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박원순 시장, ‘노무현의 역설’ 잊지 말라

박원순 서울시장께.
사흘 후 취임식입니다. 이미 시장인데 취임식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만, 그렇더라도 요란 떨지 않기로 한 건 잘했습니다. 그간의 행보도 파격이었습니다. 노숙자 시신이 안치된 병원 영안실에 나타난 것도 놀라웠거니와 “연고 없는 사람이 가는 길에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 왔다”는 말은 감동이었습니다.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타난 지역을 찾아 주민을 위로하고, 스티브 잡스처럼 시 예산안을 직접 발표하는 모습도 신선했습니다. 소탈과 소통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딱’인 새 시장의 모습인 듯합니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그러길래 걱정입니다. 소탈과 탈권위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무절제와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침소봉대(針小棒大)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늘만 한 사건들이 몽둥이만 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세야 누가 탓하겠습니까. ‘자세’보다 중요한 건 ‘낮은 곳’입니다. 본말이 전도돼 ‘자세’에만 집착하다 ‘낮은 곳’을 외면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입니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그는 소탈과 탈권위 그 자체였습니다. 역사상 그만큼 낮은 곳으로 임한 정치 리더도 없지 싶습니다. 인기도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발목을 잡았다는 생각입니다. ‘노무현의 역설’이 단적인 예입니다. 그는 줄곧 ‘서민 대통령’을 자임했습니다.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을 배려하려 애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혜택을 본 계층은 부자였고, 서민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집값은 폭등했고 양극화는 심화됐습니다. 그 결과는 다들 아는 그대로입니다. ‘무조건 노무현 탓’이었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명박(MB) 정권이 출범했습니다.

양극화의 근본적인 이유야 세계화 때문이겠지만 그의 탓도 적지 않습니다. 그는 줄곧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가’에만 신경을 썼지 ‘그걸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가’엔 소홀했습니다. 목적보다 더 중요한 건 수단과 방법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전철을 박 시장이 밟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사회투자기금이 단적인 예입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창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야 누가 탓하겠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관철 방식입니다. 민간기업의 돈을 받아서 하겠다는 건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꼬리표 없는 준조세입니다. 말만 기부지, 실은 강제이기 때문입니다. 합리성은 물론 정당성도 결여됐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는 군사 독재정권의 폐습입니다. 이렇게 할 거면 예산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돈 쓰다 모자라면 기업 주머니에서 꺼내 쓰면 됩니다. 서울시가 물꼬를 텄으니 다른 지자체도 속속 뒤따를 겁니다. 일각에선 10·26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이 공격한 ‘협찬 인생’ 비판까지 다시 나옵니다. 속히 폐기하고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역설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마 기억날 겁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불법 노점상과 포장마차들이 활개를 쳤습니다. 길거리를 점령했고 사람들의 통행이 큰 지장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법을 무시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들의 편이니 자신들을 내치지 않을 걸로 짐작했습니다. 법보다 눈물이, 인심이 앞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박 시장의 서울시에도 이런 움직임이 보입니다. 민원인들이 박 시장을 만나겠다고 몰려옵니다. 시 청사를 점거해 밤을 새워가며 농성합니다. 무작정 민원실을 찾아와 “시장 어디 있느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박 시장은 그들을 만나 조속한 해결을 다짐합니다.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장이 만나지 못할 사람이 없고, 가지 못할 곳도 없다”는 박 시장의 원칙이 그르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눈물과 인심이, 법과 질서를 대신해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마십시오. 한 번에 모든 걸 바꿀 순 없습니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결코 없습니다. 천천히, 요란하지 않게 바꿔나가십시오. 그래야 역사에 남는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