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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FTA 비준이 꼬인 숨은 이유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지난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환영이야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의회에서의 환대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외국의 국가수반이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45차례의 박수와 16차례의 기립박수를 받는 일은 누가 뭐래도 역사상 드문 일이다. 게다가 그 여세를 몰아 미 의회 계류 중이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전광석화처럼 통과시키고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서명까지 받아냈다. MB 정상외교의 백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일이 꼬였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 나와 설득에 나섰지만 민주당의 반대 입장은 단호하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협상에 즉각 착수한다는 한·미 양국의 장관급 서면합의를 가져오면 재고할 수 있다”는 야당 측 요구를 정부가 수용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바야흐로 ‘여의도 혈투’가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꼬인 것일까? 주권과 국익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 내년 총선을 앞둔 정파 간 이해관계 차이 등이 맞물려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를 다뤄온 이명박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



 먼저 ‘대통령 이미지’의 관리 실패를 들 수 있다. 따지고 보면 2008년 5월 촛불시위의 본질은 광우병의 진실 여부가 아니었다. ‘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환심을 사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하룻밤을 묵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양보했다’는 인식이 퍼져나간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이유였다. 이번 국빈방문도 마찬가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미국 대통령과도 따질 것은 따져야 하는 지도자가 민심의 기대를 저버리고 ‘일사천리로 미국이 원하던 바를 그대로 수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대통령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 개인의 명예를 국익과 교환한 것이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성공한 외교에 뒤따르기 마련인 잡음으로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보다 치밀한 이미지 관리가 있어야 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미 FTA 체결의 명분도 취약했다고 본다. 한국 같은 통상국가로서는 양자간 FTA보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무역질서가 훨씬 유리하다. 세계 190여 개 국가 모두와 양자 FTA를 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국은 다자질서를 강조하며 도하개발어젠다(DDA) 채택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어야 옳았다. DDA에 진전이 없으니 그 차선책으로 미국과의 FTA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해야 했다는 뜻이다. 양자 FTA 국익론에 안주하며 빈곤한 논리로 미국과의 협정체결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하다 보니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한·미 FTA가 경제동맹·포괄동맹의 완결이라는 홍보 방식도 우려스럽다. 경제통합의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하는 FTA는 관세연합·공동시장·경제연합·통화연합으로 가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동맹’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공동의 적이나 위협을 관리하는 협력체계를 뜻한다. ‘한·미 경제동맹’이라는 용어가 중국 견제용이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년 한 해 중국과 교역량 2010억 달러에 690억 달러 무역흑자를 누렸던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해 중국 견제에 나선다는 게 과연 맞는 셈법일까? 심지어 FTA가 한·미 군사동맹 강화는 물론 포괄동맹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정부 측 설명을 듣고 나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는 군사이고 경제는 경제지 이 양자를 왜 결부시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의 마지막 실수는 절차 문제에서 나왔다. 야당의 거론 여부에 관계없이 상대국과의 협상 타결 전에 국내의 정치적 합의를 철저하게 거치는 것이 민주국가의 기본 프로세스다. 미 의회가 비준하고 백악관이 최종 서명했으니 한국 국회도 비준해야 한다는 논리는 외압(外壓)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청와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말하지만, 미 의회 로비에 들인 시간과 노력의 반만이라도 들여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설득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다(all politics are local).” 오늘따라 유난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팁 오닐 전 미 하원의장의 경고다. 국회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협의와 합의를 통해 이번 비준안을 다뤄주길 기대할 따름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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