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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사가 한국 대사보다 영어 잘해 놀랐다”

10살 소년은 중학교에 다니는 삼촌이 영어교과서를 큰 소리로 읽는 것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삼촌을 졸랐다. “나도 영어 배우고 싶어~.” 소년의 가슴속엔 목마름이 타올랐다. 중학생이 됐지만 학교 영어공부는 성에 차지 않았다. 영어학원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영어로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영어선생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턱대고 목포 시내에서 미군에게 말을 걸어도 봤다. 그러다가 소년은 언덕 위 천주교회의 미국인 신부를 생각해 냈다. 그 길로 가톨릭 신자가 됐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학교가 끝나면 외국인 신부와 수녀를 찾았다. 광복 직후의 혼란했던 1940년대 후반, 시골 목포에서 소년은 그렇게 영어를 배웠다.

미국인 영어교사에게 영어 가르치는 하광호 뉴욕주립대 교수

뉴욕주립대 영어교육학과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하광호(78) 교수의 어린 시절 얘기다. 그는 영어교사가 되려는 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한국인’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한 차례 고국을 찾는다. 국내 대학들의 영어교사 양성 프로그램에 초청돼 순회강연을 한다. 올해도 지난달 31일 방한해 성균관대와 한양대·대구가톨릭대·부산외국어대에서 강연하고 14일 돌아갔다. 하 교수를 11일에 만났다. 그의 한국어는 완벽했다. 남도 억양이 살짝 느껴지긴 했지만 표준말에 가까웠다. 한국말을 할 땐 소위 ‘버터 발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태생도 아닌데 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니 대단하다.
“자랑 같지만, 한국인 유학생들이 처음에 나를 보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로 착각한다. 나는 목포 문태고를 졸업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어보다 영어로 말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 환경에 노출되기 위해 노력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미국인 교수의 집에 살면서 영어만 사용했다. 영어의 바다에 풍덩 빠져 살았다.”

-집이 부유했나. 그 시절 미국 유학은 흔하지 않았을 텐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이다. 고교를 졸업한 지 2~3년 뒤 미국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미국교육사절단이 한국에 왔다. 그때 그분들을 위한 통역보좌관을 모집했다. 난 그 당시 이미 신부님께 배운 게 있어 영어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단번에 합격, 채용됐다. 한 교수의 통역이 됐는데 그분이 나를 무척 귀여워해 줬다. 미국으로 돌아갈 때 ‘내가 미국 가면 너를 초대할 수 있다. 올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에 ‘정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10여 년 뒤 그분이 정말 나를 초청했다. 항공권까지 사서 보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분의 집에서 아들처럼 살면서 도움을 받아 영어교육학 석사(뉴욕주립대 글래스버러 캠퍼스)를 끝냈다. 이젠 돌아가셨지만 정말 고마운 분이셨다.”

-왜 영어교육을 전공했나.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영어교사가 되고 싶었다. 미국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영어교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년 만에 석사를 마치고 공립학교 영어교사 모집에 응시했다. 2명을 뽑는데 나까지 11명이 왔다. 나 빼곤 모두 미국 태생 원어민이었다. 결국 미국 태생 여성 한 명과 내가 합격했다. 그 동네에서 한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동양인 얼굴은 내가 처음이었다.”

-영어선생으로 어려움은 없었나.
“다행히 동네 이웃들이 좋았던 것 같다. 학생 중엔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찰스라는 이름의 8학년생(우리나라 중2)이었다.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이놈이 ‘스스로 미국인이라 생각하나’고 물었다. (하 교수는 미국에 정착한 지 7년 만에 시민권을 땄다.) 내가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거꾸로 물었다. ‘여기’라고 그러기에 다시 ‘너의 조상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얼굴이 벌게지더니 ‘독일에서 왔다’고 대답하더라. ‘그럼, 너도 독일인 아니냐’고 했더니 더는 말을 못하더라. 난 웃으며 ‘우린 둘 다 미국인이다. 미국인은 조상이 누구든 시민권을 가지면 인종과 민족에 관계없이 모두 미국인이다”고 말해줬다. 그제야 그 학생이 ‘Thank you, sir’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대학교수가 됐나.
“교사생활을 15년쯤 할 때였다. 당시 미국에 비영어권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비영어권 이민자 자녀가 늘어나면서 미국 학교의 교육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들을 위한 영어교사와, 영어교사를 가르칠 대학교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특별장학금을 주는 영어교육 박사과정 학생들을 뽑게 됐다. 10명을 뽑는데 250명이 왔다. 나 혼자 동양인이었지만 당당히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이후 6년 동안 뉴저지주 시튼홀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는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 1991년 뉴욕주립대 교수로 임용됐다.”

-한국의 영어교육을 평가한다면.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옛날과 달리 호텔에 오면 영어도 어렵지 않게 통한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영어교육은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원흉은 고득점 획득에 치중하는 영어시험이다. 아마 지구상에서 영어에 가장 많은 돈과 열정을 쏟고, 출판을 하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 미미하다. 당장 호텔이나 관광지 또는 거리에 적혀 있는 영어 안내문에 엉터리가 너무 많다. 조만간 서울거리의 엉터리 영어표현을 모아 책을 하나 낼 생각이다. ‘이만하면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일본 등 다른 동양권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나.
“언젠가 유엔에서 각국 대사들이 나와 토론하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비영어권 대사, 특히 한국과 일본·중국·북한 대사의 연설을 유심히 봤다. 놀랍게도 일본 대사가 영어를 가장 잘하더라. 그 다음이 중국·북한 순이었다. 김정일도 영어교육은 제대로 시키는 모양이다. 한국 대사가 제일 못했다. 발음도 표현도 수준에 못 미쳤다.”

-올바른 영어교육이 되려면 어떡해야 하나.
“영어를 제대로 정복한 영어교사가 교단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어정복엔 네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가 영어 발음의 정복이다. 영어엔 44개 기본음과 이 기본음이 만들어 내는 500종의 문자표현이 있다. 영어교사는 이걸 철저히 익혀야 한다. 둘째는 구문 정복이다. 문법규칙을 넘어서 구문의 적절한 사용법을 배우지 못한 교사들이 많다. 쉽게 얘기하면 문법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셋째는 낱말의 의미 정복이다. 사전만 봐서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양한 영어표현 속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문화 정복이다. 영어사회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영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영어교실에서는 이걸 못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영어를 잘하려면 어떡해야 하나.
“가장 좋은 건 영어 원어민을 친구로 사귀는 거다. 그게 안 된다면 영어소설이나 신문을 교재 삼아 큰 소리로 읽는 것이 좋다. 영어신문의 경우 사설을 읽고 요약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해결된다. CNN이나 미국 드라마를 꾸준히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드라마는 스크립트(원고)를 찾아서 공부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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