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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관행이 법보다 위 … 할거주의에 입 닫고 눈 감아

지난달 27일 올림푸스 최고 경영진이 기자회견 후 고개를 숙이며 CEO 전격 해임으로 빚어진 물의에 대해 반성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재정분식이 탄로난 것을 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빠진 그리스에서 제일 높은 산은 해발 2917m인 올림푸스산이다. 우연찮게 92년 역사의 광학기기 메이커인 일본의 올림푸스에서도 대규모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어 일본기업의 조락(凋落)의 연장선인 셈이다. 특히 올림푸스 사태의 파장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번지고 있다.

올림푸스 침몰 자초한 일본식 기업문화

“일본의 문화적 풍토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사원들도 이대로는 일 못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기쿠카와 쓰요시(菊川剛) 전 올림푸스 회장이 지난달 14일 마이클 우드퍼드 사장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글로벌화를 위해 서양인 CEO를 영입했으나 사람 잘못 봤다는 얘기였다. 문화 차이를 해임 사유로 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불법행위를 문화 차이로 물타기하려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카야마 슈이치 올림푸스 사장
드러난 분식의 큰 그림은 복잡하지 않다. 올림푸스는 증시가 한창 끓어오르던 버블경제 시절 회사 돈으로 재테크를 했다. 그러다 1990년대 버블이 꺼지면서 덜커덕 물려 손실을 봤다. 이를 장부에 반영하지 않고 20여 년을 질질 끌며 분식으로 감춰 오다 이번에 발각된 것이다. 올림푸스가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빼돌린 돈은 약 1000억 엔(1조4400억원)으로 추정된다. 2006~2008년 국내외에서 4건의 M&A를 하면서 비용을 과다 지급하는 형식으로 털어냈다는 것이다. 올림푸스가 이를 시인한 것은 11월 8일.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10월 14일 이후 3주일간 부인을 거듭하다 결국 인정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가총액 5500억 엔이 사라졌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마이클 우드퍼드(51) 전 올림푸스 사장은 취임한 지 2주일 만에 해임됐다. 당시 우드퍼드는 기쿠카와를 비롯한 중역들의 사임을 요구했다.

룰을 지키지 않았으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문화 차이로 돌리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5년 다이와(大和)은행 뉴욕지점이 11억 달러의 손실을 미국 금융당국에 은폐하려다 발각됐을 때도 그랬다. 다이와은행은 당시 일본 대장성에 이 사실을 먼저 보고했다. 그러나 부실화된 금융회사 처리에 여념이 없던 대장성은 ‘미묘한 시점’이라는 이유로 미연방준비제도(FRB)에 6주간이나 알리지 않았다. 결국 FRB가 이를 발견하고 대장성에 항의하자 당시 국제금융국장이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문화의 차이”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일본에선 이런 식으로 하는데 왜 따지느냐’는 식으로 항변한 것이다. 이 말은 두고두고 국제적인 비난 거리가 됐다.

올림푸스 사건을 두고 일본의 기업문화만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화 차이는 위법행위 자체가 아니라 발각된 다음의 대응 방식에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재계에 정통한 한 기업인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버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투자실패는 전적으로 경영진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학자 다케우치 야스오(竹內靖雄)는 일본인의 행동문법이란 책에서 “일본인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관행이나 룰을 사회·국가·국제사회의 관행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샐러리맨으로서 회사의 관행이나 상사의 명령을 ‘위법이니 안 된다’고 거부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회사의 명령이며,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까’라는 구실로 실행에 옮기는 게 보통이다. 발각되면 회사가 조직적으로 은폐 공작에 나선다. 나중에 처벌 받더라도 죄의식보다는 불운이나 화(禍)로 받아들이곤 한다.”

특히 화합을 중시해 편지풍파를 피하려는 풍토는 우드퍼드의 해임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이사회는 그가 제기한 의혹을 조사할 의사가 없었다. 더구나 핵심 인사 몇몇 이외에 대부분의 임원들은 분식회계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이를 ‘내 소관 아니면 끼어들지 않는다’는 일본기업의 고질적인 할거주의로 지목했다. 일본의 국민성과도 관련 있는 기업 풍토가 낳은 사건이므로 제2, 제3의 올림푸스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주주를 우선시하기보다 이사들이 자기끼리 의사결정을 하는 ‘컨센서스 경영’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 지배구조가 취약해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드퍼드는 해임된 뒤 FT와의 인터뷰에서 “경영판단은 소수의 고위 경영진이 내리고, 나머지는 무슨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려 들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주인에게 딸랑거리는 푸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일본 주류 언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올림푸스의 부실 은폐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FACTA라는 일본 월간지였다. 이 잡지는 지난 8월 올림푸스가 무모한 해외 M&A로 거액의 손실을 입었고,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올림푸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특종이었으나 다른 일본 언론들은 관심을 갖질 않았다. 우드퍼드도 FACTA의 의혹 제기를 계기로 이 문제를 들여다 봤다고 한다.

