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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한다면 ‘나’부터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부모, 부모의 부모 그리고 그들의 앞선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강고한 DNA는 환경에 따른 인성의 변화를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다. 연식이 오랠수록, 그릇이 작을수록 그렇다. 게으를수록, 어리석을수록, 욕심이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큰 시련을 겪으면 달라진다고들 하지만 턱도 없는 일이다. 히틀러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이랬다. “내가 너무 인정 많았던 게 후회돼.” 수백만 명의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 국민 중 정신질환자와 불치병자 7만 명을 처형하라고 명령한 사람의 엽기적 후회다.



 신앙의 힘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지만 오히려 드문 일이다. 때론 시련 앞에서, 때론 신 앞에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DNA가 명령한 자리로 원위치되는 건 시간문제다. 누렁이와 요크셔테리어가 결국 다를 바 없는 개이듯, 그러한 인간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구별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게 있다. “밥을 달라고 기도해서 밥을 얻으면 신은 잊는다.” 이것은 그대로 서양 속담으로 치환될 수 있다. “위험이 지나가면 신은 잊혀진다.” (바보들은 이 대목에서 한국 속담엔 비슷한 게 뭐가 있을까 찾는다.)



 압도적 표차의 승리로 보무가 당당하던 이 정권을 한순간에 눈보라 치는 살얼음판으로 내몬 것은 ‘인사(人事)’였다. 보태자면 ‘지들끼리 노는 인사’였다. 이른바 ‘고소영·강부자’ 내각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고장 난 맷돌’ 같은 집권여당 공천에 국민들은 폭발했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리는 격이었던 게 광우병 소동이지 않았던가.



 시작 종 울리자마자 그런 시련을 겪고, 하교 시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반성문도 여러 번 쓰고 눈물도 여러 번 보였음에도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인사 회전문은 내내 한자리서 돌고 있고, 기준이 남다른 도덕성의 화살은 여전히 속 터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더욱 못 봐줄 것은 종 친 뒤에도 남을 사람들이다. 역시 터럭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지붕을 보면서도 쫓던 닭이 어찌 올라갔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대신 늘어놓는 게 앞사람 탓이다. 그러니 변화의 해법이라고 내놓는 게 늘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공자도 이미 말했다. “내 지금까지 스스로 허물을 돌아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단 얘기다. 하지만 후배 맹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다스리려 해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반성하라(治人不治反其智).” 나는 ‘공자에게 한 표’지만 굳이 맹자 말을 요즘 말로 바꾸면 이런 게 된다. 효과 백배를 위해 존칭 생략이다. “변해야 할 건 너거든!”



이훈범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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