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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펜디’ CEO 마이클 버크의 ‘명품 그리고 한국’



‘명품은 ○○다.’ 이 빈칸을 채운다면? 로마에서 만난 ‘펜디(Fendi)’는 ‘재미있는’ 명품이다. 가방을 살짝 옆구리에 낄 수 있게 바게트 빵처럼 만드는가 하면, 안팎의 색상이 너무 달라 열 때마다 깜짝 놀라는 핸드백을 내놓기도 했다. 모피 코트는 안감을 대지 않아 꿰맨 자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그조차 패션이라고 자부한다. 최근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장인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솜씨를 책으로 집대성했다. 그것도 이탈리아 명차 마세라티를 타고.

“진정한 명품은 죽어야 살아난다”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53) 펜디 최고경영자(CEO)는 말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광고 따윈 안 만들 겁니다. 그건 사기예요. 손으로 만지는 감각, 코로 맡는 가죽과 털의 냄새는 결코 디지털화할 수 없어요. 직접 느끼세요. 펜디는 경험의 브랜드입니다.”



로마=이소아 기자





“이탈리아에선 아름다움이 계층을 초월합니다”



펜디는 장인들을 찾아가는 ‘위스퍼드 이탈리안 그랜드 투어 ’의 탈것으로 마세라티를 골랐다. 마세라티는 1914년에 탄생한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로,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직접 차 디자인을 맡았다. 시골의 허름한 공방들을 명품차를 타고 방문한다는 게 영 부담스러워 보인다는 지적에 버크 CEO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며 웃었다. “아주 가난하고 지저분한 시골이라 해도 마세라티를 타고 가면 아이들이 나와 구경하면서 꽃을 던져줄 겁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차를 숭배하거든요. 아니, 사실 아름다움을 숭배합니다. 영국인들은 계층 간 갈등 때문에 명차를 탈 수 없어요. 사람들이 일부러 긁어버려요. 혹시 한국도? 그래서 500만 파운드(약 90억원)짜리 ‘애스턴 마틴 DB 4GT’를 이탈리아까지 끌고 와서 탑니다. 여기선 광장에 차 키를 꽂아놔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요. 이탈리아에선 아름다움이 계층을 초월합니다. 그게 다른 점입니다. 우리의 럭셔리는 문화적인 문맥에서 모든 삶에 은근히 녹아 있어요.” 





●이것부터 물어보자. 한국에도 장인이 많은데 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없을까.



 “느낀 대로 말하겠다. 한국인들은 엄청난 손재주를 지녔다. 역사도 로마보다 길다. 5000년이라 했던가? 세상에…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한국의 장인정신은 스승한테 배운 걸 전승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반복’을 통한 ‘재현’… 창의성이 부족하다.”



●한국 장인들은 창의적이지 않다는 소린가.



 “그럴 리가. 하지만 ‘아시아적’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더라. 사부를 찾아가 30년 동안 그 밑에서 도제로 살다가 훌륭한 품질을 완벽하게 물려받는다. 그렇게 전통의 명맥을 이어간다. 그런데 과연 ‘명맥을 잇는’ 것이 정답일까? 진정한 명품은 죽어야 살아난다.”



●무슨 뜻인지.



 “전통이 현대인들을 매혹시킬 명품이 되려면 죽었다가 태어나야 한다는 거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거다. 품질? 장인정신? 계승? 이것만으론 안 된다. 유일한 방법은 창의성과 디자인이다. 이걸 추가해야 명맥이 아니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거다.”



●펜디의 예를 들어달라.



 “우리는 모피(Fur)로 유명하다. 인류는 추위를 견디고 생존하려고 모피를 걸쳤다. 그런데 왜 아직도 입을까. 합성섬유로 얼마든지 저렴하고 따뜻한 옷을 만들 수 있는데. 모피가 패션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은 라거펠트의 창의성 덕이었다.”



