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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하는 자세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Keats)는 ‘더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서울 때’란 시를 쓴 후 겨우 25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임종을 지켜본 친구 세번(Severn)은 키츠가 오히려 “두려워 말게. 이제 하느님의 때가 온 것 같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자신보다 오히려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욕심과 집착으로 살 만큼 살았는데도 죽음 이후를 준비하지 못해 자손들을 죽은 다음까지 괴롭히는 이들도 있다. 죽기 직전 성숙한 개성화 과정을 거쳐 천사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어린이가 있는 반면에 어두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죽을 때까지 응석만 부리다 가는 노인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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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죽음학자 퀴블러 로스는 죽는 과정을 부정하고(Denial), 왜 내가 죽어야 하느냐며 화를 내고(Anger),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 타협하다가(Bargain), 우울감에 빠지며(Depression), 결국 받아들이는 상태(Acceptance)로 요약했다. 물론 꼭 모든 단계가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고, 처음부터 체념하고 사후 세계에 몰입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과 의연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가까이 지켜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잘 받아들인다.

문화나 종교의 차이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고대 이집트나 티베트 사람들은 사후에 더 장엄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굳건히 믿기에 죽음을 축복처럼 준비했다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정서를 가졌다면 질병, 노화,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어떤 종교건 영성(Spirituality)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과정을 비교적 잘 견뎌낸다는 보고도 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힘든 일이다. 환자의 죽음 앞에 느끼는 자괴감과 무력감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감정 없이 차갑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환자들이 많이 서운할 수 있다. 환자의 주변 사람들 역시, 말기 환자를 격려해야 할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지 몰라 슬금슬금 피하는 경우도 있어서 환자가 더 외롭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말보다는 따뜻하게 안아 주는 몸짓과 공감하는 눈길이 더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간 사라질 존재지만, 죽음은 마치 나와 상관없다는 듯 사는 사람들도 많다. 천국을 가고 싶어 하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든, ‘무(無)’로 돌아간다는 허무주의자든 죽음만큼 어려운 삶의 비밀이 있겠는가. 융 심리학자 폰 프란츠(Von Franz)와 야페(Jaffe)는 임종 환자들의 꿈에 대해 책을 썼는데. 공통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는 모티프들이 많이 등장했다. 죽음이란 또 다른 나로의 변환, 혹은 원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내일이라도 죽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면 오히려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죽기 전 쓸 ‘버킷 리스트’를 사망선고를 받지 않아도 일찌감치 실행하고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용기와 결단력이 내게도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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