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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12)

[일러스트=이용규]
“어떻게 이런 일이!”



식겁한 나는 뒤로 물러서며 김승의 얼굴을 뜯어본다. 반듯한 코와 야무진 입매 모두 준수하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이 금강석 같다. 사람을 압도하고 주눅들게 만드는 눈빛이다. 차림새는 다른 경교승들과 같이 흰 가사장삼이다. 높다란 관모와 십자가 장식 지팡이를 든 것만 다르다.



“그간 눈이 안 보여서 고생 많으셨다고요?”



나를 대하는 김승의 말과 몸짓이 무척 자연스럽다. 마치 친하게 지냈던 옛 동료를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스스럼없다. 비위가 이쯤은 좋으니까 엉뚱한 일을 꾸미는 거다. 나는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쩔쩔맨다. 갑자기 눈을 뜬 것도 당혹스러운데 이런 김승을 상대하자니 종잡을 수가 없다. 나는 스물세 살 때, 부인사에 딸린 암자에서 노스님을 시봉하던 일을 기억해 낸다. 어언 십육 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는 경판 수리를 위해 해인사에서 부인사로 파견 나와 있던 판각승이었다. 암자는 부인사와 십 리가량 떨어져 있었고 한 달에 두어 번 내려가는 게 고작이었다. 부인사 장경각 뜰에서 몇 차례 그와 스쳤었다. 물론 서로 말을 섞은 적도 없었다. 서예나 사군자 치는 걸 즐기는 학인스님들은 그에게 낙관을 부탁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런 일조차 없었다. 읽는 거라면 몰라도 쓰고 그리는 거라면 맹꽁이다.



“법명이 따로 있지 않았던가요?”



내 입에서 어렵사리 나온 물음이다. 대중스님들이 판각승 누구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게 도리어 이상하다.



“법명을 가지기 이전에 난 김승이었고 김승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피조물이오.”



“부처님 말씀을 새기던 판각승이 경교도로 개종(改宗)하다니!”



그때 동굴 안쪽에서 나무통 두드리는 소리가 몇 차례 울렸다. 돌아보니 흰 가사장삼을 두른 경교승들이 동굴 벽 곳곳에 켜두었던 등잔불을 꺼나가기 시작했다. 등잔은 어른 키 높이의 벽에 홈을 파고 들여놓은 것들이었다. 등잔불이 꺼져가면서 동굴 안에 현묘한 어스름이 스며들었다. 경교승 무리들이 우리가 서 있는 입구 쪽으로 걸어 나오더니 머리를 숙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승의 장삼자락과 관모를 받아 강단에 가져다 놓은 다음 기다리고 있던 무리와 합류해 산을 내려간다. 수백 명이 모여 앉았던 동굴이 텅 빈다.



“자, 신성한 예배소에서 이럴 게 아니라 그만 내려가십시다.”



김승이 내 손을 잡아 이끈다. 다림질한 견직물을 쥐는 느낌이다. 흉측한 손이다. 양손 모두 심하게 문드러져 있다. 화상을 입은 흉터다. 고려 최고의 각수장이 손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손으로 여태껏 판각을 해왔다는 것인가.



동굴을 나서는데 커다란 사자 한 마리가 달려든다. 나는 이제 놀라지 않는다. 가온이 데리고 다니는 사자견임을 아는 터수에. 내가 눈 뜬 걸 반기기라도 하듯 커다란 꼬리를 흔든다. 놈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풍성한 붉은 털은 자못 위용을 갖췄는데 눈초리가 처졌다. 사나운 기세가 빠진 토실토실한 개다.



가온의 등 뒤로 짙은 안개가 깔린 마을이 보인다. 몇 그루의 배나무와 이층 누각 기와지붕, 마을 복판의 늙은 팽나무 정도만 식별할 수 있다. 인간의 세상은 이처럼 낮아서 희고 푸른 새벽안개 밑으로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조복한다. 선경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영영 보지 못할 뻔했다. 끔찍하다. 눈멀었던 지난 사흘간은 악몽이었다.



초가집을 에두른 고샅 돌담, 그 밑에 곯아 떨어진 감마저도 정겹다. 가온과 함께 사는 김승의 집은 내 처소 바로 위에 붙어 있었다. 맞붙은 전 장군 집에서 살림을 돌봐주고 있었다. 전 장군의 안식구는 부엌에 나와 아침밥을 짓고 전 장군은 김승의 방에 화롯불을 들여놓는다. 찻주전자는 우리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생수로 채워두었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선 나는 전 장군이 화로를 놓기를 기다렸다가 포옹한다. 이마에서부터 턱까지 축난 데 한 구석 없이 통통한 얼굴이다. 대통을 쪼개 얹어놓은 모양의 코는 복스럽다. 몸통은 다부지고 뼈대는 굵다. 과연 듬직한 장군감이다.



“거 봐요, 승정 어른! 기적은 늘 일어나잖아요.”



