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해외칼럼] 월가 시위는 혁명이 아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
올 1월 튀니지에서 촉발된 시위가 이집트·스페인 등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화되고 있다. 심지어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 덕분에 시위 같은 사회적 운동은 사상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선거를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위는 어느 곳에서든 뿌리를 내릴 토양을 갖추게 됐다.



 튀니지·스페인·이집트의 시위현장을 다녀온 나는 몇 주 전 뉴욕에서 반(反)월가 시위대와도 얘기할 기회를 가졌다. 월가점령 시위의 공통주제는 “우리는 99%다”는 것이다. 그 슬로건은 내가 최근 쓴 글( ‘1%의, 1%를 위한, 1%에 의한’)을 상기시킨다. 미국 인구의 1%가 미국 전체 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점점 커져가는 미국 사회 내의 불평등을 묘사한 글이었다.



 1%에 해당되는 이들이 부유한 대가를 받는 것은 그들이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한 지대추구자(rent-seekers)이기 때문이다. 물론 1%에 해당되는 이들의 일부는 사회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실제로 진정한 혁신가가 만들어낸 사회적 혜택은 그들이 받은 보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워런 버핏 같은 억만장자가 자신의 비서보다도 적게 세금을 내는 조세 제도, 전 세계 경제를 망가뜨린 투기적 자본가들이 임금 노동자들보다 적은 세율을 적용받는 조세 제도는 이 같은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켰다.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나선형 악순환의 산물이다. 부유한 지대추구자들은 재산을 동원해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을 지키고, 이를 더 많이 창출하기 위한 법을 만든다.



 시스템이 뭔가 잘못됐다는 반 월가 시위대의 주장은 옳다. 전 세계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가동되지 않는 기계들이 넘쳐나고, 텅텅 비어 있는 빌딩도 많다. 가용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 퇴치, 개발 촉진, 지구온난화 방지 등 자원을 투입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미국만 해도 최근 수년간 압류된 주택이 700만 채를 넘지만 비어 있는 집과 노숙자들이 넘쳐난다.



 반 월가 시위대는 어젠다가 없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시위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는 선거과정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사회에 확실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은 당시 미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던 인종차별주의의 폐해를 일깨워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민권운동의 유산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잘 보여줬다.



 요즘 시위대는 그들의 기술을 사용할 기회, 정당한 급여를 받고 일할 수 있는 권리, 더 공평한 경제와 사회 등을 원할 뿐 더 이상의 요구는 하지 않는다. 그들의 희망은 진화하고 있을 뿐 혁명적이지는 않다. 시위대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이들의 두 가지 요구는 서로 연관돼 있다. 지금껏 많이 보아왔듯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시장은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초래한다. 시장은 적절한 정부 규제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경우에만 제대로 움직인다. 그 틀은 1%의 이익이 아닌,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안에서만 정립될 수 있다. 1%가 재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부는 더 이상 좋은 정부가 아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

정리=정현목 기자

ⓒ Project Syndicate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