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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가 위한 자기 희생 없이 말로만 떠드는 애국심이 그리스 비극의 뿌리 아닐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올라가면 아테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풍수(風水)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천혜의 요충이 분명해 보인다. 삼면이 높은 산과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에게해(海)와 접하고 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면서 해상으로 뻗어나가기 좋은 조건이다. 아테네가 도시국가를 이루면서 고대 그리스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리스어로 ‘아크로(acro)’는 ‘높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 있는 도시’란 뜻이 된다. 아테네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신전을 짓고,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를 섬겼으니 그 신전이 파르테논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제1호인 파르테논 신전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어느 천년에 끝날지 알 수 없어 보인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성당으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대영제국의 문화재 약탈 대상으로 세월과 함께 처지가 바뀌어온 파르테논의 기구한 운명이 그리스의 비극을 상징하는 듯하다.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패해 마케도니아에 복속되면서 그리스의 비극은 시작됐다. 민주주의와 서구 문명의 요람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영광은 그 지점에서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섰다. 이후 2300년의 그리스 역사는 ‘좋았던 옛날’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며 울분을 삼키는 회고의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자부심은 때로 비현실적 애국심으로 표출된다. 지금도 그리스인들은 마케도니아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스코페’란 도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400년 가까이 그리스를 지배했던 터키는 여전히 가상 적국 1호다.



 그리스의 비극이 재연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전주단(錢主團)의 경제적 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그리스인들은 드라크마화(貨)를 쓰던 옛날이 좋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스스로 희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1997년 한국 국민이 외환위기를 맞아 금 모으기를 했던 일화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애국, 말로만 떠드는 애국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고대 그리스인의 문학적 상상력은 비극에서도 전범(典範)을 보여줬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왕(王)’은 지금도 인간의 숙명적 한계를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비극 작품의 전형으로 꼽힌다.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영웅적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오이디푸스에게서 소포클레스는 이미 그리스의 비극을 예견했는지 모른다.



<아테네에서>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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