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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변양호로 모자라 김석동까지

이정재
경제부장
장면 하나. 2008년 가을, 광화문 한식당. 변양호는 지난 2년이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더 지옥 같은 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라고도 했다. 빗발치는 비난, 끝없이 이어지는 재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앞날…. 그럴 만했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판 ‘죄 아닌 죄’로 2년 전 구속돼 300일 넘게 옥살이를 했지만 여전히 ‘헐값 매각’ 재판이 진행 중일 때였다. 그는 불쑥 “죽고 싶다”고 했다. 그리곤 펑펑 울었다. 좌중이 숙연해졌다. 그는 잘나가는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채 협상 때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자신감, 카리스마, 단호함 등을 떠올린다. 그런 그가 그날은 정말 펑펑 울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외환은행을 절대 론스타에 팔지 않을 것”이라며.



 장면 둘. 2010년 겨울, 광화문 양식당. 김석동은 “론스타를 빨리 떠나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발표로 여론이 떠들썩할 때였다. 놔둘수록 외환은행 망가지고 한국 금융의 국제 신인도가 엉망이 된다는 거였다. 동석한 언론인 K씨는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불쑥 “혹 본인이 그런 걸 결정할 자리에 가게 되면 절대 그런 결정은 말라”고 했다. 괜히 사람 다치고 바보 되고 평생 후회하기 십상이라며, 변양호를 보라며. 김석동은 “그렇겠지…”라며 말을 흐렸다. 며칠 뒤 그는 금융위원장이 됐다.



 장면 셋. 이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박선숙·우제창·이성남 의원은 “론스타에 ‘징벌적 매각 명령’을 내려라. 아니면 국정조사를 각오해야 할 거다”라며 김석동을 다그쳤다. 김석동이 “압력입니까” 묻자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당연한 권한”이라고 받았다. 한나라당 이진복·이범래 의원도 거들었다. “(론스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겨가지 못하도록) 시장에서 외환은행 주식을 팔도록 하라”며 아니면 후환을 걱정해야 할 것이란 언급도 했다. 김석동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 외국 투자가에 이익 줄 생각 없지만 불이익을 받게 할 생각도 없다”고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금융위는 론스타에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다. 여야 정치권, 시민단체, 외환은행 노조가 요구한 ‘징벌적’ 조건 없이.



 당장 정치권부터 들끓었다. 여권에선 론스타의 ‘먹튀’를 도왔다며 김석동 교체론이 나왔다. 야당도 맞장구를 쳤다. 시민단체·외환은행 노조는 ‘총파업·전면투쟁’을 선언했다. 5년 전 먹튀 논란이 그대로 재연될 조짐이다. 이게 다 누구 탓인가. 그렇다. 변양호·김석동의 잘못이다. 둘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놔뒀어야 했다. 2003년 당시 변양호는 담당 국장이었지만 LG카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흉흉해져도 ‘나 몰라라’ 해야 했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외환은행이 빚으로 쓰러져도 ‘남의 일’이라고 우겨야 했다. 그 바람에 부서진 금융시스템을 고치느라 국민 세금이 30조원 넘게 들어간들 ‘내 돈 아니야’라며 버텨야 했다.



 김석동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못 믿을 나라로 낙인찍혀 신용이 떨어져도, 그래서 유럽·미국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도, 한국 기업이 부실 외국기업을 싸게 샀다 되팔아 돈을 벌 때마다 그 나라 정부의 ‘징벌’을 받아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며 ‘배를 째야’했다. 괜히 “금융위기를 사전에 막았으니 27년 공무원 생활 중 가장 잘한 일(변양호)”이라든지 “한국 정부의 법과 원칙에 따른 일 처리를 의심하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긍정적 신호를 주는 결정(김석동)” 따위 생각은 말아야 했다.



 5년 전 먹튀 논란은 변양호 신드롬을 불렀다. 그때 이후 공무원들은 중요하거나 민감한 사안은 결정하지 않고 무조건 미루고 본다. 그런 판에 이제 김석동까지 변양호에 얹어질 판이다. 그러면 뭐가 나올까. 혹 ‘변석동(변양호+김석동) 신드롬’은 아닐까. 뭐가 됐든 나랏일이라면 무조건 ‘난 몰라’하는.



이정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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