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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애국과 매국 사이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4년 만에 다시 ‘한·미 FTA’가 정국을 흔들고 있다. ‘찬성은 매국’ ‘반대는 애국’, 이 으스스한 이분법 앞에서 국민들은 심적 압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협상을 끌어온 검투사 김종훈 통상본부장은 졸지에 ‘현대판 이완용’으로 몰렸다. 4년 전 그때, 한·미 FTA가 나라 살 길이라고 명했던 ‘이완용의 몸통’이던 민주당 실세들에게 버선목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4년 만의 변신, 지난 정권이 사활을 걸었던 국가적 선택을 자신들이 뒤집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우리는 잘 모른다.



 ‘찬성은 매국’이란 급변의 불화살이 김종훈 본부장의 가슴만 뚫은 것은 아니다. 시민들도 부지불식간 매국 대열에 끼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닥뜨렸다. 명칭도 생소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는 변신의 소장이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 실세들이 쏴올린 한·미 FTA 미사일을 벙커버스터로 회항시킨 부호였다. 친미 세력에 날린 경미(警美) 세력의 자주포, 신자유주의자의 환상을 겨냥한 민족주의자의 요격, 여론은 벙커버스터의 위력에 굴복하는 듯하다.



 한·미 FTA는 정말 나라를 망칠까? 벙커버스터가 국익을 지킬까, 파괴할까? 필자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국·칠레 FTA는 와인 한잔의 대화로 쉽게 판결낼 수 있었다. 세계 세 번째 규모인 한·미 FTA, 게다가 전문 법조문이 가득한 ISD를 선술집 안주 삼아 논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괴담이 맹위를 떨칠 만하다. 식자들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전문가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경제학자 5명, 국제법학자 3명에게.



 한·미 FTA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일치했다. 한국은 무역국가이고 해양국가다. 세계시장으로 뻗어가는 것이 최고의 생존전략이라는 중론이었다. 거기엔 타이밍이 중요한데 산업보완론적 관점에서 지금이 미국과 협정을 체결할 적기다. 최대 시장 미국이 버린 산업 틈새를 선점해야 한다. 글로벌 가치생산연계망에 공세적으로 참여해야 할 우리에겐 주저할 시간이 없다. 한국은 관광으로 먹고사는 그리스가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치라면 개폐공방전이 아니라 피해부문의 보호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ISD에 대한 국제법학자들의 판단도 그랬다. 경제주권을 제약하는 것은 ISD가 아니라 WTO다. WTO가 판결하면 국가정책을 철회해야 하지만, ISD는 개별 기업의 권리보장 매뉴얼이다. ISD가 ‘경제헌법’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견해다. 유럽과 일본 모두 도입한 ISD를 유독 미국이 악용할 것이라고 고집하는 배경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탐욕스러운 월가 자본이 한국의 공공정책과 자본시장을 집어삼킨다? 그건 과민증이다. 미국의 대형 수퍼가 골목상권을 몽땅 파괴한다? 글쎄, 미국의 최강 유통업체 월마트는 철수했고, 코스트코는 양재동 구석에 몇 년째 처박혀 있다. 한국인의 불매운동이 ISD보다 더 위력적임을 그들은 잘 안다. 한국은 정치부패 때문에 투자조건을 수시로 바꾸는 볼리비아나 콜롬비아가 아니다.



 한국의 최고 전문가들은 ‘단단한 사후대비책’을 전제로 한·미 FTA에 적극 찬성했다. 그렇다면 문의에 응한 경제학자, 국제법학자들은 매국노인 셈이다. 많은 매국 교수가 많은 학생을 미래의 매국노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미국 하원의원 35%, 151명은 왜 한·미 FTA에 반대표를 던졌을까? 제조업 강국인 한국으로 일자리가 이전될 것이 두려웠던 때문이다. 한국 국회의원 25%, 80명은 왜 반대하고 그중 12%, 40명은 왜 강경투쟁파로 나섰는가? 농축산업과 서비스업에 미칠 충격 때문이다. 미국은 일자리 이전을 방지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은 그 충격을 치유할 묘책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미국의 식민지’라는 말로 덮을 일이 아니다. 진정 ‘미국의 식민지’가 될 위험이 있다면 중국과 일본에 끼인 한국이 ‘FTA 폐기론’ ‘잠정적 유보론’ 말고 달리 생존할 길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 국론을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것이 애국은 아니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없었다면 이 급작스러운 변신을 단행했을까 하는 질문도 정치인들에겐 부질없다. 그래도 주문을 해볼 수는 있겠다. 중·일·러에 둘러싸인 한국의 결단은 무엇인가? 양 날개로 나는 것. 한·EU FTA가 오른쪽 날개라면, 한·미 FTA는 왼쪽 날개다. 참새 날개를 독수리 날개로 교체하는 21세기 ‘신조선책략’이다. 멀리 보면, 통일비용을 줄이는 진취적 선택이다. 통일 후, 허허벌판 북한에 무슨 돈으로 도로, 주택, 공장을 지을 것인가? 미국과 유럽의 자본, 기술, 지식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11일 밤,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미·일 FTA 참여를 선언했다. 세 가지 명분이었다. 한국으로 일자리가 이전되는 것, 내수시장의 노쇠화로 인한 산업 침체, 약화되는 미·일 동맹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강경투쟁론자들로 봉쇄되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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