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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승은 공짜 아니다 … 그 뒤엔 보이지 않는 ‘힘’ 있다

고구려 유민이었던 고선지 장군은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토번을 공략하며 부전승의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사진은 KBS가 지난해 방영한 ‘다큐멘터리 고선지 루트’의 한 장면. [KBS 제공]
지난 회에 이어 우리는 손자병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배우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리더는 손자가 말하고 있는 ‘전(全)’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은 물론 나도 깨어짐 없이 목적을 달성하는 ‘전’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 수준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3> 세상은 전쟁터, 어떻게 싸울 것인가(중)

모공(謀攻) 제3편의 첫머리는 이렇다. ‘용병지법 전국위상 파국차지 전군위상 파군차지(用兵之法 全國爲上 破國次之 全軍爲上 破軍次之)’. ‘용병의 법은, 나라를 온전하게 함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고, 나라를 파괴하는 것을 그 다음으로 여기며, 군(1만2500명 규모)을 온전하게 함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고, 군을 파괴하는 것을 그 다음으로 여긴다’. 여기서 잘 보면 ‘전(全)’과 ‘파(破)’가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온전한 상태로 목적을 이루면 가장 좋은 것이고, 깨어진 상태로 목적을 이루면 좋지 않다는 말이다. 비록 이겼다 하더라도 깨진 상태로 이기면 소용없다. 말 그대로 하책(下策)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어귀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우리가 외우고 있을 정도다. ‘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그러므로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백번 싸워서 비록 백번 다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좋지 않다는 얘기다. 백번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방도 깨어지지만 나도 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전(全)’의 파괴다. 그래서 좋지 않다. 여기서 그 유명한 ‘부전승’(不戰勝)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원래 부전승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정확하게 부전승이라고 연결된 말은 없고 단지 위 어귀 뒷부분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에서의 ‘부전’(不戰)과 앞 어귀 ‘백전백승’(百戰百勝)에서의 ‘승’(勝)을 조합해 신조어인 ‘부전승’(不戰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부전승은 오늘날 중국어 사전에는 ‘부전이승’(不戰而勝)이라고 명시돼 있다. 영어로는 ‘walkover’라고 표현된다. 우리말 백과사전에는 ‘추첨이나 상대편의 기권 따위로 경기를 치르지 아니하고 이기는 일’로 설명하고 있다. 단편적으로 표현된 사전적인 이 의미로는 부전승의 의미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부전승 달인’ 고선지회유·설득으로 정복
역사상 부전승을 잘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 우선 한나라의 유방을 도와 천하를 도모했던 한신(韓信) 장군이다. 한신은 초나라와 위나라를 차례로 격파한 후 20만 대군의 조나라와 맞붙었는데, 이때 불과 1만 명으로 그 유명한 배수진(背水陣) 전략을 구사해 이들마저 격파했다. 그리고 다음 목표로 연나라와 제나라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때 한신은 조나라의 패장(敗將)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를 극진히 대우하면서 그에게 다음 전쟁에 대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좌거는 “패장은 병법을 논하지 않는 법”(敗軍之將不語兵)이라고 말하며 사양했다.

거듭된 간청을 못 이긴 이좌거는 한신에게 한마디 했다. “옛말에 ‘슬기로운 사람도 천 번의 생각에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千慮一失),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의 생각에서 하나는 얻을 수 있다고 했다(愚者千慮必有一得)’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 말일지라도 성인은 가려서 듣는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이좌거가 한 말의 핵심은 이렇다. 전쟁을 즉시 중단하는 대신 조나라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배불리 먹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신의 은덕이 사방에 소문이 날 것인데, 바로 그즈음에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아 연과 제에 보내 군대의 무용을 자랑해 겁을 먹게 하라는 것이다. 한신은 이좌거의 말대로 행했는데 과연 연나라가 지레 겁을 먹고 손을 들었다. 이것이 바로 싸우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한 부전승이다.

