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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매력과 마력 - 한 획의 차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성모의 이름 마리아는 히브리어로 미리암인데, 므림(존귀하다)이나 마라(괴롭다) 혹은 이집트어 미르(사랑스럽다)에서 온 말로 알려져 있다. 성스러운 이름이 묘하게도 악마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라(魔羅)와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악마는 추한 모습을 띠지 않는다. 놀랍게도, 악마는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고린도후서 11). 샛별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루시퍼(이사야 14), 그 타락천사가 바로 악마다. 매력(魅力)이라는 말을 풀어 쓰면 ‘덜된(未) 귀신(鬼)의 힘(力)’쯤 되지 않을까? 귀신의 힘이란 곧 마력(魔力)이다. 매력과 마력은 글자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천사와 악마만큼이나 멀다.



 명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바흐·베토벤과 함께 ‘독일의 3B’라고 부른 낭만파의 거장 브람스는 반(反)유대주의자인 바그너와 소위 보혁(保革) 갈등을 빚었는데,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이채로운 악극(樂劇)의 세계를 펼친 바그너는 고전적 대위법에 충실한 브람스를 구닥다리로 폄하했고, 브람스는 바그너의 반(半)음계적 무한선율을 저속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번뇌, 욕망, 탄식의 불협화(不協和)로 꿈틀대는 바그너의 ‘트리스탄 화음’에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몽환(夢幻)의 늪을 방황하게 된다. 그 늪에 깊이 빠졌던 젊은 날의 니체는 첫 번째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디오니소스(Dionysos)적 종합예술의 창시자’로 극찬했다가 만년의 저서 『니체 대 바그너』에서는 ‘퇴폐적 최면술사’라고 혹평했다.



 매력이 마력으로 뒤바뀐 셈인데, 그 마력이야말로 바그너리안들에게는 숨 막힐 듯 정신이 아득해지는 매력의 정수(精髓)다. 예술적 감성의 풍요로움 앞에서, 매력과 마력의 경계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음악의 보혁 갈등은 부질없는 싸움일는지도 모른다. 내 낡은 음반꽂이에는 브람스와 바그너의 곡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로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경제난으로 좌절하던 독일 국민 앞에 ‘게르만 민족주의’의 우상으로 떠오른 히틀러는 광적인 바그너 숭배자였다. 그 희대의 선동가는 ‘니벨룽의 반지’ 중 ‘발퀴레의 기행(騎行)’을 나치군대의 행진곡으로 썼고,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을 때는 ‘탄호이저’에 나오는 ‘순례자의 합창’을 확성기로 틀어댔다. 바그너가 이스라엘인들에게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신비의 카리스마, 참신한 이미지로 민심을 사로잡은 히틀러의 매력은 결국 사악한 선동과 야만적 범죄의 마력으로 끝나고 말았다.



 매력 없는 팜 파탈(femme fatale)이 있던가? 로렐라이 언덕의 어여쁜 요정은 애잔한 노랫가락으로 뱃사공들을 홀린 뒤 몽땅 강물 속에 밀어 넣었다. 청순한 매력의 팜 프라길(femme fragile)이 실은 요사스러운 마력의 팜 파탈이었다. 요정이 정치인, 뱃사공이 국민이라면 끔찍하다. 노랫가락은 선동, 강물은 파국일 테니.



 무상복지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매력은 최근의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보듯, 재정파탄을 부르는 마력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복지천국이라는 스웨덴의 경우,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이 50%에 가까워 우리의 국민부담률 26%보다 곱절이나 높다. 공짜 복지의 유토피아는 없다는 뜻이다.



 복지는 시급히 확대돼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공공부문에서 ‘국민 부담의 증대’가, 민간부문에서 ‘나눔의 확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담 없이 복지만 외치는 교조적(敎條的) 슬로건은 속임수에 불과하고, 나눔 없이 시장경제만 부르짖는 옹고집은 양극화 해소와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천국은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수록 그것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숨 막히는 지옥이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천국의 매력에서 지옥의 마력을 보는 섬뜩한 통찰이다.



 ‘순례자의 합창’이 내뿜는 바그너의 매력도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에게는 장송곡의 마력에 지나지 않았다. 수많은 FTA 중에서 유독 한·미 FTA만을 극력 반대하는 거리의 촛불이나 국회의사당 안의 최루가스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독립투사의 열정 같은 매력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지만, 국익(國益)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그러진 폐쇄적 이념의 마력으로 어른거릴 따름이다.



 매력과 마력··· 글자 한 획이 천사와 악마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 그 한 획의 차이를 간파하는 것이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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