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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종교가 정치를 만났을 때

김환영
중앙SUNDAY 차장
“전쟁은 장군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프랑스 총리를 두 차례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1841~1929)가 한 말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T S 엘리엇(1888~1965)은 “정치는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됐다”고 했다.

 ‘…에게만 맡기기에는’ 시리즈는 무한히 만들 수 있다. ‘살림은…’ ‘교육은…’ ‘언론은…’ ‘기업은…’ 등 말이다. “종교는 종교인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분업의 효과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가 맞다. 원칙적으로는 “정치는 정치인에게, 기업은 기업인에게, 시민사회는 시민운동가에게, 해탈과 구원은 종교인에게”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야말로 전문성이 필요하다. 최근 비정치 분야의 사람들이 정치에 나서고 있다. 명분은 ‘정치가 너무나 중요해서’ 정도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나라가 거의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있다. 그들은 또한 현 정부가 도대체 잘한 게 없는 총체적 부실 정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그들의 인식과 평가에 동조하고 기성 정치권에는 소생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보수·진보 성향의 종교인들이 개인적·집단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도 가속화되고 있다.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대원칙이다. 서구와 비서구의 대결에서 승패가 결판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과 동아시아 지역의 유교는 정치와 분리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서구에서 정치가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세속 사회가 쑥쑥 커갈 수 있었다.

 기독교·이슬람·유교·불교 등 어떤 특정 종교가 그 우월성 덕분에 어떤 나라나 지역을 잘살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비결은 분리에 있었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정치와 불교가 분리돼 있고, 상대적으로 뒤처진 불교 국가들의 경우 국가와 불교가 밀착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모든 원칙은 깨진다. 특히 시대가 바뀌면 원칙이 깨질 수밖에 없다. 종교의 정치화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 단면인지 모른다. 그렇게 보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근대의 특징, 정치와 종교의 재결합은 탈근대의 특징이다. 세계 각국에서 기독교 좌파, 기독교 우파, 불교 좌파, 불교 우파가 속속 조직화되고 있다.

 각 종교의 좌파·우파에도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겠지만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불교 중도나 기독교 중도다. 어느 정파도 편들지 않는 종교가 필요하다. 한 정파가 국민·유권자의 90%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나머지 10%가 극렬히 저항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정치에서 승자독식주의는 한계가 있다. 51%로 이기나 90%로 이기나 그 정파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중도적·중립적 종교는 51%의 지지를 받는 정파라도 자신이 할 일을 하는 데 힘을 더해줄 수 있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권력’을 지향한다. 물론 다른 차원의 권력이다. 하지만 불국(佛國)이나 하느님의 나라나 결국 나라다. 나라라는 것은 권력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권력을 추구하는 종교와 정치라는 두 영역이 만났을 때에 그 결과는 다양하다. 정치가 정화될 수도, 종교가 오염될 수도 있다. 상생의 길을 걸을 수도, 함께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역과 정치가 만났을 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지역과 정치의 만남은 민주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그 폐해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정치 참여가 가속화되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갈등 구도를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일승(一乘)은 모든 중생이 부처와 함께 성불한다는 석가모니의 교법이다. 일승에서 우리는 위대한 낙관주의와 거대한 시간 개념을 배울 수 있다. 정치의 격을 격상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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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