다음 목표는 제(齊)나라였다. 그런데 제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병법의 시조라 일컫는 강태공이 봉읍을 받아 세운 나라였고, 자연조건이 좋은 굉장히 부유한 나라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원소의 근거지였고, 칭기즈칸이 호라즘을 공략하기 위해 가장 중요시할 만큼 군사적 요충지이자 식량 창고였다. 무엇보다도 제나라는 70개의 강력한 성을 갖추고 있었다. 무력으로 공격하면 많은 피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제나라를 공략하는 대목에선 한신이 아니라 유방(劉邦)이 한발 더 앞서갔다. 말 잘하는 사신 한 명을 보내 세 치의 혀로 싸움 없이 고스란히 70개의 성을 접수해 버린 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이미 한신의 소문은 제나라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한신보다도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유방은 이것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사신을 보내어 공갈을 치고 엄포를 놓았다. “내 부하 한신이 곧 당신의 제나라를 정복하러 올 것이니 미리 항복하라. 그러면 당신의 나라는 그대로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고, 항복이요!” 바로 부전승이다. 한신을 잘 이용한 유방의 한 차원 높은 부전승이다.

부전승을 멋지게 보여준 또 한 사람의 장군이 있다. 바로 당나라에서 활약했던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이다. 그는 727년 파미르 고원을 넘어 토번(吐蕃)을 정복할 때 회유와 설득을 통해 72개의 크고 작은 소국들을 싸움 없이 접수했다. 부전승의 극치다.

적의 꾀 베는 게 싸움의 첫 단계
여기서 분명히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 많은 사람이 부전승을 지독하게 오해하고 있어서다. 부전승이라고 해서 ‘싸움’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부전승의 진정한 의미를 몰라서 빚는 오해다. 부전승도 역시 ‘싸움의 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부지런히 부전승을 시도하되 부전승에 실패할 때는 곧바로 싸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제부터 논하는 싸움의 네 단계를 주의 깊게 읽기 바란다. 부전승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싸움의 네 단계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모공(謀攻) 제3편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가장 좋은 병법은 적의 꾀를 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적의 동맹관계를 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적의 병력을 치는 것이며, 가장 하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벌모(伐謀), 벌교(伐交), 벌병(伐兵), 공성(攻城)이 차례로 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싸움의 네 단계다.

여기서 가장 좋은 것은 벌모(伐謀)를 달성하는 것이다. 벌모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풀면 ‘적의 꾀를 베어버린다’는 것이다. 상대로 하여금 내 말에 절대 순종해 나를 거역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먹음직한 떡을 손에 든 친구 녀석이 있다고 하자. 배고픈 차에 잘됐다. “떡 내놔!” 이 한마디에 녀석이 순순히 떡을 내놓는다면? 바로 벌모를 달성한 것이다. 싸우지 않고 깨짐이 없이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이런 벌모가 가능할 것인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힘(power)에 의한 벌모다. 힘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상대에게 겁을 주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권력(權力)이나 금력(金力)도 힘이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런 힘 앞에 약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힘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둘째는 이익(profit)에 의한 벌모다. 사람은 결국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기 전에 진(秦)나라 왕이었을 때 “이 사람과 교유(交遊)하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법가 철학의 대부인 한비자(韓非子)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이익(利益), 권위(權威)와 이상(理想), 즉 비전(vision)이다. 여기서 한비자는 ‘이익’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고 ‘이익’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라고 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결국 ‘이익’으로 엮인 관계라고 말할 정도다.

셋째는 ‘감동’(感動)에 의한 벌모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데 감동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출중한 인격에 의한 감동, 훌륭한 서비스에 의한 감동 등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그런데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속성으로 인해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벌모(伐謀)는 가장 바람직한 단계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참 어렵다. 조직을 이끄는 세상의 모든 리더는 ‘무엇이 사람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느냐’ 하는 벌모 차원에서 ‘힘’ ‘이익’ ‘감동’에 대해 깊이 사유(思惟)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회에는 나머지 세 단계인 벌교(伐交), 벌병(伐兵), 공성(攻城)을 살펴보면서 부전승의 진정한 의미를 깨쳐 보기로 하자.




노병천 육사(35기) 졸업 뒤 합참전략기획장교, 미국 지휘참모대학 교환교수를 지낸 전략 전문가다. 34년동안 전쟁사와 전략 연구에 몰두했다. 이순신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 『이순신대학 불패학과-명량대첩』등 저서 29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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