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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텅 빈 둥지

문창극
대기자
우리는 상대방이 진심을 이해하지 못할 때 서운한 마음을 갖는다. 이 서운함이 지나치면 괘씸한 마음으로 변한다. 이런 갈등은 부모 자식 간에 종종 생긴다. 서울시장 보선의 결과도 이런 갈등과 비슷한 것 같다. 세대 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모세대는 자식세대를 볼 때 언제나 조마조마한 것이다.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을까, 부모가 어렵게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킬 수는 있을까.” 그러나 자식은 이런 부모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선거 날 부모 관광 보내는 사람이 진짜 효자’라고 하니 서운함을 넘어 괘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자식세대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다. 단지 이 나라가 다음 세대에도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런 부모들을 마치 낙후된 인간처럼 치부하니 기가 막힌 것이다.



 보선이 있기 며칠 전 진보진영에서 ‘5·16’ 50주년을 맞아 비판 학술대회를 열었다. 회의장에 들어가 보니 청중은 거의 백발뿐이었다. 보수진영의 이런 유의 모임에 가 보아도 거의 전부가 노인이어서 “이래서야 보수의 미래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보의 모임 역시 노인뿐이었다. 좌파 대부 격인 함세웅 신부는 축사를 하면서 “이런 모임에 나이 든 사람만 모여서야 되겠느냐”고 한탄했다. 좌파나 우파나 간에 젊은이들은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증거 아닐까? 이날 주제는 유신독재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금 젊은이에게 유신독재가 얼마만한 호소력을 가질까? 보수 쪽 토론장엘 가보면 박정희 칭송 얘기가 주류다. 이 역시 젊은이들에게는 흘러간 과거 얘기로 들리는 것 아닐까? 이런 세태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분개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세대의 벽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좌우라는 이념이 중요했다. 특히 북한이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는 한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기도 하나 트라우마(傷痕·상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 세대는 그것을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런 이념문제보다는 자신들의 발 앞에 놓인 문제가 더 시급하다. 취업, 자녀 양육, 조기 퇴직 등이 그들의 걱정거리다. 정치가 이런 것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좌와 우라는 잣대만으로는 그들의 욕구를 담아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정당에 이념이 없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마다 정당은 진보냐 보수냐로 대부분 구별된다. 문제는 그 이념이 관념 속의 이념이냐, 실질과 연결된 이념이냐 하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당들은 관념에 붙잡힌 눈으로 모든 실질적인 문제를 처리하려 한다. 그래서 정책 토론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경제라는 정책에 관한 일인데 야당은 이를 이념의 잣대로, 즉 반미(反美)의 눈으로만 보고 있다. 여당 역시 친미라는 비판이 두려워서인지 주춤거리고 있다. 이념이 기승을 부리면 양극단인 극좌나 극우가 판을 치게 되어 있다. 민노당에 민주당이 끌려가듯 말이다. 문제의 실체는 보지 않고 극단의 세력이 그려낸 헛것을 보고 서로 미워하게 된다. 이런 풍토에서 통합은 없다. 사회는 점점 더 분열되어 갈라진다.



 현실은 복잡해졌다. 독재-반독재, 진보-보수의 단일 잣대로 양분하기 어렵다. 계층의 차이가 커지고, 지역의 선호가 다르고, 세대의 입맛이 변했다. 정책 판단도 복잡해졌다. 민주주의를 하되 효율성을 생각해야 하고, 경제성장을 하되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런 모든 것을 담아낼 정당이 필요해진 것이다. 우리 정당이 이런 변화된 풍토에 적응을 못하니 젊은이들이 실망한 것이다. 몸에 맞는 옷이 없으니 급조된 1회용 종이옷에 현혹되는 것은 아닐까. 모든 조직은 차세대가 있어야 대를 이어가는데 우리 정당들은 새끼들이 모두 떠나가 버린 빈 둥지가 되었다. 그러니 한 개인을 상정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정당이 기존 정당보다 지지율이 높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당이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충격이 닥쳐올 것이다. 새 정당들이 나타나 경쟁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그 물결에 휩싸였다. 한나라당 역시 비슷한 운명에 놓일 것이다. 한나라당이 살려면 밖을 향해서는 솜같이 부드럽고 내부로는 강철처럼 단단해야 한다. 환경은 늘 변하는 것이다. 심지가 굳은 사람만이 변화에 자유로운 법이다. 친북을 제외한 어떤 문제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바꿀 것은 바꾸고 지킬 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결단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아첨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감싸 안아야 한다. 이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 신뢰는 아주 천천히 회복될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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