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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종이에 그리면 그림,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 …

다, 그림이다

손철주·이주은 지음, 이봄

292쪽, 1만7500원




참 맛깔 나더군요. 두 분이 그림을 매개로 주거니 받거니 나눈 서간체 대화 말입니다. 미술 담당기자로 오래 일한 손철주 주간(학고재·사진 오른쪽)이야 익히 알고 지낸 분이지만, 언어학과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이주은 교수(성신여대·사진 왼쪽)는 책으로만 뵈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그림 사랑’으로 엮은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둘 사이에 끼어들어 함께 노니는 듯 했습니다. 동양과 서양, 옛 그림과 현대 그림, 문인예술과 대중문화가 남·녀이자 장(長)·청(靑)인 두 분의 대조적인 글쓰기 속에서 어우러지 더군요.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고 하셨나요. 학창시절 서양 회화 위주로 미술교육을 받은 지금 독자들에겐 아무래도 서양화가 더 친숙하겠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부터 영화 ‘양들의 침묵’까지 거침없이 넘나드는 이 교수의 그림 해설이 쏙쏙 귀에 박히는 이유지요. 그럼에도 저를 홀린 것은 동양화의 멋과 매력이었습니다. 옛 시를 곁들이며 유혹이니 일탈이니 하는 ‘현대적 주제’를 웅숭깊게 녹여낸 손 주간의 음풍농월 덕입니다.



 인간사 매한가지라도 동서양의 시선이 다르긴 했구나 싶은 게 특히 ‘나이’ 대목이었습니다. 오원(吾園) 장승업(1843~97)이 나이 싸움 하는 세 신선을 그린 ‘삼인문년(三人問年)’이나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가 달을 보는 노인을 그린 ‘바위에 기대 달을 보다’ 말입니다. 나이 듦의 씁쓸함을 넘어 해학, 혹은 해탈 같은 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쿠엔틴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늙은 부인’이나 페테르 루벤스의 ‘수산나와 장로들’에선 노인의 탐욕과 추함이 먼저 다가옵니다. 요즘 말로 ‘꼰대’들이랄까요. 물론 이 교수가 설명하듯 이것이 서양식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대비라 해도, 여백조차 작품의 일부인 동양화에서 나이 듦을 껴안는 태도와 비교됐답니다.



 ‘나’는 또 어떻습니까. 18세기 문인화가 표암(豹菴) 강세황(1712~91)은 일흔에 자화상을 그리고선 자필로 덧붙였지요. “저 사람이 누군가. 이름은 조정에 올라가 있지만 마음은 산림에 내려가 있다네.” 현실과 동경을 오간 자아를 자문자답하고 있습니다. 터럭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모사하는 정직함이 우리네 문인화의 전통이지요. 반면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자화상에선 나른한 판타지와 함께 자유분방함이 배어납니다. 광기 어린 영혼을 예술의 자유로 치유하는 보헤미안의 모습이라 할까요.



 소설가 김훈이 솔거의 일화를 들어 서문을 썼더군요. 그림을 ‘그리움’이라는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 했다는 글쓴이들의 의도처럼, 작품을 이 잡듯 뜯어보는 게 아니라 상상력으로 노니는 식이라 좋았습니다. 읽다가 오글거리는 대목도 없지 않았어요. 이 교수의 웃음이 어여쁘다고 연신 칭송하는 손 주간이 혜원(蕙園) 신윤복(1758~?)의 그림 속 한량처럼 느껴졌다면 과한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다 그림입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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