 패션계의 거장 카를 라거펠트(77)는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오래된 인연은 펜디다. 1984년 샤넬과 작업하기 훨씬 전인 65년부터 펜디와 손을 잡고 이른바 ‘모피 혁신’을 일으켰다. 당시 모피는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그래서 비싸고, 크고, 묵직하고, 눈에 확 띄어야 했다. 라거펠트는 이런 모피를 가볍고 실용적이며 누구든지 ‘튀지 않고’ 입을 수 있게 변신시켰다. 가죽 제품에도 변화가 있었다. 가죽을 부드럽게 다듬고 무늬를 넣고, 염색까지 하면서 스타일과 디자인을 갖춘 실용적인 핸드백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무겁고 딱딱한 갈색’ 가방이 여성들의 갖가지 입맛을 맞출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태어난 것이다.



●라거펠트는 샤넬과 H&M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충돌은 없나.



 “라거펠트처럼 별난 사람이 왜 우리와 46년째 일하고 있는지 아나? 바로 펜디 집안의 여인들이 다분히 혁명적이기 때문이다(웃음). 펜디의 간판 디자이너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아주 어릴 때부터 라거펠트를 ‘카를 삼촌’ 이라고 부르며 자랐다. 그가 하는 많은 작업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고 70~80년대 그에게서 훈련도 받았다. 성(性)도 다르고 성(姓)도 다르지만 둘은 ‘혁신과 열정’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다른 갈등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거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왼쪽)와 마이클 버크.
●펜디는 여성들의 활약이 대단한 것 같다.



 “제대로 봤다. 펜디를 만든 사람은 아델 카사그란데다. 에두아르도 펜디와 결혼해 남편 성을 따른 것 뿐이다. 둘은 딸만 5명을 낳았는데 이들이 저마다 사업부를 맡아 가업을 이어온 거다. 실비아는 그중 안나 펜디의 딸인데, 실비아의 딸 역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명성이 높다. 정말이지 여성을 빼 놓곤 말할 수 없다.”



●여자들이 많아 좋겠다.



 “하하하. 말도 마시라. 2004년에 CEO가 됐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게 뭔지 아나? 바로 이 무시무시한 용(dragon) 같은 여성들의 인정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이 여성들은 아주 강하다. 그래도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져 오는 펜디의 DNA가 꽤 멋있다고 생각한다.”



●펜디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야누스(Janus). 두 개의 얼굴을 지닌, 그리스 신화에는 없고 오직 로마 신화에만 있는 신이다. 과거와 미래의 결합, 그게 우리의 컨셉트다.”



●전통과 혁신 말인가. 오래된 브랜드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펜디가 말하는 두 개의 얼굴은 ‘모순의 공존’을 뜻한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로마라는 도시를 알아야 한다.”



●로마가 어떻길래.



 “여기 얼마나 있었나. 며칠만 지내보면 알겠지만 로마는 복잡한 도시다. 겹겹의 모순과 불일치로 이뤄진 곳이다. 로마 사람들은 이런 모순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해 공존시키는 데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로마는 왕이 아니라 교황과 귀족의 도시였다. 펜디의 원천도 귀족이다. 귀족들은 기성품을 안 쓴다. 전부 맞춤식, 주문식이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는 귀족들 간에 ‘의식적으로’ 완전히 다른 명품들이 생겨났다. 자신만의 옷, 액세서리를 원한 거다. 우리의 메시지가 바로 이거다. ‘파토 아 마노 포 더 퓨처(Fatto a Mano/for the future)’, 즉 미래를 위한 핸드메이드(수공예)다. 핸드메이드는 결코 똑같을 수 없다.”



 펜디는 세계 곳곳에서 ‘파토 아 마노’ 정신이 담긴 행사를 열고 있다. 펜디의 장인과 현지 디자이너가 함께 세계에서 하나뿐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구 디자이너 이광호씨와 자개 디자이너 이삼웅씨가 솜씨를 뽐냈다. 나라마다, 매장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핵심이다.



●브랜드가 하나인데 어떻게 다르게 가나.



 “바로 그게 재미있는 거다. 물론 펜디도 광고문구 같은 것은 세계적으로 같다. 하지만 ‘미래와 과거의 결합’ ‘핸드메이드’라는 기본 방향만 지킨다면 뭐든 수용할 수 있다. 그러려면 현지 팀을 믿고 권한을 대폭 위임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현지 팀을 잘 못 믿는다. 꽃은 이렇게, 커튼은 저렇게, 음식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본사에서 다 정해 준다. 그러다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그런 이벤트가 돼 버린다.”



