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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자의 추억

삼성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이 1983년 2월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산업 진출을 공식화하자 일본 언론은 냉소 일색이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도발적인 보고서를 낸 민간연구소(미쓰비시)도 있었다. 기술과 자본·장비·시장 등 ‘5무(無)’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서도 회의론이 주류였다. 심지어 삼성 임직원들조차 반도체 관계사 발령이 나면 ‘아오지 탄광 간다’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비장한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면 당시 삼성의 불안과 고민이 잘 담겨 있다. 하지만 뚝심을 보여준다. 그해 말 미·일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불과 10년 뒤, 일본 업체들을 누르고 세계 최대 메모리 업체에 올랐다.

홍승일의 시장 헤집기

삼성의 라이벌인 현대가 오늘날 하이닉스반도체의 모태인 현대전자를 설립한 것도 83년이다. 중복투자 논란을 무릅쓰고 고 정주영 회장과 그룹의 총력지원 아래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세계 2위의 메모리 업체로 자리잡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과 상흔을 남겼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99년 ‘반도체 빅딜’은 우리나라 인수합병(M&A) 역사의 대표적 실패사례였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합친 시너지 효과가 가시화되긴커녕 수조원의 인수자금 부담과 때마침 불어닥친 반도체 불황은 회사의 숨통을 죄어갔다. 현대전자를 이끌어 온 정몽헌 회장은 경영난과 경영권 분쟁, 검찰 수사의 압박에 시달리다 2003년 비운의 운명이 됐다. LG의 내상도 만만찮았다. 강압에 못 이겨 알토란 같은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긴 구본무 LG 회장은, 빅딜을 중재한 전경련에 실망해 10년 넘게 발길을 끊고 있다. 현대전자의 주채권은행이던 외환은행도 직격탄을 맞아 오늘날 ‘먹튀’ 논란으로 시끄러운 미국 론스타에 팔려가는 신세가 됐다.

메모리 종주국은 미국이었다. 그러다 80년대 일본에, 90년대 한국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우리나라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계 메모리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 내는 지존이다. ‘한다면 한다’ ‘빨리빨리’ 같은 한국 특유의 DNA가, 기술혁신 주기가 짧고 신속한 투자 결정을 요하는 메모리 산업에 딱 맞는다고 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공격경영과 치킨게임 등쌀에 많은 메모리 회사가 문을 닫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업체가 대여섯 곳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하이닉스가 10년 넘게 은행 지배를 받다가 최근 재계 3위 SK의 품 안에 들어왔다. 한때 중국이나 미국에 헐값으로 팔려갈 뻔한 간판업체가 번듯한 한국 기업을 주인으로 맞는다기에 반갑다. ‘반도체 왕국’의 위상 지키기도 중요하려니와 하이닉스에는 우리나라 재계 총수들의 염원과 좌절, 임직원들의 피눈물이 배어 있다. 그리고 기업 부활에 국민의 돈인 공적자금 신세를 단단히 졌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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