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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77> 서울시장

지난달 열린 10·26 재보궐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서울시장 선거였습니다. 선거가 남긴 파장도 컸습니다. 최근 패배한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고, 승리한 야권은 “시민의 승리”라고 자축했습니다. 서울시장이 어떤 자리이기에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걸까요. 대한민국의 수도 행정을 책임지는 서울시장이란 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남산터널·광화문 지하도 뚫은 ‘불도저’ 김현옥 … 최초 민선시장은 김상돈

뉴스크립을 e-book으로 보세요.

이한길 기자



연 20조 예산, 1만6000명 인사권 가진 ‘소통령’



1968년 9월 정릉~세검정을 연결하는 북악스카이웨이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서울시장(사진 오른쪽)이 기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다음 자리라는 의미로 ‘소(小)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는 뜻이지요. 서울시의 면적은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올해 추계인구는 1003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4898만 명)의 20.4%가 살고 있습니다. 유권자 수만도 837만4067명(10·26 재보선 기준)입니다. 2009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25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1065조원의 24%를 차지합니다. 청와대 등 주요 행정부처는 물론 대기업 본사 대부분이 서울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이지요.



서울시는 정부의 축소판입니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합니다. 그래서 서울시장은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행정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서울시의 지난해 예산은 20조6107억원. 이 중 인건비 등 행정운영비(1조1901억원)와 각종 재무비용(3조6081억원) 등을 제외하면 시장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10조9130억원에 달합니다. 서울시의 올해 재정자립도는 88.8%로 광역자치단체 중 1위입니다. 2위인 경기도(72.7%)보다도 16.1%포인트나 높습니다. 서울시장은 소속 공무원 1만6228명을 지휘하고 인사권을 갖습니다.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SH공사 등 5개 투자기관과 서울의료원 등 12개 출연기관 수장의 임명권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권한을 가진 서울시장은 얼마를 받을까요. 공식적인 연봉은 1억209만원입니다. 그러나 연봉이 전부는 아닙니다. 서울시장이 쓸 수 있는 업무추진비는 한 해 4억3900만원(기본 업무추진비 2억7700만원, 시책 업무추진비 1억6200만원)입니다. 서울시장은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중앙부처 장관급 대우를 받습니다. 다른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차관급입니다. 1962년 제정된 ‘서울시 행정에 대한 특별조치법’에 따른 것입니다. 국무회의에도 배석합니다. 지난 1일 자주색 국무위원단 배지를 달고 국무회의에 처음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시정을 펼치기 어렵다”며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종로구 혜화동 관사(대지면적 1600㎡)와 관용차(현재는 에쿠스)도 제공됩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지어진 혜화동 관사는 낡아서 비가 오면 물이 새기도 한다고 합니다. 오세훈 전 시장 시절에 서울시는 한남동에 대체부지를 마련해 관사를 이전하려 했는데요. 중소기업들의 비즈니스 공간이 부족하다는 오 전 시장의 지적에 따라 그 자리에 관사 대신 ‘서울 파트너스 하우스’를 지었습니다.



서울시장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이명박·윤보선 두 명입니다. 대통령 직무대행도 두 명이 나왔습니다. 허정 전 시장은 1960년 4·19혁명 직후 과도내각의 수반으로서, 고건 전 시장은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국무총리로서 권한대행을 지냈습니다.



2대 윤보선 시장 첫 마디는 “쓰레기 청소하라”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유치단장을 맡은 박영수 서울시장(가운데 손들고 있는 사람)이 환호하고 있다.
서울시장은 1~29대 관선시장 시대(11대 김상돈 시장 제외)를 거쳐 95년부터 직접선거를 통해 시장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관선시대 시장들의 면면을 보면 40~50년대에는 정치인 출신이 많았다가 5·16 쿠데타 이후 군인·경찰 출신 시장을 거쳐 70년대부턴 행정 관료 출신이 많아집니다.



초대 서울시장은 김형민 시장입니다. 미군정 시절 경성부윤을 맡았다 46년 서울시가 출범하면서 첫 시장이 됩니다. 2대 윤보선 시장은 취임 후 첫 지시가 “쓰레기를 청소하라”였다고 합니다. 8대 허정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드나들던 한 야당 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고 호통을 치고 경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내 화제가 됐습니다. 역대 시장 중 가장 청렴하고 강직했던 인물로 꼽힙니다. 9대 임흥순 시장은 전 직원에게 도시락을 싸오라고 지시해 ‘도시락 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카이저 수염으로 유명했던 11대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 이후 선거로 당선된 최초의 민선시장입니다. 당시 출마한 후보는 15명이나 됐습니다. 야당 출신인 그는 취임식에서 “서울시는 복마전”이라고 했는데요. 이후 복마전은 한동안 서울시의 오명이 됐습니다. 김 시장은 다섯 달 만에 5·16 쿠데타로 물러나고, 12대 윤태일 시장이 취임합니다. 그는 현역 육군 소장으로 재임기간 동안 군복을 입고 다녀 ‘군복 시장’으로 불렸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불도저’ 14대 김현옥 시장입니다.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을 둘 다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김 시장이 발령을 받고 처음 내린 지시가 “광화문에 지하도를 뚫어라”였습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사람보다 우선이던 시대라 차량 흐름을 막는 횡단보도를 없애고 대신 지하도와 육교를 건설했습니다. 광화문 외에 명동·동대문·한국은행 앞 지하도가 그의 재임기간에 생겼습니다. 김 시장 시절 남산 1·2호 터널 및 북악스카이웨이 등 수많은 공사가 이어지면서 건축자재 품귀 현상이 벌어져 정부가 급하게 시멘트·철근 등을 외국에서 수입했다고 합니다. 김 시장은 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물러납니다. 관선시대 최장수 시장은 4년 11개월을 역임한 5~6대 김태선 시장입니다. 그러나 단명한 시장도 많았습니다. 26대 김상철 시장은 우면동 자택의 그린벨트 무단훼손 논란이 벌어지면서 부임 7일 만에 사퇴했고, 24대 박세직 시장은 수서택지개발 특혜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53일 만에 그만뒀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임명된 28대 우명규 시장은 기술부시장 재임 당시의 성수대교 보수관리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11일 만에 옷을 벗었습니다.



5명 중 2명이 중도사퇴 … 민선시대 시장들



95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시민들이 직접 시장을 뽑게 됩니다. 역사적인 민선 1기(30대) 시장은 야당 후보인 조순 시장이었습니다. 그는 민선시장이라는 정치적 입지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강하게 대립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높였고,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했습니다. 조 시장은 결국 대선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 시장에서 사퇴합니다. 31대 고건 시장은 88년 관선시장에 이어 8년 만에 민선시장으로 복귀했습니다. 32대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했고 대중교통시스템을 개편했습니다. 33~34대 오세훈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서울 디자인 수도 사업 등을 추진했지만 서울시 의회·교육청과 무상급식을 두고 대립하다 찬반투표가 개표 요건에 미달하면서 지난 8월 사퇴했습니다. 지난달 26일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최초의 무소속 출신,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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