●현지화 사례를 들어달라.



 “2007년 세계 최초로 중국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했다. 당시 중국은 공산당의 압력이 더 셌고, 만리장성에는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만리장성으로 간다니까 다들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베이징과 로마는 거대한 문화유산을 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당시 패션쇼에 쓰이는 도자기와 접시, 그릇들을 몽땅 중국에서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구워 조달했다. 가마에 가서 주문을 하고 협상을 하느라 아주 힘들었다. 이탈리아산 도자기를 들고 가는 게 훨씬 편했을 거다. 하지만 도자기는 서구의 산물이 아니다. 만리장성에서 중국 전통 도자기를 쓰지 않고서 어떤 매혹적인 아우라가 풍겨나겠나.”



●모든 행사를 모조리 현지화하는 건가.



 “하하하. 거의 그렇다. 하지만 반드시 이탈리아에서 가져가는 게 있다. 바로 음식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프랑스보다 훨씬 뛰어나다. 지리적인 위치도 그렇고 신선함도 그렇고… 음식만은 반드시 이탈리아 것을 써야 한다. 특히 토마토와 바질(향신료의 일종)은 최고다. 꼭 맛보시라.”



●다음 이벤트가 어떨지 궁금하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something impossible)’에 도전하길 좋아한다. 로마 브랜드라서 그렇다. 남들도 돈 들이면 다 할 수 있는 건 안 한다. 내가 왜 한국을 좋아하는 줄 아나? 한국도 로마처럼 시끄럽고, 가족 중심적이고, 먹는 걸 중시하고…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다. 하지만 두 곳 모두 혼돈을 뚫고 나와 궁극적인 미를 창출할 줄 안다. 언제든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설마 이게 될까?’ 싶지만 미치도록 매력적인 걸 제안해 달라. 함께 기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모피는 조상들 살던 방식 아닌가 ”



펜디는 지난 6월 서울 한강 ‘세빛둥둥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2007년 만리장성 이후 아시아에선 처음이다. 쇼는 성공리에 마무리됐지만 우여곡절도 있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모피 반대’를 외치며 행사 중단을 요구한 것. 모피와 가죽은 펜디의 심벌이다. 버크 CEO도 굳이 이 질문을 피해가지 않았다.



●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대해 한 말씀.



 “모피 옷은 우리 조상들이 살던 방식이다. 시베리아에 사는 사람에게 사냥을 하지 말고 옥수수 농사를 지으라고 할 수 있나. 왜 수천 년 된 생활 방식을 인정하지 못하나. 그들에게 TV에 나와서 생방송으로 토론하자고 했다. 그런데 한 번도 응하지 않더라. 불쑥 나타나 빨간 페인트를 던지기보다 이성적으로 토론하는 게 낫지 않을까?”



●모피 말고도 재료가 많지 않나.



 “합성섬유는 석유에서 나오지만 모피는 천연이다.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특별한 자연의 힘을 품고 있다. 누구든 모피를 입으면 이런 기분을 느낀다. 모피는 자연의 힘이 동물을 통해 인간으로 전달되는 상징이다. 고귀한 생리다.”



●펜디 모피는 어떻게 특별한가.



 “싸구려 모피는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된 동물에서 나온다. 몇 년 지나면 털이 다 빠져버린다. 시위를 하려거든 그런 모피를 입은 사람들에게 가서 해야 한다. 우리 동물들은 야외에서 스트레스 없이 산다. 사람으로 치면 리츠칼튼 호텔 같은 환경이다. 엄청나게 사납지만 그 털만은 정말 아름답게 빛난다. 모피의 3대 핵심 키워드는 자연, 환경 친화성, 지속 가능성이다. 좋은 모피는 한번 사면 50년 이상 간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일이다. 내일이 가장 중요하다. 희망과 행복의 차이가 뭔지 아나? 희망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란 생각이고, 행복은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거란 걸 ‘아는 것’이다. 미묘하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다. 우리에겐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내일 없이는 삶도 없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그 또한 죽은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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