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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직권상정의 요건

임종훈
홍익대 법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마침내 국회에서 처리됐다. 노무현 정부 때 첫 협정이 체결된 후 추가협상과 재협상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쳐 4년여 만에 일단락됐다. 이제 처리 과정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미 FTA는 오랜 기간 많은 논의와 검토를 거쳤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히 형성되었다. 다수 국민이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국회에서도 여야 간에 합의 처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또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국회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당이 정상적인 처리를 가로막았다. 야당은 비준동의에 반대할 뿐 아니라 표결처리마저 거부했다. 민주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요구했다. 사실상 FTA 비준을 몸으로 막겠다는 입장이다. 그 결과가 어제 직권상정과 한나라당의 단독처리다.

 남은 것은 과연 직권상정이 정당했느냐는 논란이다. 원칙부터 차근차근 따져보자. 국회는 다원적 집단이익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율한 다음 합의안을 도출하는 국민대표기관이다. FTA 비준동의안에 대해서는 소관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한 다음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을 거친 후 표결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회의가 열리지조차 못했다.

 이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 상황에서 해법은 무엇일까. 해법 역시 국회법이란 원칙에 따라야 한다. 국회법 85조 ‘직권상정’이 법으로 만들어 놓은 해법이다. 위원회 단계에서 여야 간 물리적 대치 등으로 중대한 국정사안이 처리되지 못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되는 장치다. 국회의장은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에 대해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위원회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중간보고를 들은 후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국회의장은 국회의 의사(議事)를 정리할 최종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진 자리이기에 직권상정의 권한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직권상정은 국익을 위해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안건이 소관위원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예외적 조치’다. 국회가 안건을 처리하면서 거쳐야 하는 여러 과정을 모두 생략할 수 있는 예외적 조치라는 점에서 매우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 예외적 조치를 정당화할 충분한 요건이 갖추어질 경우에만 행사될 수 있다.

 이번 한·미 FTA의 경우 직권상정이 불가피한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평가된다. 우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에서 충분한 논의와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고 할 수 있다. 또 여야 원내대표들은 당내 강경파들의 비판과 질타를 받아가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절충안을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여야 협상파 의원들의 노력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여기에 대통령도 국회를 방문해 야당이 요구하는 ISD 조항에 대한 재협상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미 비준을 마쳤다.

 시급한 FTA 비준의 필요성, 정상처리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도 야당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런 정도면 직권상정이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야당이 여당에 직권상정과 단독처리라는 외길을 걸어가라고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FTA 비준과정은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우리 의정현실에서 직권상정의 유용성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임종훈 홍익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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