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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부터 사간동 갤러리현대서 개인전 여는 이우환

이우환은 갤러리현대에서 여는 개인전에 대해 “이보다 더 간략해질 수 없을 정도로 극한으로 절제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여기, 근대와 싸우고, 세계와 싸우고, 그리고 자신과 싸우며 평생을 보낸 노인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 노인은 최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첫 대규모 회고전 ‘무한의 제시’(6월 24∼9월 28일)를 마쳤다. 아시아 미술가로는 백남준(1932∼2006), 중국의 차이궈창(蔡國强·54)에 이어 세 번째였다. 지난해 6월엔 일본 가가와현(香川?) 나오시마(直島)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다.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0)와 협업했다.

죽을 때까지 아우성쳐야 하는데 이젠 점점 힘이 없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 하나 찍으려고 헤맨다



이우환(75)은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日本)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60년대 말 일본에선 산업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회화나 조각에서 손대는 것을 자제하고 그대로 두는 운동인 모노하(物派)가 일어났다. 이우환은 이 운동을 이끈 이론가이자 작가다. 이렇게 그는 이미 역사에 자리를 잡았다.



Dialogue, 2011, 종이에 수채, 57×77㎝.
 이우환이 구겐하임 회고전 이후 첫 국내 개인전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15일~12월 18일) 연다. 14일 만난 이 ‘꼬장꼬장한 거장’은 그러나 이제 ‘늙음’에 대해 말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우성쳐야 하고,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힘이 없어진다”고 토로했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에 이어 80년대 즉흥 연주를 하듯 비껴나간 선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바람 시리즈’로 이채로운 행보를 보였던 것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능하면 뉴트럴(neutral)한 점을 찍고자 했다. 그러려면 기계처럼 철저해야 하는데 손이 떨리고 몸이 못 따라가 맘대로 안 됐다. 해서 내놓은 게 ‘바람으로부터’였다. 그것은 내 안이 아니고, 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누구는 ‘자유분방’이라 말했지만 나는 곤혹스러웠다.”



 캔버스에 기를 모아 찍는 점도 그와 함께 늙어갔다. 90년대까지는 한 화면에 서너 개의 점이 찍혔지만 이제는 한두 개 정도다. “점이나 선에서 출발한 것이 더 넓은 공간성을 갖게 됐다. 자기를 가능하면 줄이고 자기 아닌 부분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다.”



 이우환을 두고 사람들은 화가이며 조각가이자 평론가, 철학자, 문학가, 음악 애호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몸으로 그리는 화가’다. “회화는 일정한 평면에 한계를 짓는 거다. 어릴 때부터 배운 그리기에 내 신체의 특성을 쌓는 것, 내 그리기에선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늙어가는 게 곤혹스럽다.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사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우성쳐야 하고, 난리를 떨어야 하고,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힘이 없어진다. 숙성되고 다듬어진다고 합리화할 수밖에.”



 -어떤 점이 힘든가.



 “내 그림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한데 막상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대단히 에너지가 든다.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점점 어렵다. 점 하나 찍으려고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헤맬 때가 많다. 그림 하나에 40∼50일이 걸리도록 진땀을 뺀다. 4∼5년 전엔 1년에 20∼30점 그리던 게 점점 줄어 요새는 열서너 점 밖에 못한다. 앞으로 작품이 조금씩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



 -어떤 예술가로 남길 바라나.



 “작가의 욕심은 자기 작품이 오래도록 남고 많은 사람이 봐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결국 그림도 너덜너덜 해어져 없어질 것이고, 자연과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그저 내가 20∼21세기의 문제를 극한으로 몰고 가서 ‘예술’이라는 것에 작은 꼬투리, 하나의 힌트를 주는 그런 존재로 기억되길 바란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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