우드퍼드가 해임된 직후에도 일본 언론들은 올림푸스의 발표를 충실히 전달했다. FT가 우드퍼드의 해임 직후부터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언론들의 소극적인 대응에 FT는 ‘소심하다(timid)’고 꼬집기도 했다. FT의 도쿄 특파원 조너선 소블은 이 기사에서 “일본 주요 언론들이 올림푸스 사태를 축소 보도했다”며 “이는 언론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 언론과 기업의 유착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한 일본인 기자는 “일본의 한 신문사 계열 잡지사 임원이 올림푸스의 사외이사를 하기도 했다”며 “이런 관계가 올림푸스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은 이유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보도에서도 중요한 광고주인 도쿄전력을 의식한 나머지 공격적인 기사를 자제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일본 기자 사회의 폐쇄성도 지적된다. FACTA 기자는 기자단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올림푸스 사장의 회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한편 11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이례적으로 올림푸스를 직접 지칭하며 ‘사실을 명확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이어 12일엔 검찰·경찰과 증권거래감시위원회가 합동 조사에 착수한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 미국·영국의 당국도 조사에 나섰다.

이에 앞서 도쿄증권거래소는 10일 올림푸스를 감리 종목 대상으로 지정했다. 올림푸스가 증권거래소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분기 실적보고서 제출 마감인 14일을 지킬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 달 연장해 12월 14일까지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도 못 지키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이번 사태로 올림푸스의 주가는 ‘날개 없는 추락’을 보이고 있다. 우드퍼드 사장 해임 직전 2482엔이었던 주가는 지난 11일 460엔으로 5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시가총액도 6732억 엔에서 1248억 엔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외국인 대주주들은 우드퍼드의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복귀하더라도 우드퍼드에게는 난제들이 쌓여 있다. 분노한 주주들은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광학기기 명가 올림푸스
1919년 변호사 출신의 사업가 야마시타 다케시(山下長)가 세운 일본의 광학기기 메이커다. 처음엔 다카치호(高千<7A42>)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미야자키(宮崎)현 북쪽의 관광지인 다카치호는 일본 건국신화에서 신(神)들의 땅으로 통하는 곳이다. 야마시타는 이에 착안해 “일본의 다카치호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푸스”라며 1921년 올림푸스를 현미경 브랜드로 등록했다.

설립 초기엔 유럽 제품과 맞먹는 기능의 현미경과 체온계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의료기기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위 내시경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5%에 이른다. 특히 지금 의료계에서 일반화돼 있는 카메라 달린 위 내시경은 1950년 올림푸스가 세계 최초로 실용화한 것이다. 지금도 내시경 부문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회사의 수익도 대부분 여기에서 얻고 있다. 또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은 해외시장에서 나온다. 골드먼삭스는 지난달 13일 보고서에서 내시경 사업의 지배력과 성장성을 근거로 올림푸스에 대해 ‘매수 추천’을 했다.

분식회계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기쿠카와 쓰요시 회장은 2001년 6월 사장에 취임하면서 매출액을 당시의 두 배인 1조 엔으로 키우겠다고 호언했다. 그 뒤 수많은 이업종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신산업에 진출했다. 그가 취임하기 전 그룹 계열사는 71개였으나 현재는 3배인 199개로 늘었다.

일본 기업에 밝은 한 국내 기업인은 기쿠카와 회장을 ‘올림푸스의 독재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이 같은 경영 스타일 탓에 이사진은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게 결국 그의 판단 미스에 제동을 걸었어야 할 내부통제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올림푸스의 불법행위에 대한 내부고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타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간부의 불법행위를 한 사원이 내부고발 한 적이 있다. 올림푸스는 공식 사과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엔 고발한 사원을 타 부서로 이동시키고 최하위 고과를 매기는 등 보복 인사를 했다. 현재 이를 둘러싼 소송이 진행 중인데, 2심에선 올림푸스가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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