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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신파인데 아프다, 너무 아프다 ‘수애’니까

역시 김수현이다. 그리고 수애의 재발견이다. 수애는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비련의 여주인공 서연 역을 맡았다.


사랑과 이별에 관한 한 남의 슬픔이 온전히 남의 것일 수 없다. 조금씩은 나의 슬픔과 겹치고 포개진다. 겹치는 슬픔에 고개를 끄덕이고, 겹쳐지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 하며 종국에는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스 비극 같은 이 드라마가 그렇다. 김수현의 드라마, SBS 월화극 ‘천일의 약속’이다.

SBS ‘천일의 약속’ 알츠하이머 여주인공





고아로 자라 지독히 가난하게 살아온 서연(수애)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오래 전부터 약혼녀가 있는 지형(김래원)이 서로 사랑한다. 서연은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지형은 파혼을 선언하며 치명적 사랑을 선택한다. 시청자들은 지형을 두고 ‘민폐 캐릭터’라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나쁜 놈도, 죽일 놈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이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는 것을. 이런 최루성 신파를 ‘드라마 달인’ 김수현 작가는 중독성 있게 그려낸다. 7일 방송에서는 시청률 17.5%를 기록했다. 동시간대 1위다. 드라마의 인기 한복판에는 수애(31)가 있다. 서연 역을 맡은 수애는 김수현표 드라마에 적격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수애앓이’를 불러왔다. ‘신파는 싫은데 수애 때문에 본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가히 수애의 재발견이다.



김래원
 ◆첫사랑의 배우, 수애=수애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배우가 아니다. 수수하고 정갈하다. 그래서 ‘첫사랑의 배우’라고 한다. 드라마 ‘러브레터’에서 순애보적 사랑을 펼치는 모습에 그 이미지는 더 짙어졌다. 영화 ‘그 해 여름’에서도 수애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지형에게도 그랬다. 친구 집에 놀러 가 마주친 친구의 사촌동생, 지형의 가슴을 뛰게 한 첫 여자.



 ‘비련의 여주인공’ 이미지까지 보태졌다. 불치병을 앓는다. 사랑을 잃었는데 기억도 잃어야 한다. 의사 앞에서 “얼마나 길게 사느냐가 문제 아니죠. 모든 기억이 사라져가면서 나도 함께 사라져간다는 거죠.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건가요?”라고 담담히 말하는 얼굴이 수애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가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래원은 “수애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김수현 작가의 대사는 언제나 논란이 된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 같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불만에 김수현 작가가 트위터에서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테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것. 그건 불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대사가 긴데다 빠르고, 문어체여서다.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하이톤 목소리를 가진 배우가 연기하면 듣는 이에겐 고역이다.



 수애도 "많은 대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속사포라 불리는 ‘김수현표 대사’를 명확히 전달했다. 다소 낮은 목소리 톤에 절제된 감정이 실려 몰입하게 한다. 인터넷에는 외모나 연기를 칭찬하는 글만큼이나 ‘목소리가 좋다’는 상찬(賞讚)이 올라온다.



 특히 돋보이는 장면은 내레이션이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어두운 방에 앉은 수애가 "차라리 벼락을 때려. 차라리 심장을 터뜨리라고. 이 저주를 튕겨내 시궁창에 처박아 버릴 거야”라고 속으로 되뇔 때 시청자는 소름이 끼친다.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거울 앞에 선 그녀가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라고 분노하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신상일 방송평론가는 “김수현 드라마에서는 대사가 매우 중요해 수애의 깊은 목소리가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정덕현 드라마평론가는 "서연의 내레이션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쓰여 굉장히 중요한데, 수애의 차분한 목소리가 신뢰감을 준다”고 설명한다.



 ◆과거 회상의 매력=수애는 연기 변신을 꽤 많이 시도한 배우다. 남편을 찾아 베트남 전쟁 한복판에 뛰어들어 노래를 하는 순이(영화 ‘님은 먼 곳에’)부터 냉철하고 잔인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혜인(드라마 ‘아테나’)까지. 그 내공이 과거 회상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보여준 애교는 ‘수애앓이’를 완성했다. 지형에게 아이스크림을 떠 먹이며 "박지형, 아니면 미스터 박? 아니면 지형아, 아니면 그대? 그대~ 이상해, 여보~ 지형씨?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까? 협조 좀 해. 응?”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애교수애’의 절정이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최근 드라마 ‘아테나’, 영화 ‘심야의 FM’ 등을 통해 다양한 연기변신을 꾀하면서 보다 깊어진 연기력이 이번 드라마에서 모두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르익은 수애 덕분에 시청자는즐겁고, 또 아리다.



임주리 기자



수애의 말말말



바닷가에서 지형(김래원)과 걷다 이별을 예감하며




“5년 후쯤이면 당신은 아빠가 되어 있겠지. 10년 뒤에는 허물어지는 40대 아저씨가 되어있겠지. 그때쯤이면 오늘이 누렇게 희미해진 옛날 사진 같겠지. 내려놓는지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내려놓았던 걸 알게 되겠지. 그 후로도 겹겹이 날들이 쌓여가고 당신한테 나는 공룡시대 화석이 되겠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후 마음속으로



“내가 잘못한 게 뭔데, 무슨 죄를 졌는데. 이렇게까지 잔인할 게 뭐야. 남의 남자 새치기해서? 죄책감 없이 훔쳐서? 그 벌 내린 거야? 맞아? 웃기지마. 그 남자는 열여섯 살 때부터 내 남자였어. 내 처지가 거지 같아 사양했을 뿐이야. 그래,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그럼 차라리 벼락을 때려. 차라리 심장을 터뜨리라고. 질 줄 알아? 무릎 꿇을 줄 알아? 항복할 줄 알아? 아니. 반항할 거야. 엿 먹으라고 그럴 거야. 침 뱉어 줄 거야.”



자신의 병을 알고 다시 찾아온 지형에게



“내가 당신 삶까지 삼켜버릴 수 없어. 이 말 꼭 기억해줘. 내가 당신 얼굴도 이름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멍청이로 이 세상에서 밀려난 뒤에도 꼭 기억하고 있어줘. 당신 삶까지 망가뜨릴 수 없어. 그건 내가 아는 사랑이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랑은 내가 빠진 늪에 같이 끌어넣는 게 아니야. 나 알아, 나는 고장 나고 있어.”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수애 [現] 탤런트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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