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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79> 픽토그램

외국을 여행하는데 갑자기 볼일이 급하다면? 서둘러 남녀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화장실 표지’를 찾게 마련이다. 만약 이 표지가 그림이 아닌 난해한 외국어 문장으로 써 있다면 어떨까? 그 나라 사람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외국인들은 자주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이런 화장실 표지처럼 글자로 설명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공공시설 등을 찾기 쉽게 안내하는 것이 픽토그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화 시대에 맞춰 300여 개 픽토그램을 국가표준화하고 있다. 픽토그램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 등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 픽토그램 써달라” 일본 제안에 자극 받은 한국, 표준화 나섰죠

손해용 기자



픽토그램(Pictogram)이란 ‘그림(Pi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다. 사물·시설·행동 등을 상징적인 그림으로 나타내 언어·가치관·연령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상징문자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교통표지 매뉴얼 쓴 미국



글로 안내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문맹자나 외국인도 이해하기 쉬워 미국 등 선진국에선 1920년대부터 써왔다. 픽토그램이 가장 먼저 발달한 곳은 미국이다. 1920년대부터 교통표지 매뉴얼을 개발해 사용했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도로가 복잡해지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표지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은 48년 런던 올림픽에 픽토그램을 처음 제작해 사용했고, 일본은 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한 공공안내 그림표지를 개발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한국, 2002년 월드컵 앞두고 표준화 … 372종 등록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에서 쓰는 픽토그램을 모방하거나, 각종 기관·기업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해 오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픽토그램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자신들이 개발한 픽토그램을 한국의 경기장 주변에 붙이자고 제안해 온 데 자극받아 지식경제부 한국기술표준원에서 직접 나서 개발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 지하철·화장실 등 30종, 2002년 버스·소화기 등 70종 등을 국가표준(KS)으로 제정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일 새로운 픽토그램 35종을 추가하면서 현재 372종의 픽토그램이 국가표준으로 등록돼 있다.



픽토그램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예컨대 우리나라 화장실 표지는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사모관대를 쓴 신랑과 족두리를 쓴 각시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표지는 너무 한국적이어서 외국인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 맹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기표원은 일반인의 인지도가 높은 일반 남녀 그림으로 국가표준을 정했다.



절 안내 표지도 비슷하다. 예전에는 ‘卍’로 표시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나치 문양과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탑 모양의 그림으로 바꿨다. 국제화 시대에 맞춰 픽토그램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셈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고려해 바꾼 경우도 적지 않다. 의사를 뜻하는 픽토그램은 미국·유럽에서처럼 ‘뱀과 지팡이’ 그림을 사용했지만 ‘청진기를 목에 건 사람’ 그림으로 바꿨다. 원래 뱀과 지팡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신(醫神)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뱀에 물린 사람을 치료하는 곳’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다.



동물원 표지는 지금까지 코끼리·원숭이 등 다양하게 표시돼 왔다. 그러나 우리 국가표준에서는 ‘기린 그림’으로 통일됐다. 현재 외국에서는 대부분 코끼리가 동물원 표시로 많이 쓰이고 있다.



기술표준원 측은 “예전에는 각 기관·기업들이 돈을 들여 픽토그램을 새로 개발하는 등 번거로움과 예산낭비가 컸다”며 “하지만 국가 표준의 개발로 이런 국가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반 디자인과 달리 독창성 아닌 익숙함 고려



픽토그램을 도안하는 과정은 일반 디자인과는 정반대다. 보통의 디자인이 ‘개성’이나 ‘독창성’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픽토그램은 ‘익숙함’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대다수 사람이 이 그림을 익숙하게 여기는가. 이 그림이 뜻하는 바를 알아보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다. 세종대 산업디자인학과 박진숙 교수는 “그래서 픽토그램을 도안하는 과정에서는 사회문화나 생활습성을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도안한 뒤에는 테스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안의 상징을 알아보는지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양성평등, 장애인 배려 … 사회 변화 따라 바뀌어



어린이 동반자 우대석. 기존에는 치마를 입은 여성을 형상화됐으나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중성화했다(左), 어린이 동반자 우대시설. 마찬가지로 치마를 입은 여성의 그림에서 중성화했다(右)
픽토그램은 사회변화를 따라 함께 변한다. 지난 8일 기술표준원은 양성평등, 장애인 배려 등을 고려한 픽토그램 표준을 선보였다. 우선 남녀의 성(性) 역할을 고정관념화할 가능성이 큰 픽토그램을 수정했다. 예컨대 지하철·버스의 노약자석 등에 부착돼 있는 어린이 동반자 표지는 여성을 의미하는 치마를 입은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는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라는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새로 도입한 픽토그램에는 사람의 성별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을 배려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보조견·보행이 불편한 사람 등을 나타내는 픽토그램을 새로 제정해 공공시설에 활용토록 했다.



이런 표준 픽토그램은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픽토그램을 새로 도입하거나 바꾸는 공공기관·기업은 이 표준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잘 모르는 이주 외국인들이 급증하면서 이런 픽토그램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표준화 박차, 한국 픽토그램 32종 채택



각국의 픽토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국제적으로 기준을 통일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국제표준화기구(ISO)는 나라별로 달리 사용해 온 픽토그램을 국제 표준화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79가지 공공 안내 그림표지와 158가지 안전표지가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이에 따라 자기 나라 것을 국제표준으로 삼으려는 각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의 픽토그램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것은 총 32가지 종류다. 이외에 아직 절차상 최종 채택되진 않았지만 국제표준으로 채택이 확정된 픽토그램이 7가지, 올 7월 국제표준화기구에 신규 제안한 픽토그램 도안이 11가지 더 있다. 대부분의 픽토그램은 기술표준원의 용역을 받아 세종대 산업디자인학과 박진숙 교수가 도안했다. 기술표준원 최미애 연구관은 “우리가 도안한 픽토그램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된다는 것은 우리의 그림 언어가 공용화된다는 의미”라며 “우리가 도안한 픽토그램이 잇따라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디자인 문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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