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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불려온 기관장 10여 명, 입 한번 못 떼고 사흘간 대기

8일 예산결산위원회 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답변할 차례를 기다리면서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김금래 여성부, 맹형규 행정안전부, 김성환 외교통상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아랫줄 왼쪽부터 김관진 국방부,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유영숙 환경부, 류우익 통일부 장관. [뉴시스]


예결위 7~9일 영상회의록 분석해 보니



여성가족부 김금래 장관은 지난 7~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했다. 여성가족부 예산 4447억원을 포함한 326조1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관련해 예결위의 종합정책질의를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 장관은 사흘간 한마디도 못했다. 예결위 소속 국회의원 50명 중 어느 누구도 김 장관에게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면 질의는 있었지만 서류로 대치하면 됐다.



 김 장관처럼 지난 사흘 동안 국회에 출석하고서도 공식 회의 시간에 질문 한 번 못 받은 기관장은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정선태 법제처장 등 10여 명에 이른다. 중앙일보가 7~9일 예결위 영상회의록과 참석자 명단 등을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75명의 장관·기관장이 회의에 참석했으나 질문을 받고 답변한 사람은 2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관장 등은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이들 중엔 주영섭 관세청장, 최규연 조달청장, 이돈구 산림청장, 이수원 특허청장처럼 대전에서 서울로 출장 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대전에 자리 잡고 있는 A청의 한 국장은 “예결위 회의가 보통 밤 12시쯤까지 진행되는데 질문 한번 받지 않고 그걸 지켜봐야 하는 우리 기관장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해 봤다”며 “대전에선 일이 쌓이고 있는데 국회에선 하루를 공치니 얼마나 답답할까”라고 말했다. B기관의 재정 담당자는 “의원들이 주로 행정부, 그중에도 큰 부처에 질문을 집중하는 만큼 헌법재판소·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관계자들은 온종일 기다리기만 하는 형국”이라며 “이건 비효율의 극치”라고 했다. C부처 사무관은 “밤늦게까지 대기할 때가 많아 공무원들은 예결위 일을 ‘대기성 업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워낙 지루하다보니 조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이 같은 ‘비효율’은 왜 생길까. 그건 326조원의 예산안에 대해 48개 부처 기관장·부기관장을 상대로 의원들이 한꺼번에 질의하도록 돼 있는 종합정책질의 구조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부처가 관련되는 장기적 사업·대형 국책사업 등에 대한 심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사실상 정치적 논쟁이나 의원 지역구의 사업과 관련된 질의가 많이 나오다 보니 질문은 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쏠린다. 7~8일 회의에선 시급한 예산 관련 질의 대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정쟁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FTA 문제는 종북·반미세력에 기존 정당이 발목을 잡힌 것”이라 했고,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야당이 폐기를 주장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라며 “호주는 ISD를 뺐는데 그러면 호주는 반미 국가냐”며 김황식 총리에게 따졌다.



특히 예결위에선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과 무관한 부처·기관에 대해선 질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8일 홍일표(인천 남갑)의원은 박재완 재정부 장관에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에 대해 여러 번 들었겠지만 강조하는 차원에서 한 번 더 질의하겠다. 질의가 아니라 강력히 촉구한다”거나 “인천 도시철도 2호선 국비 160억 증액을 꼭 반영해 달라”며 사실상 ‘민원’을 했다. 박재완 장관은 “(인천 남동을이 지역구인) 조전혁 의원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제가 답을 안 드리는 게 도와드리는 게 아닐지”라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기관장이 불출석하면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고, 자리를 뜰 때도 예결위원장이나 여야 간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융통성 없는 국회 규칙도 문제다. 의원들이 내실 있는 정책 질의를 하지 않고 기관장의 군기를 잡기 위해 고압적으로 질문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9일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제약산업도 모르고 복지부가 엉터리 짓을 하고 있다”고 했고, 민주당 장세환 의원은 8일 박재완 장관에게 “지금 경제 철학 강의 시간이 아니다”라고 핀잔을 줬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9일 한·미 FTA 괴담에 대한 방통위의 처벌 방침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가 “어떻게 의원 질의에 국무위원이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나”(한나라당 정태근 의원)라는 질책을 들었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는 “이젠 예산 심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이 기관장에게 미리 질의 순서를 알려주거나, 질의 분야를 국회 대정부 질문처럼 외교·사회 등으로 나눠 질의 일정을 별도로 잡으면 기관장 등이 헛걸음하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 교수는 “모든 부처 장·차관들과 관련 공무원들이 예결위에 대거 출석하게 되는 건 의원들의 질문 수준이 들쭉날쭉한 데다 기관장들의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돼 있기 때문”이라며 “각 상임위의 예비 심사를 내실화하고, 예산 심의의 틀을 바꾸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일현·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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