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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미래가 담긴 변화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
지식에디터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가 현재를, 현재가 미래를 아예 결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인식은 뇌의 활동이 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재구성한 결과다.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체나 외계 생명체는 시간에 대한 관점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고대부터 상당수 철학자·과학자·종교인들은 “시간은 없다” “시간은 환상·착각이다”라고 주장했다.



 과거가 현재,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사실 ‘괜찮은’ 생각이다. 역사 의식이 담긴 생각이다. 과거·현재·미래가 엮어가는 인과관계에 둔한 사람들은 현재를 대충대충 덤벙덤벙 산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다. 그들은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식이 투철하지 않다.



 미래가 현재·과거를 결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적어도 비저너리(visionary)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과거·현재에 사는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미래에 산다. 비전을 통해 현재를 본다. 그들에겐 미래가 현재보다 더 또렷하다.



 30억~40억 명에 달하는 세계 기독교·이슬람 신자도 ‘최후의 심판’이라는 미래의 전망에 따라 현재를 산다. ‘전후(前後)’라는 단어를 보면, 한자문화권에서도 시간의 역행이 ‘정상적’이다. 응당 과거는 뒤에 있고 미래는 앞에 있을 것 같다. 전후라는 말에 따르면 반대다. ‘앞 전(前)’ ‘뒤 후(後)’다. 과거가 앞에 있고, 미래가 뒤에 있다. 이런 시간관·역사관 때문인지 동아시아인들에게 요순시대(堯舜時代)는 먼 과거의 신화시대가 아니라 현재·미래에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기도 했다. 동아시아의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곳’이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것은 개인·국가 차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미국의 시장은 할 일이 너무 많아 뭘 손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자신의 임종(臨終)을 상상했다. 우선순위와 안 해도 되는 일이 자연스레 결정됐다.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가 국가적 목표일 때도 우리는 미래적 현재를 살았다. 미래 목표를 생각하면 현재에 할 일이 결정됐다. 개인이나 국가가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을 결정해 주는 것은 미래에서 추출한 비전이다.



 과거에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역사·시간 관념에서는 과거는 이미 닫혔고, 현재는 닫히고 있는 중이며 미래만 열려 있다. 미래에 살면 모든 시점이 열려 있다. 미래에 살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바꿀 수 있다. 현재에서 과거를 억지로 바꾸면 역사 왜곡이 된다. 미래에는 현재·과거를 당당한 역사 재해석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예를 들어보자. 동아시아의 부상은 실학이 아니라 유학, 주자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서구 문명에 그나마 가장 근접한 실학이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의 본류 중 하나인 유학의 가치가 높아졌다. 외국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이 각축을 벌이는 장소다. 대한민국이 그런 모습으로 세계에 비치는 것을 막으려면 미리 본 미래에서 따온 비전을 실천해야 한다.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도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 삶에서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미래도 특별하고 생생할 수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고용·복지가 선순환하는 한국형 복지 모델’과 기존 GDP를 대체하는 지표를 제시했다. 범야권은 아직 비전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 우선 세력을 결집하고 정책과 비전은 다음에 제시하는 전략인지 모른다. 개방성이 미래의 특징이기에 아직은 차기 대선이 소위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이 아니라 비전과 정책의 대결장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친미·반미, 진보·보수는 과거와 현재에 속한다. 가까운 미래는 모르지만 중장기 미래에까지 영원히 살아남을 구도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야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다가올 미래의 구도까지 현재에 포용해야 한다. “역사는 스스로 반복한다”고 한다. 밝은 미래가 담긴 변화가 진짜 변화다. 퇴행적 변화는 바라지 않는 역사의 반복을 잉태한다.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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