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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세자 앞에서 신하로 칭하는 일 조선에서는 금기였다 왜 그랬을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안면 있는 한 국회의원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제 의원회관 복도에서 친한 동료 의원과 마주쳤는데, 그가 말하더라. ‘당신은 언제 오느냐. 늦기 전에 빨리 귀순하라’고.” 동료 의원은 이른바 친박(박근혜 전 대표)계였다. 그 의원을 만난 지 벌써 반년이 지났으니 여의도의 ‘귀순용사’ 숫자도 그사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귀순용사가 어디 정치인뿐이랴. 대학 교수, 고위 공무원, 퇴역 장성 등 공개적으로 또는 쉬쉬해가며 박 전 대표 ‘대세론’에 몸을 의탁한 각계 인사는 수를 짐작하기 어렵다. 굳이 찾아다닐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곳곳에서 눈에 띈다. 어떤 이들은 싱크탱크를 표방하고, 다른 이들은 동호회나 봉사조직이라 한다. 그중엔 미래권력에 줄을 대고 싶어 하는 박태규·이국철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천 년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권력 주변의 생리다.



 의문이 든다. 조선시대 내내 금기로 여겨졌던 ‘칭신(稱臣)’이 요즘 너무 일상화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칭신은 스스로를 신하라 칭하는 일이다. 임금 앞에서야 칭신이 당연하다. 조선이 금지한 칭신은 신하가 미래권력인 세자(동궁) 앞에서 “세자 저하, 신 아무개는…”이라고 아부를 떠는 짓이었다. 이런 칭신은 중벌을 받았다. 현재권력인 왕권을 훼손하고 세자에게 다투어 줄 서는 부작용을 감안한 정치적 지혜였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1447년 세종 임금은 신하들이 세자(훗날의 문종)에게 칭신을 하라고 명했다. 8살에 세자로 책봉된 문종은 당시 27년째 ‘만년 2인자’였다. 세종은 5년 전부터 병석에 누워 골골대고 있었고, 세자가 대신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대신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좌의정 하연, 좌찬성 박종우 등이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사옵고, 백성에게는 임금이 둘이 없사옵니다”라며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반대론을 폈다. 그러나 세종은 결심을 꺾지 않았다.



 왕조시대와 현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옛사람의 지혜는 한번쯤 음미해볼 만하다. 공무원들이 임기 말의 청와대 근무를 기피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꽤 됐다. 미래권력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진짜 속내도 마음에 걸린다. 얼마 전 청와대는 신임 경호처장을 고르는 과정에서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경호처 내부승진을 고려했으나 연배들이 너무 젊었고, 괜찮은 예비역 장성들을 대상에 올렸지만 상당수가 이미 친박 쪽에 ‘귀순’했더라는 것이다. 결국 경찰 출신 쪽으로 방향을 튼 사연이다.



 칭신 아니라 칭신 할아버지라도 나라에 이롭다면야 누가 지청구하랴. 대세론에 묻혀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를까 봐 걱정인 것이다. 스토리도 반전(反轉)의 감동도 없는 칭신 합창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터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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