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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자신감 넘쳐 외국 배울 필요 없다는 일부 자만감엔 걱정”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미치가미 일본 문화원장의 세 번째 한국 생활

때로는 타인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다. 아주 조금씩 일어난 변화에 당사자는 둔감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타인은 그런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53·사진) 신임 일본 공보문화원장 겸 공사에게 인터뷰를 신청한 것도 그런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원 유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 실무 외교관이던 90년대 말에 이어 최근 세 번째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을 모르는 한국인, 일본을 모르는 일본인 등 두 권의 책을 펴낸 지한파 외교관이다.



-중국에서 공보문화원장 겸 공사로 근무한 뒤 한국에서 와서 같은 직책을 맡게 됐는데.

“중국 공사를 마치고 한국 공사로 온 경우는 일본 외무성에서 내가 처음이다. 그만큼 일본 정부가 한국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11년 만에 돌아와보니 여러모로 변화가 많았을 텐데 무엇이 가장 인상적인가.

“외형상의 발전보다도 사람들의 변화에 주목한다. 길거리에서건 지하철에서건 한국 분들이 휴대전화로 하는 말을 저절로 듣게 되는데, 굉장히 공손하고 정중한 말씨로 바뀌었다. 예전처럼 큰 소리로 외치듯 말하는 모습은 거의 안 보인다. 엘리트 계층이나 특수한 직업의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평범한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아, 그렇습니까, 가능하다면 이렇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란 식으로 정중하게 말한다. 운전 매너도 크게 바뀌었다.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확연하고, 불필요하게 경적을 울리는 경우도 거의 사라졌다. 한국인 스스로는 못 느끼겠지만 난 아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그만큼 한국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 아닐까. 한국의 발전과 맞물려 문화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한국 분들에게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에는 약간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무슨 뜻인가.

“얼마 전 미술계 원로를 만났더니 과거 미술 학도들은 프랑스나 일본 등 외국에서 비싼 책을 구해 와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웬만한 지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것이 가장 좋으니 굳이 외국 것을 배울 필요가 별로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모든 분야,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과도한 자신감에 차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간혹 있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

나 있는 현상이다.”



-일본인으로서 느끼는 변화는 없나.

“예컨대 서울 거리 여기저기에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이 많이 생겨서 유행하고 있는 걸 보면 일본인으로서 반갑다. 예전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식 청주를 ‘정종’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사케’라고 정확한 명칭을 쓴다. ‘정종’은 특정 상표 이름일 뿐이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예전에 비해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전달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도나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나.

“그렇다. 예전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릇된 정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이런 점을 지적하는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들 스스로 ‘우리가 일본을 잘 안다고 하는 건 착각이다,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칼럼이 신문에 나온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 실제 일본의 객관적인 모습을 접하게 됐다는 점이다.”



-반대로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더 크게 변화했다. 일본 내각부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여론조사를 봐도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반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낮아졌다. 한류의 영향이 크지만 경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한국을 배우자, 일본은 의사결정과 판단이 느린데 한국은 빠르다’는 식의 기사가 일본 신문에 심심찮게 나온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평가가 높아졌다. 과거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편견이나 무관심이 사라졌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이 정치·경제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예전에 한국에 근무하던 무렵엔 ‘한류’란 단어조차 없었는데.

“80년대 유학 시절부터 한국 노래를 즐겨 듣고 영화도 많이 봤지만, 이런 정도의 한류 붐이 일어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예전에 내가 다른 일본인들에게 ‘한국 영화 재미있고 가수들도 실력 있다’고 얘기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범한 일본인들이 나보다 더 한국 대중문화를 잘 안다. 나만의 보석상자가 남들에게 알려진 것 같은 아쉬움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잘 생각해보면 일본에서의 한류 현상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다. 그 전에 한국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문화를 좋아해 주는 것을 보면서 일본 사람도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문화 교류는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본 노래나 드라마가 좀 더 한국 TV에 나왔으면 한다.”



-한·일 양국의 상호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역사인식, 영토 문제 등 화근이 남아 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견해 차이는 항상 있다. 하지만 서로 같이 식사하고 술도 마시고 즐기는 게 성숙된 인간관계다. 나는 국가 간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직 아시아 국가들은 유럽과 같은 성숙된 관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한·일 관계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지금 잘 굴러간다고 해서 페달 밟기를 멈추면 자전거가 정지하는 게 아니라 아예 쓰러져 버린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와 다르다. 영원히 멈추지 않도록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것도 사람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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