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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도 만원 … 산·바다에 유골 뿌리는 ‘자연장’ 확산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32> 장례 문화

2021년 가을 미라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변북로를 타고 퇴근길에 나섰다. 피곤하고 지친 터에 차까지 막힌다. 때마침 한남대교 남단에 높게 솟아있는 납골탑 ‘더 라스트하우스(The Last House)’가 눈에 띈다. 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함을 모신 도심형 납골당이다. 휴대전화의 단축번호 1번을 눌렀다. 돌아가신 엄마의 전화번호다. 1~2초가 흘렀을까. 더 라스트 하우스의 한곳에서 파란 LED 불빛이 깜박거린다. 엄마의 유골함 쪽에서 나는 불빛이다. 불빛은 딸에게 마치 ‘지금 퇴근하는구나, 사랑하는 내 딸아’하고 대답하는 엄마처럼 느껴진다.



경희대 건축학과 김찬중 교수가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 전시된 도심형 납골탑 ‘더 라스트 하우스’의 개념도다. 김 교수는 “최근 화장이 급속하게 늘어나 유골을 모실 납골당을 세우는 게 또 다른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착안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아이디어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례에 대한 고민과 바람이 녹아 있다. 좁은 땅 덩어리에 묘지를 쓰기 힘들어 화장+납골당으로 장례문화가 바뀐 한국 사회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추석 명절에 고인을 고향 선산이나 교외의 납골당에 가서야 만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대안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더 라스트 하우스가 10년 후 세상의 새로운 장례문화로 등장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통장례 문화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장례예법의 중심은 유교문화였다. 조선시대에 장례는 곧 매장(埋葬)이었다. 고인이 사는 ‘음택(陰宅)’이라 하여 묏자리 풍수도 봤다. 장례 땐 염습(殮襲)을 하고, 꽃가마 상여에 태워 선산의 명당 자리에 고인을 모셨다.



하지만 매장 중심의 장례문화는 1980년대 이후 비판받기 시작한다. 좁은 국토가 온통 묘지화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다음은 91년 4월 3일자 중앙일보 기사다. “우리나라 묘지는 이제 한계에 와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1841만4000기의 묘가 서울 면적의 1.6배만 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 해마다 25만 명의 사자들이 누울 곳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서울 여의도의 1.5배만 한 땅이 필요한 것이다….”



호화·거대 납골당도 사회문제 부각

90년대 이후 장례문화는 급변했다. 20년 전인 91년 화장률은 17.8%였지만 2001년에 38.3%로 높아졌다. 2005년엔 52.6%, 2009년 65%로 급증했다. 장례문화가 한 사회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감안할 때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년 전 한 해 여의도 1.5배만 한 땅이 필요하다고 했던 묘지 공간은 여의도 면적의 절반 수준(57%)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묘지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같이 변하고 있다. 올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0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본인의 장례방법으로 매장을 택한 응답자는 15%에 그쳤다. 반면 화장을 택한 응답은 79%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깨끗하고 위생적’ ‘간편하다’ ‘관리가 쉽다’ 순이었다.



그러나 화장 또한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바로 납골당이다. 도심 외곽 공원묘지마다 납골당이 들어서고, 대형 석물로 꾸며진 호화 납골당 역시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매장이 ‘화장 후 납골당’이라는 형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00년대 들어 화장과 납골당은 다시 한번 탈바꿈한다. 수목장(樹木葬)으로 대표되는 자연장이다. 수목장이란 나무 아래 고인의 유골을 묻거나 뿌리는 자연장의 한 형태다. 우리나라에서 수목장은 2004년 9월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이 경기도 양평에 있는 고려대 연습림에서 치러진 게 계기가 됐다. 2006년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조성했다는 수목장림(인천시 강화군 강화도 전등사)을 지난달 2일 찾아갔다. 전등사 절집을 뒤로하고 산길을 오르자 오솔길이 나타났다. 소나무ㆍ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구리명찰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만난 명찰이 2007년 세상을 떠난 오규원 시인의 것이었다. 오 시인은 100년 남짓한 소나무 아래 구덩이에 한지로 싸인 분골이 돼 안식하고 있었다. 오 시인의 맞은 편 느티나무엔 평소 그를 아끼던 김영태 시인의 명찰이 달려 있었다.



