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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바꾼 내 인생관 … 100억 엔 + 은퇴 때까지 월급 다 기부

대지진 발생 11일 뒤인 3월 22일 후쿠오카 원자력발전소 사고 대피소에서 이재민들과 대화 중인 손정의 회장. 손회장은 이날 높은 방사능 수치에도 불구하고 이재민들과 고통을 함께하려 마스크 없이 현장을 누볐다. 상황의심각성을 절감한 그는 곧바로 주변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찾아가 “식대, 통신료, 일자리를 책임지겠으니 이재민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해 달라”고 설득했다. [소프트뱅크 제공]


올 3월 11일 오후 2시48분. 일본열도에 사는 모든 이의 삶을 뿌리째 흔든 대재난이 일어났다. 규모 9.0의 강진으로 후쿠시마를 비롯한 일본 북동부가 쑥대밭이 됐다. 정부는 ‘일본 관측 사상 최대’라고 했다. TV 화면으로 본 거대한 해일, 성냥갑처럼 쓸려가는 마을의 참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 무서운 일은 그 다음 일어났다. 원자력발전소 피해로 막대한 방사선이 유출된 것이다. 공포, 혼란, 무기력, 불안. 나는 가슴을 쳤다.

뜻을 높게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18)·끝 “내 기업만 잘 꾸린다? 그것만으론 안 되는 일도 있다”



“내가 죄인이다!”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보내 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누가 일본의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켰는가. 나 또한 그런 범법자 중 한 명 아닌가. 전 세계에 미안했다. 젊은이들이 걱정돼 견디기 힘들었다. TV에선 가족을 모두 잃은 92세 할머니가 눈물을 쏟고 있었다. 나도 울었다. 대지진은 내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꿨다. 삶은 뭔가, 회사란 뭔가. 내가 살아가는 보람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보기술 혁명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에너지 없인 불가능하다. 원전에 기대지 않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내 기업만 잘 꾸려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깊은 고민 끝에, 나는 행동하기로 했다. 돈, 시간, 열정 모두 아끼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기로 한 순간 내 주요 소통도구는 트위터가 됐다. 직원뿐 아니라 일본 국민 모두에게 알려야 할 일들이 잔뜩 있었다. 공포에 질려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누군가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다. 지진 당일, 그래서 난 이런 트윗부터 날렸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소프트뱅크 가입자의 문자 서비스는 모두 무료입니다.” 다음날엔 “16일부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모금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대로 실행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매일 ‘네온사인 자제’ ‘구호식품 전달’ ‘자원봉사자에게 무제한 사용 가능한 휴대전화 지급’ 같은 진행 상황을 트위터로 알렸다. 기업인으로서, 이동통신 사업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고 싶었다. 동분서주했지만 마음은 갈수록 지옥이었다.



# 총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다 



손정의 회장이 9월 20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자연에너지재단’ 설립 기념식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그의 뒤로 재단 로고가 보인다. [연합뉴스]
 미야기현 해변에 시신 수백 구가 방치돼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날, 트위터에 “나는 겁쟁이”임을 고백했다. 목숨 걸고 수습에 나선 이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한편으론 정부에 몹시 화가 났다. 당장 후쿠시마로 달려갔어야 할 총리는 “날씨가 나빠 헬기를 못 띄운다”며 도쿄에서 미적대고 있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 사장은 “두통이 심하다”며 출근도 안 했단다. 내가 아는 한 올바른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언제나 ‘현장’이다. 나라도 가봐야 했다. 지진 발생 11일 만인 3월 22일,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후쿠시마현 다마라시의 체육관으로 차를 달렸다. 밀도 높은 전문가용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하고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도 챙겼다. 도쿄에서 2시간20분. 현장에 다가갈수록 방사능 측정기의 경고음이 잦아졌다. 대피소에 다다랐을 즈음엔 아예 쉴 틈 없이 삑삑거려 마음이 몹시 불안했다. 차 안에서 5분 정도 고민했다. 이윽고 난 마스크를 벗어던진 뒤 대피소로 들어갔다. 거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여 명의 주민이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피소엔 방사능 측정기도 없었다. 구호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담요·의약품은 물론 물과 음식물마저 부족했다. 나는 체육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르신들의 손을 꼭 잡고 “얼른 더 먼 곳으로 피하시라”고 했다. 주민들은 한숨짓고 눈물을 흘릴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부가 명확한 피난 지침이나 구호대책을 내놓지 않은 탓이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피가 끓어올랐다.



