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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SF·돈 …인간 파노라마 담은 이야기보따리

발레 ‘셰헤라자데’를 위해 러시아 무대미술가·화가인 레온 박스트(1866~1924)가 구상한 1910년대 세트 디자인.
세상에 나온 이야기는 전파된다. 돌고 돌다 다시 제자리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문화와 문화, 문명과 문명이 만나게 한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역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33> 『아라비안 나이트』

아라비안 나이트는 세계 문학의 백미이자 뒤 이어 나온 무수한 세계 명작들에 영감을 준 ‘원천’ 문학 작품이다. 그런 작품은 많지 않다. 그리스 신화, 성경, 셰익스피어 희곡 정도가 같은 반열에서 거론될 수 있다. 서구의 대문호들은 어려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으며 자랐다. 괴테, 디킨스, 볼테르, 스탕달, 안데르센,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 에밀리 브론테, 톨스토이, 푸시킨, 플로베르처럼 아라비안 나이트의 영향권에서 작가의 꿈을 꾼 이들을 끝없이 열거할 수 있다.

뿌리는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 문학
아라비안 나이트에 대해서는 정확한 집필 연대도, 저자도, 이야기의 개수도 알 수 없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시작은 3~8세기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문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상의 근거는 없다. ‘신드바드’가 인도어라는 등 아라비안 나이트의 뿌리가 인도라는 증거는 많다.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인 3~7세기에 초기 형태의 아라비안 나이트는 인도에서 페르시아로 건너간다. 페르시아어 아라비안 나이트는 무미건조한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8세기 초부터는 페르시아어에서 아랍어로 번역된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색깔을 입혀 흥미진진한 들을 거리·읽을거리로 만든 것은 아랍인들이었다. 아랍·이슬람 세계로 건너간 아라비안 나이트는 발전의 중심이 바그다드(9~11세기)에서 카이로(12~13세기)로 옮겨간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영향도 감지된다. 신드바드의 모험 이야기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키클롭스와 동일 괴물이다. 성경의 모세 이야기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14~15세기 시리아 사본(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이집트 계통과 시리아 계통으로 대별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정본(定本)은 없다. 70여 종류의 판본은 이야기 순서가 제 각각이며 수록된 이야기도 각기 다르다. 오늘날 파편 형태로 남아 있는, 제일 오래된 아라비안 나이트는 9 세기 초의 것이다. 형태가 비교적 온전한 가장 오래된 사본은 3권으로 된 시리아본이다. 14~15세기 말에 형성된 시리아본은 300여 개의 이야기가 담겼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듣던 사람들은 중세 이슬람 도시의 소시민(petit bourgeois)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bazaar)의 이야기꾼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발전하다가 문자로 정착됐다.

18세기 프랑스 살롱·왕실에서 ‘대박’
부·권력·명예·미녀와 같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요 모티브들은 “영적인 완성을 상징하는 것들”이라는 식으로 억지로 끼워 맞출 수는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라비안 나이트는 대중이 즐기던 통속 민담집이다. 그래서 전통 이슬람 사회의 지식인들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로 돼 있다. 문법·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서구에서 높은 평가를 받자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아랍·이슬람 세계의 지식인들이 아라비안 나이트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불멸의 세계 문학 작품으로 만든 것은 유럽인들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유럽에서 최초로 번역한 것은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앙투안 갈랑(1646~1715)이었다. 소농(小農) 집안에서 일곱째 아들로 태어난 갈랑은 천일야화(Les mille et une nuits, 1704~1717)라는 제목으로 아라비안 나이트를 번역했다. 코란도 그가 번역했다. 골동품 연구가이기도 했던 갈랑은 이스탄불에서 동방 기독교의 성찬식(Eucharist)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신드바드 이야기를 1698년에 번역했는데, 신드바드 이야기가 더 방대한 민담 모음집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그는 시리아본을 입수해 완역에 나섰다.