포옹을 풀고 내 눈을 빤히 쳐다본 그가 탱글탱글한 음성으로 말한다. 그의 말이 맞다. 이렇듯 내가 눈 뜬 건 기적이다. 어제 낮에 나는 엿장수가 보는 데서 탁연에게 내질렀었다. 내가 눈을 뜨고 인보가 다시 살아나는 것, 이 두 가지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기적이 아니라고. 그런데 내가 정말로 눈을 떴다. 가온은 말했었다. 기적은 늘 일어난다고. 가온은 쐐기를 박았다. 내게 기적이 일어나면 메시아를 인정하겠다는 말씀 저버리지 말라고. 지금 가온은 이 방에 없다. 탁연도 엿장수도 없다. 하지만 어제 그들과 한 약속이 걸린다. 메시아는 세상을 구제하는 자라고 한다. 어느 능력자가 있어 지금 같은 세상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부인하자니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되고 인정하자니 부담스럽다.



전 장군은 나가고 김승과 마주 앉았다. 김승은 놋쇠 대야에 철제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따른다. 그 수반을 화롯불에 올려놓는다. 나는 식전에 차를 마시지 않는다. 식전에 차를 마시면 속이 깎이는 거 같고 식욕이 떨어진다. 김승과 나는 수반의 물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그의 호흡소리가 들린다. 내 호흡소리 역시 그의 귀에 가 닿으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수반에 담긴 물속에서 게눈 같은 물방울이 뽀르르 기어 올라온다. 물이 데워지고 있다. 나는 그의 침상 머리맡에 걸린 편액으로 시선을 옮긴다.



 



천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해와 달과 함께 나란히 걸리고



귀신과 오묘함을 다투도록 해야 한다(使千載之下 與夫日月齊懸 鬼神爭奧).



이 열다섯 글자로 된 글귀를 지은이는 대각국사 의천이다. 왕자의 신분이었던 그는 진리에의 목마름이 유달랐다. 부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송나라로 건너가 당대를 대표하는 고승들과 두루 논강하고 소통했다. 소동파 같은 문인이 국사의 벗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일본의 전적까지 끌어모아 경전을 판각하고 간행했다. 초조대장경에 담지 못한 경전을 집성한 교장(敎藏)이다. 김승이 새겼을 저 구절은 의천의 초인적인 정열과 의지의 표현이었다.



저렇듯 의천의 뜻을 받들고 원효굴에서 철야기도하는 사람이 불교를 버리고 경교도가 되었다. 부처님 말씀을 경판에 새기는 고려국 최고의 판각승이 경교 십자가로 대장경을 더럽혔다. 그런 잡스러운 경판이 어찌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해와 달과 함께 나란히 걸리겠는가. 머나먼 대진국 귀신과 기묘하게 다투기는 할 것이다.



나는 붉은빛이 도는 김승의 얼굴을 본다. 김승은 어느새 물이 끓고 있는 화롯불 위의 수반을 응시하고 있다. 게눈들이 무수히 늘어나면서 김이 피어오른다. 수반의 물이 점점 졸아든다. 김승은 차를 끓일 기미가 없다. 차를 끓이려 했다면 처음부터 주전자를 올려놓았을 거였다.



“연못에 물이 다 말라가는구려.”



그가 수반을 물끄러미 보면서 읊조린다. 나는 좀 생뚱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꾸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



“수반이 없었다면 화롯불이 꺼졌겠지. 이렇게 말이오.”



그는 행주를 걸치고 빈 수반을 들어낸다. 주전자를 기울여 화로에 붓는다. 뿌지직, 소리를 내며 불이 꺼져간다. 연기가 자욱하다. 뿌옇게 재가 날린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물과 불 같은 상극의 세월이오. 백성들은 손사래 정도가 아니라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오. 지밀 승정, 나는 혁명할 거요!”



단도직입적인 말이었다. 아까 예배하면서 ‘나를 덮치는 사자를 집어삼켜라’ 외쳤던 말이 이 뜻이었나 보다. 이 사람 엉뚱하기만 한 게 아니라 무모하기까지 하다.



나는 김승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실성한 사람 눈동자는 광기로 번뜩일지라도 초점이 없고 슬기도 없다. 이 사람의 눈은 정기로 뭉쳐 있다. 단언컨대 몽상가나 망상가가 아닌 것이다.



“당신이 신성한 경판을 십자가로 더럽힌 이유부터 묻겠소.”



나 역시 똑 부러지게 묻는다. 그걸 알아내려고 여기에 왔고 그 고생을 했으며 인보까지 잃었다. 그가 하겠다는 혁명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백부 되시는 유승단 재상과 이 김승이 주고받은 얘기는 안 궁금하시고?”



왜 안 궁금하겠는가? 사실은 그게 더 궁금하다.



문밖에서 기침소리가 들린다. 그가 들어오라고 말한다. 쌍둥이 형제와 삐쩍 마른 경교승 하나, 그리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인물이 안으로 들어와 김승에게 인사를 한다. 개경에서 수기승과 내가 몽골군 기마병들에게 쫓길 때 목숨을 구해준 거지왕초였다.



