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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한 발만 더 뛰면 지구 ~ 태양 거리만큼 앞서는 날 옵니다”

이영표 선수는 축구팬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대표팀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이영표(34)는 지난 1월 축구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올 6월 사우디 알 힐랄에서 나온 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백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은 아직도 ‘대표팀 NO 12’ 이영표를 그리워하고, 그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이영표는 1999년부터 12년 동안 A매치 127경기에 뛰었다. 홍명보(136경기)에 이은 국내 2위 기록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10년 동안 새벽과 밤에 개인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고3 때는 줄넘기 2단뛰기(쌩쌩이)를 연속 1000개나 했다고 한다.
이영표는 ‘초롱이’라는 별명답게 꾀가 많고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 그는 2009년 자전 에세이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홍성사)를 냈다. 이 책에서 좌절과 실패로 얼룩졌던 무명 시절과 이를 극복해 낸 ‘노력의 힘’을 담담히 풀어냈다. 이 책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2만 부 이상 팔렸다.

정영재의 스포츠 오디세이 <19> 이영표, 축구와 인간을 말하다


지난 14일 서울 건국대 근처 북카페에서 마주앉았다. 우리는 축구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속에는 성공과 실패의 법칙, 스포츠의 상업화, 인종차별 등 다양한 주제가 녹아 있었다.이영표는 노력에 대해 말하며 “땀은 흘린 만큼 정확히 자기에게 되돌아온다. 이건 내가 체험한 법칙”이라고 했다. 그는 종이 하나를 달라고 한 뒤 설명을 이었다.
“A4용지 한 장의 두께는 0.1㎜다. 한 번 접으면 0.2㎜, 두 번 접으면 0.4㎜, 세 번이면 0.8㎜가 된다. 이런 식으로 100번을 접는다고 하면 두께가 얼마나 될까.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80조 배가 된다. 30번을 접으면 1000㎞, 31번을 접으면 2000㎞다. 처음에는 경쟁자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자가 30번을 접고 끝냈을 때 내가 31번을 하면 1000㎞ 차이가 난다. 어느 순간 한 발짝 더 노력하는 건 지구에서 태양까지 한 번 더 가는 거리가 된다. 천재는 노력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이영표는 성공과 실패에 대해 명확한 기준도 설명했다. 책 제목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의 뜻풀이였다. “내 축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경기마다 게임을 망치곤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이젠 끝났다’ 싶은 순간들이 인생에 장애물이 안 됐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걸 얻곤 했다. 성공이란 이름으로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그 성공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학에 떨어지고 직장을 못 구하는 등 실패로 시작한 사람들이 오히려 성공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

그는 “특히 젊은 날의 성공은 현상일 뿐이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이걸 깨달으면 성공했다고 교만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영표가 건국대 4학년 올라갈 당시 건국대에 올림픽대표가 5명이었다. ‘내가 쟤들보다 나은 것 같은데 왜 나는 안 뽑히나.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참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렇게 생각을 바꿨다. ‘지금 세계 최고라고 하는 앙리나 호나우두를 보면서 시기·질투를 느끼나. 그렇지 않다.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앙리나 호나우두는 인정하면서 옆에 있는 애들한테 이런 마음 갖지 말자’. 그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이영표는 “박지성도 올림픽팀에서 내가 부상당한 사이 내 백업요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 지성이는 충분히 그 자리에 오를 성품과 실력을 갖췄다. 그래서 난 지성이에 대해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영표는 축구의 상업화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순수한 스포츠가 순수하지 않은 인간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 특히 프로 스포츠는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는 즐겁게 축구를 하기 위해 노력했고, 축구를 잘하게 될수록 즐거웠다. 그런데 프로에 와서 돈을 받는 순간부터 축구가 즐겁지 않았다. 돈을 받는 순간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데로 목적이 옮겨 간다. 그렇게 되면 축구가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된다.”

이영표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 갔을 때 유니폼 메인 스폰서가 도박 회사였다. ‘내가 도박하라고 광고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스폰서 없는 프로축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항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국내에서 밤잠 설치며 내 경기를 보는 팬들, 그리고 순수하게 팀과 나를 응원하는 토트넘 팬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영표도 박지성 못지않게 인종차별을 많이 겪었다. 유럽 팀에서 뛸 때 경기장에서 상대 팬들이 그를 향해 원숭이 흉내를 내고 소리 지르는 것을 자주 봤다고 한다. 그는 “솔직히 말해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들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속에 있는 교만을 보면서 인간의 죄성(罪性)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이 문제라고 본다. “그들은 최고급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선과 악을 함께 갖고 있다’는 인간 본연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부모나 선생님이 ‘그건 잘못된 행동이야’라고 따끔하게 가르쳤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영표는 최근 축구계의 승부조작과 한국 축구의 위기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축구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은 간단하다. 선수들이 매력적인 경기를 하면 된다. 팬들이 ‘와, 정말 잘한다’고 깜짝 놀랄 플레이를 해 줄 수 있는 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영표는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행정적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런 곳이 있다면 일해 보고 싶다고 했다.

K-리그 팀에 복귀할지, 다시 외국으로 나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선택의 기준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게 나을 것인가’뿐이다. 아이들(딸 하엘, 나엘) 교육 환경도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진짜 교육은 집에서 하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건 밖에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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