신드바드·알리바바·알라딘을 전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만든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아라비안 나이트에 끼워 넣은 갈랑의 선택이다. 아랍어 원본에는 이들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고아 이야기’(orphan stories)라 불리기도 한다. 갈랑에게 신드바드·알리바바·알라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 사는 마론파 기독교인인 한나 디아브였다. 비록 아랍어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학자들은 이들 이야기가 진짜라고 인정한다. 신드바드·알리바바·알라딘 이야기가 각광을 받자 19세기에는 가짜 아랍어 원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갈랑이 번역한 아라비안 나이트는 프랑스 살롱 사회에서 활약하던 여성 지식인을 중심으로 전파됐다. 궁정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마침 18세기 초 파리는 유럽 고급 문화의 중심이었다. 덕분에 아라비안 나이트는 유럽 각국 언어로 번역돼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1708년부터는 영어로 번역됐다. 영국에서 갈랑의 역할을 한 것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1885~1887년에 16권으로 번역한 리처드 버튼(1821~1890)이었다. 버튼은 르네상스형 팔방미인이었다. 버튼은 성격이 까다로운 기인(奇人)이었다. 그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29개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언어학자이자 작가·군인·외교관이었다. 1853년에는 유럽인 최초로 무슬림으로 위장하고 메카에 잠입했다. 그는 탕가니카 호수를 발견한 탐험가이기도 했다.

갈랑과 버튼의 번역본에는 오역과 시대적 편견도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들이 번역한 아라비안 나이트는 민족지(民族誌, ethnography) 기능을 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18, 19세기 유럽인들이 아랍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안내서 구실을 한 것이다.

사실 아라비안 나이트는 부분적으로 중세 기독교 사회에도 이미 조금씩 유입됐다. 뱃사람, 장사군, 전쟁 포로 등을 통해서다. 지리적으로는 스페인·터키를 통해서 유럽으로 들어갔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영향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3), 영국 시인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1387~1400)에서도 발견된다.

너무 야해 금서 목록에 올라
초서·보카치오 시대까지, 유럽인들에게 아랍 세계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차이를 가늠해주는 기준 대상이 아니었다. 아라비안 나이트 시대에 달라졌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아랍·이슬람 세계는 유럽인들이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비교 대상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국 정서(exoticism)’의 상징이 됐다. 번역이 수반하는 첨삭 과정에서 18세기 유럽인들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19, 20세기에는 아라비안 나이트가 에로티시즘을 상징했다. 이런 배경에서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아랍·중동지역 지식인들은 유럽인들이 아라비안 나이트를 스스로는 높이고 아랍 세계는 격하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한다고 비판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틀 이야기(frame story)’ 기법이 사용된다. 산스크리트 문학에서 유래한 기법이다. 틀 이야기는 한 가지 이상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주는 큰 테두리의 이야기다. ‘서론 이야기(introductory tale)’라고도 불린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틀 이야기는 샤리야르의 여성 혐오 이야기로 시작한다. 왕·주권자라는 뜻인 샤리야르는 술탄 내지는 페르시아·인도 지역을 다스리는 황제다. 그는 왕후가 흑인 노예와 불륜 관계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왕은 둘 다 죽인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 “위험하다”는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된 샤리야르는 매일 처녀와 혼례를 치르고 합방한 후, 다음 날 아침에 죽이는 일을 반복했다. 왕국에서 처녀의 씨가 마를 정도였다. ‘채홍사’ 역할을 하는 대신(비지르)의 딸인 셰헤라자데가 혼례를 자청하며 총대를 멨다. 셰헤라자데는 ‘귀족 혈통’이라는 뜻이다. 셰헤라자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이야기 안에 있는 이야기들’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셰헤라자데가 살기 위해선 매일 밤 죽기 살기로 남편의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내놔야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처녀들의 목숨이 걸린 만큼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희극, 비극, 시(詩), 수수께끼, 연설, 과학소설, 외계 여행, 원시 공산주의 사회, 마술 반지, 하늘을 나는 말, ‘원조’ 로봇, 사악한 마법사, 신(神)의 섭리….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없는 게 없다. 일확천금, 쫄딱 망했다 다시 일어서 큰 부자가 되는 이야기, 신데렐라와 구조가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라비안 나이트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는 어린이 문학으로 다시 태어났다. 걸리버 여행기, 이솝의 우화가 겪었던 것과 같은 운명이다. 그러나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야한 이야기가 많다. 동성연애, 새디즘, 매저키즘, 근친 상간, 색정증(色情症, nymphomania) 등 온갖 다양한 성애(性愛) 스타일이 나온다. 역사상 아라비안 나이트는 금서 목록에도 자주 올랐다. 1980년 이집트에서도 야한 내용을 여과하지 않은 아라비안 나이트가 재까닥 금지됐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셰헤라자데는 아들 셋을 낳고 남편과 해로한다. 2008년 펭귄 클래식판을 기준으로 하면 아라비안 나이트는 3000쪽 분량이다. 아직 아쉬운 독자들을 위해 21세기에도 아라비안 나이트의 영감을 받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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