# 놀라운 추진력·실행력 “손정의를 총리로”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로 당장 주변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피난민들이 머물 거처를 마련해 달라, 집단 이주 비용과 식대, 이재민 일자리는 소프트뱅크가 1년간 보증하겠다고 설득했다. 원전이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른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동통신사업자다. 사고 지역 기지국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휴대전화가 무용지물이 됐다. 통신만 이어졌어도 살 수 있는 생명이 있었을 게다. 난 큰 책임감과 그 이상의 무력감을 통절했다. 이에 앞으로 소프트뱅크를 통해 출시하는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엔 지진속보 기능을 탑재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화상통화를 통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효율적 복구·지원을 위한 포털 사이트도 서둘러 구축 중이다. 4월 3일에는 피해 복구를 위해 100억 엔(1430억원)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언론은 “일본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더해 올해부터 은퇴 때까지 최고경영자(CEO)로서 받는 보수 전액도 기부하기로 했다. 내 연간 급여는 2억 엔 안팎이다. 소프트뱅크 기업 차원에서도 10억 엔을 따로 내놓았다.



 이런 내 활동에 대해 “결국 소프트뱅크를 홍보하려는 것” “일개 기업인이 과도하게 나선다”는 식의 비난 또한 없지 않았다. 실제 일본 재계는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트위터엔 “고맙다”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나도 동참하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손정의를 총리로!”라는 글도 간혹 눈에 띄었다. 정부의 우왕좌왕 느린 대응에 실망한 탓인 듯했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내 뜻에 화답했다. 도호쿠 지역 지방선거를 연기하고 사고지역 고아 현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 "경제인 이전에 생명 생각하는 사람 돼야”



 급박한 초기 대응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 나도 원전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더 이상 필요 없다. 경제성 또한 자연에너지보다 딱히 나을 게 없다. 환경보호는 물론이다. 원전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 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멈춰야 한다. 태양열·풍열·지열·바이오 에너지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



 주장만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우선 10억 엔을 출자해 자연에너지협의회를 설립했다. 일본 4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34개 현 지사들을 설득해 이 재단에 동참케 했다. 4월에는 동일본지역에 태양광산업 전문단지인 ‘솔라벨트’를 조성해 무상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약 80억 엔을 들여 일본 전역에 10개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자연에너지 개발을 위한 이 모든 사업은 애초 내놓기로 한 100억 엔 외에 추가 기부를 통해 추진할 계획이다.



 지진 발생 한 달쯤 뒤 난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국가가 어려울 때 경제인이기 전에 생명을 생각하는 인물이 되고 싶다. 내 시간의 30%를 이 국난을 위해 쓰고 있다. 지금은 평상시보다 일하는 시간을 1.5배 늘렸다.” 며칠 뒤엔 이렇게도 적었다. “원전 사고라는 국난이 아무 일 없이 끝나 ‘당신이 너무 소란스러웠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꺼이 굴욕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은 열일곱에 단신 미국 유학을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지진과 해일, 폭풍의 연속이었다. 굴욕과 실패 또한 없지 않았으나 어떻게든 다시 일어섰다. 난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뜻 높이 세운 청춘의 힘을 믿고, 타인을 위해 몸 바치는 선의와 열정을 믿는다. 내 그런 진심이 중앙일보와 함께 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도 충분히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정리=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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