“여길 어떻게!”



나는 내 생명의 은인을 일어나 맞는다.



“이 마을에 본가가 있답니다.”



“무슨 말씀이오?”



“집이 여기라니까요.”



“모두 내 혁명동지들이라오. 탁연과는 폭포 산막까지 다녀왔지요?”



김승이 내 의문을 풀어준다. 나는 개경과 강도, 멀리 남해까지 촘촘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이들의 조직을 실감한다. 소름이 돋는다. 이들은 꽤 오래전부터 매우 치밀한 준비를 해오고 있는 종교집단이었다. 나는 김승을 위시해 탁연과 쌍둥이 형제, 거지왕초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모두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다. 거지왕초의 경우 부러 거지 행세를 하고 있는 고려 최고의 기마병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딸의 근황부터 말하라.”



김승에게 딸이 있었다는 건가. 입만 열면 깜짝깜짝 놀랄 얘기들이 튀어나온다. 하긴 경교도가 된 그인데 처자식이 있다고 문제 될 게 없었다. 쌍둥이 형이 김승에게 간찰 뭉치를 바치고 나서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내 앞에서 쩔쩔매던 어제와는 사뭇 다른 어조다. 거침없이 쏟아놓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초파일 연등회 화재사건은 김지양과 쌍둥이 형제가 완벽하게 연출한 덫이었다. 김지양은 백련이라는 비구니 행세를 했지만 처음부터 출가한 적이 없었다. 이 마을에 살다가 지난봄 강도로 들어간 처자였다. 미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최항이 그 덫에 완벽히 걸려들었다. 그날 가게 앞에 대기시켜 놓았던 물동이에는 내가 추리했던 것처럼 유도화 독이 녹아 있었다. 이 마을 약초골에서 가져간 독이었다. 김승의 딸 지양은 웃음 속에 든 칼이자 솜이불 속의 바늘 같은 존재였다. 무술과 본초학, 향료, 불교에 이르기까지 잘 훈련받은 미모의 자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전연 눈치채지 못한 최항과 그의 아버지 최이 집정, 아들 최의는 꿀단지에 든 달콤한 독을 빨면서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 삼대와 함께 지양 자신도 죽어가고 있었다. 함께 즐기는 음식과 향기에 든 독에 중독되어.



“미인계(美人計)에 고육계(苦肉計)도 모자라 36계에도 없는 온갖 계책이 고리처럼 연결돼 있군. 사람 질리게 만드는 계략이오. 당신들이 이러고도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소?”



듣고 있던 나는 혀를 내두른다.



“불교가 왜 생긴 거지요? 부처가 우주의 비밀을 깨닫고 세상에 법을 전한 까닭이 뭐냐고요?”



탁연이다. 그야 중생의 안락과 행복 아니겠는가. 나는 조용히 웃어주었다.



“그래요.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요. 우린 다만 중생을 악에서 구해내고자 하는 것뿐이오. 최씨 무인세력을 제거하는 건 지밀 승정도 바라는 바 아니겠소?”



탁연의 자문자답에 무슨 이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다만 이들처럼 음흉하고 사악한 종교집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청잣빛 고려 하늘 아래 출현한 이들의 색깔은 핏빛이었고 모양은 정방형 십자가였으며 냄새는 맹독성 유도화 향기였다. 게다가 이들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딸의 정조와 목숨은 몰론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수단으로 이용한다. 불교의 비구니로 위장해 최항의 품속으로 뛰어든 지양 역시 십자가를 숨긴 경교도일 테니까.



“나한테 뭘 바라는 거요?”



좌중을 둘러본 내가 김승에게 묻는다.



“천년의 지혜를 모아 천년 뒤의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일!”



김승이 대각국사 의천의 편액을 돌아보며 외친다.



“우리 대장도감에서 해오고 있는 판각사업이 바로 의천 스님의 염원 아니오?”



“의천 스님이라면 이런 엉터리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 게요.”



“닥치시오! 엉터리 짓거리라니!”



나는 준엄하게 꾸짖는다.



“승정의 백부가 살아계셨다면 이 자리에서 혁명을 진두지휘하고 계실 게요.”



“뭔 얘기요?”



“집정 최이의 간자(間者) 인보가 훔친 편지 봤잖소. 대장경 판각사업은 처음부터 날조된 꼭두각시 놀음이오. 부인사 대장경을 몽골군이 불태웠다고 믿소? 그래서 대장경을 다시 새기면 그들이 물러갈 거라고? 임진년 겨울, 적들은 부인사는커녕 경상도 근처에 얼씬거린 적도 없었소. 난 그날 이렇게 살이 타들어가는 불구덩이 속에서 똑똑히 보았소. 몽골군으로 가장한 최이의 사병과 승병 정예군들을!”



김승이 두 팔과 배를 걷어올려 온몸에 엉겨 있는 끔찍한 흉터를 드러내보였다.



<제2부 끝>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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