전등사의 박석암 기획팀장은 “수목장은 원래 스님들이 돌아가시면 화장한 후 수습한 뼛가루를 찰밥과 버무려 산에 뿌리던 것에서 유래했다”며 “묘지 땅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적합한 장례방식일 뿐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장례방법”이라고 말했다. 수목장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올 4월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기보다 나무·잔디밭 등에 묻는 자연장 방식을 더 선호했다.



불교문화권을 제외하면 화장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다. 유럽에서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묘지로 쓸 땅이 부족해지면서다. 하지만 화장 역시 납골당이란 문제를 낳았다. 수목장과 같은 자연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현대적 의미의 수목장은 국토가 좁은 스위스에서 처음 시작했다. 스위스는 99년 이후 50여 개의 수목장림을 운영하고 있다. 시신 화장 뒤 고인의 뼛가루를 지정된 나무 주위에 묻는 것 외엔 어떤 산림훼손도 금지하고 있다. 수목장은 독일·영국ㆍ스웨덴 등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장례의 99%를 화장으로 처리한다. 또 산골(散骨)을 포함한 자연장의 경우 91년 법무성이 ‘예를 갖추고 행하는 한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는 공식 견해를 발표한 이래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대만도 수목장ㆍ화초장ㆍ해양장 등과 같은 ‘친환경 매장(자연장)’을 장려하고 있다. 대만 정부가 발표한 ‘2010년 장례시설 개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자연장은 1542건에 달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화장률은 2020년 8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 이후의 납골문화 또한 자연장 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저출산, 남아선호사상 퇴조,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 결속력 약화 등이 장례문화의 미래를 바꾸는 변수다. 베이비붐 세대(55~64년생)의 은퇴와 현재의 출산율(1.2명)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구 급감기에 태어난 미래 세대는 조상 묘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복지부 노인지원과 고덕기 사무관은 “지금도 전국의 분묘 중 20~25%가 무연고 묘지인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장 금지한 현행법 바꿔야

그래서 납골당 역시 분묘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립납골당의 경우 유치기한이 최장 30년인데, 설사 영구보존한다 해도 2, 3대가 내려가면 분묘의 예에서처럼 찾아올 자손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앞에서 얘기한 경희대 김찬중 교수의 도심형 납골당은 가까운 미래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 되겠지만 납골 수요가 많아진다면 고사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7년 펴낸 보고서 ‘장사문화 발전을 위한 국가전략계획 수립연구’에서 화장 수요 증가에 맞춰 화장장을 더 확보하고, 납골당 대신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을 장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박복순(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사무총장은 “산골이나 수목장 등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이 나오겠지만, 일정 기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유ㆍ무형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 세계에선 기존의 공원묘지 중 일부를 자연장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바다에 분골을 뿌리는 해양장, 도심 공원과 북한산처럼 고인이 즐겨 찾던 산의 등산로에 뼛가루를 뿌리는 산골 등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바다장례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만 매년 1000건 이상 치러진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변천을 살펴보면 장례문화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엿볼 수 있다. 자연장이란 단어는 2007년 5월 공포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0차 전부 개정’ 때 처음 나온다. 법에서 쓰는 용어를 정의하는 제2조에 “‘자연장(自然葬)’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수목ㆍ화초ㆍ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는 부분이 새로 들어왔다. 자연장 때는 유골을 묻기에 적합하도록 분골해야 하고, 용기는 생화학적으로 분해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목장림이란 말도 이때 처음 나왔다. 문제는 이미 일반화된 산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는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해양장을 ‘폐기물 투기행위’로 분류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박 사무총장은 장사법에 산골이라는 용어를 규정하지 않아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한 산골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장사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장과 자연장이 일반화하면 장례의식이나 장례절차의 거품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장례문화원 유재철 원장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수의나 관(棺), 도자기 유골함 등은 자연장과는 어울리지 않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사흘장·닷새장인 조문 문화도 서구나 일본처럼 영결식 등 특정 시점에 한 번 치르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앞으론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 역시 값비싼 전통 삼베옷 대신 고인이 평소 즐겨 입던 평상복으로 변할지 모른다.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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