 “느린 행정 절차, 보상 문제 등 사업을 펼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면서도 “국내 건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렇게 해외에 진출할 수 있으니 회사 경영에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찌민과 하노이의 중간쯤에 있는 다낭. 베트남 중부권 최대 종합병원인 다낭병원에는 조만간 특별한 일이 생긴다. 한국에서 1000만 달러(이자율 0.1%)의 차관을 받아 사이클로트론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사이클로트론은 암 진단 때 필수적인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가속기다. 쩐누억탄 다낭병원장은 “지금까지는 이 기기가 필요한 환자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호찌민으로 보내야 했다”며 “이 기기 설치로 암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낭병원의 사이클로트론 도입은 그러나 이 병원에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이클로트론은 현재 국내 기업이 자력 개발한 토종 기술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일본·독일·벨기에·미국 등 4개국만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이 기기가 베트남에 도입되면 국내 첫 수출 사례가 된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필리핀에서도 한국의 EDCF효과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시 남부를 이어주는 통근 전철엔 매일 낯익은 풍경이 벌어진다. 전동차 제일 앞칸에는 여성들만 가득하다. ‘여성·노약자’ 전용칸이기 때문이다. 이 통근 전철 개선 공사도 한국 기업이, 전동차도 한국 기업이 담당했다. 한국이 3500만 달러를 지원해 지난해 개선 사업을 마쳤다. 이 전철 공사를 담당한 한진중공업의 김창만 매니저는 “필리핀은 전철을 운영하는 방식도 한국에서 따왔다”며 “단순한 원조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까지 개도국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원조는 일자리 창출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공정률이 90%인 필리핀 라귄딩간 공항은 현장직 지원 경쟁률이 20대1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반태명 한진중공업 현장소장은 “이 지역은 주민들이 자급자족했던 곳”이라며 “이곳에 공항이 지어지면서 하루에 많게는 750명씩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직원인 로드니 퀴블랏(47)은 “이곳에서 일한 현지인이 다른 사업장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현장소장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의 건설 기술이 필리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닐라·호찌민=김창규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