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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고 뭉개야 완성되는 그림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게 뭉개진 얼굴, 초점이 나간 듯한 톈안먼(天安門) 광장 그림 위를 긁고 지나가는 동심원 모양 톱자국-.

 인자오양(尹朝陽·41·사진)은 그리고, 뭉개고, 긁는 화가다. “내 그림은 무너지고 뭉개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그림을 긁기 위해 직접 고안한 톱도 있다. “외형을 무너뜨릴 때 내면이 위로 떠오른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숨겨진 내면까지 끌어내기 위해 겉모습을 무너뜨린다는 얘기다.

 메뉴얼은 따로 없다. 그림 앞에 선 채로 고민하고, 그 자리에서 무너뜨린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뭉갤 때면 “매번 모험하는 기분”이란다. 물감뿐 아니라 흙도 뭉갠다.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가상으로 뭉개본 뒤 그 모양대로 조각한다.

인자오양의 매니악 시리즈는 ‘얼굴’을 다룬다. 주로 자신과 지인의 얼굴을 그리고 뭉갰다. 인자오양의 신작 ‘매니악-스탠다드 포트레이트’. 150×180㎝.
 뭉개진 회화와 조각 21점이 서울 서초동 더페이지 갤러리(02-3447-0049)에서 전시 중이다. 다음 달 18일까지 열리는 인자오양 개인전 ‘매니악(Maniac)’이다.

 매니악은 한 가지 일에 미친 듯 열중하는 사람을 뜻한다. 작가 자신은 “하루에 비유하자면 오후, 1년에 비유하자면 여름”이라며 “매 순간 뭘 하든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상태, 후회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상태”라고 풀이했다.

 그의 말대로 인자오양은 현재 절정기다.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어떻게든 아트 페어에 참가하고 싶어 주변 여기저기에 돈을 빌리고, 직접 자전거를 몰며 작품을 날랐던 무명 화가였다. 최근 몇 년 새 중국 내 미술 경매시장에서 반응이 나오면서 4세대(1970∼80년생) 중국 작가 중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기존의 중국 현대미술가들이 구축한 세계와의 차별화에도 맹진해 왔다. “전(前) 세대의 작가들이 다져놓은 예술에 발을 담글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실 왕광이(王廣義·54), 팡리쥔(方力鈞·48) 등 선배 작가들은 주로 공산 정권에 대한 냉소와 풍자를 그림에 담았다. 이들 계열은 폴리티컬 팝(Political Pop), 시니컬 리얼리즘(Cynical Realism)으로 분류된다.

 반면 인자오양은 정치적 소재에 독특한 감성으로 접근한다. 톱자국 동심원 속 마오쩌둥(毛澤東) 초상이나 톈안먼 광장 풍경 등이 대표적이다. 조그맣게 보이는 광장 앞 사람들은 톱자국의 상흔 위에서 진동하듯 흔들린다. “광장이나 마오쩌둥 등은 상징적 소재로 이용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일 뿐 정치적 메시지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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