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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박근혜 대세론 안철수 바람에 꺾여 대선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인터뷰
“MB 정부, 공생발전 실천의지·능력 모두 의심스러워”

요즘 누구든 입만 열면 공정사회·공평과세·공생발전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도 그 방향으로 국정지표를 잡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에 만들어진 기구가 동반성장위원회다. 빈부 간, 도농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을 시정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위원장은 정운찬 전 총리가 맡았다. 현 정부 두 번째 총리였던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아 1년 가까이 이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출범 1년을 앞둔 동반성장위원회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됐고 중산층은 더 약화됐다. 야당과 재야단체의 반발도 심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층 대 ‘중산층+저소득층’ 비율은 정확하게 20대 80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4일 2차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한 것으로 1차 임무를 마쳤다. 하지만 이익공유제 등을 놓고 정부·대기업과 여전히 마찰음이 크다.



5일 오전 서울 팰리스호텔에서 정 위원장을 만나 양극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정 위원장은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이란 아이디어는 성장 위주의 MB노믹스에 가로막혔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대기업 프렌들리(친화) 정책이 너무 강해 불균형과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실천 의지가 빛을 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또 자신은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견제받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10년간 정글식 자본주의 확산

-4일 발표한 25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놓고 대기업의 비판이 많은데.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란 게 있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2006년 없어졌다.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경쟁의 중요성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경쟁만이 살길이 되면서 한국엔 지난 10여 년간 정글식 자본주의가 팽배해졌다. 큰 사람은 자꾸 커지고 작은 사람은 어려움을 헤어나지 못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간의 거래를 좀 더 공정하도록 만들자는 게 우리 취지다. 구체적으론 작은 사람에게 기회를 더 주자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 그런 일이었다. 호랑이와 토끼를 같이 싸우도록 하는 게 아니라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토끼는 토끼대로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생각하는 적합업종이 서로 달라 만족시키는 게 힘들다. 어쨌든 합의를 본 것이니 이젠 함께 따라주길 기대한다.”



-따르지 않을 경우 페널티가 있나.

“법적 강제성은 없다. 국민이 지켜본다.”



-우리 사회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가.

“북한의 군사위협만큼 위험하다. 소득과 분배의 지니계수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4대 그룹 매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년 전 43%였지만 지금은 51%다. 미국이나 독일·일본은 대략 30% 수준이다. 10대 대기업 집단은 지난 3~4년간 5일에 하나씩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했다. 대기업은 이제 기업형수퍼마켓(SSM), 웨딩 사업, 빵 가게, 명품점까지 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실은 큰 사람만 따먹고 작은 사람에겐 돌아가는 몫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물가는 뛰고 전·월세가는 치솟았다. 가계 빚은 빚더미 제국으로 알려진 미국보다 GDP에서 차지하는 몫이 적지 않다. 어려운 사람들이 분노할 만하다.”



-서민 생활이 심각한데 동반성장위원회는 왜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만을 다루나.

“동반성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빈부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농 간 불균형을 시정하는 게 동반성장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도시에 있고 수도권에 있다. 대기업을 소유한 사람이 부자다. 그러니 우선 대기업에 집중하면 다른 문제가 누그러질 것이라고 본다. 전선을 흩트리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대기업을 먼저 다루고 있을 뿐이다.”



“건성건성할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

-청와대가 공정사회와 공생발전을 얘기하지만 국민의 체감도는 떨어지는데.

“현 정부의 실천 의지와 능력이 모두 의심받는 게 사실이다. 당장 동반성장이란 말 자체가 일반인에게 크게 와 닿는 개념이 아닌데 거기에다 공생발전을 새롭게 내걸어 더욱 혼란스럽게 됐다. 그런 국정지표가 왜 나왔는지 따져 보자. 7% 성장, 1인당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국 달성이 MB 노믹스의 목표다. 그것을 위해 빨리빨리 성장하자는 게 정부 정책이다. 고환율·저금리 정책이 거기서 나왔고 대기업이 혜택을 봤다. 그런데 세 가지 목표는 달성된 게 없고 물가는 치솟았다. 부작용이 커지자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의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문제는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대통령이 이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보였는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그랬다면 정부·여당 사람들이 동반성장에 그렇게 ‘딴지’를 걸지는 못했을 거다. 건성건성하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열심히 하니까 대통령 모시는 사람들이 견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떤 점을 딴지라고 느끼나.

“이익공유제가 그렇다. 이익공유제라는 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가격 후려치기에 대한 보상이 첫째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을 맺고 일해 파이를 키우자는 게 둘째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수출 의존도가 45%를 넘는 수출 의존국이다. 수출하려면 물건이 좋든가 가격이 싸든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한다. 우리 대기업은 품질보다 가격경쟁 유혹을 받는 조립 대기업이 많다.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받을 때 가격을 후려쳐서 수출가격을 낮췄다. 그래서 이익 많이 냈으면 초과 이익 일부로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돕거나 고용안정기금으로 쓰면 된다. 그런데 ‘급진 좌파’라거나 ‘혁명적이고 비현실적’ 사고라고 매도당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지 않았나.

“개인적으론 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 민주화를 주장했다. 노태우·김영삼 등 보수 정부 때는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꼴통이라고 욕먹었다. 나는 같은 얘기를 했다. 중도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너무 보수적으로 흐르는 모습이어서 균형추의 역할을 하겠다고 현 정부에 참여했다. 경제적으로도 지나치게 대기업 친화정책으로만 가면 안 된다고 보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게 결국 부자 친화정책으로 가지 않았나. 그래서 총리 할 때 감세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감세해 봐야 경기부양에 도움 안 되고 소득 불평등을 조장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동반성장을 제시해서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딴지가 걸렸다. 이익공유제나 동반성장 노력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실천의지가 부족하다.”



-실패한 총리였다는 얘기인가.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저런 업적이 많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내가 발제를 안 했다면 누가 했겠나. 행정부를 두 군데로 나눠선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내가 없었더라면 이명박 정부가 더 오른쪽으로 갈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나라의 가는 방향을 올바르게 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 정부인가.

“대기업 프렌들리 정부란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인정한다. 다만 의지가 확고했는지가 확실치 않다. 불균형과 양극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또 막연하게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실천의지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양극화는 세계적 현상이다. 선진국에선 어떻게 해결하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가 한국처럼 갑을 관계가 뚜렷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미국이나 독일, 혹은 일본에서 얻는 교훈은 많지 않다. 선진국의 중소기업은 아주 튼튼해서 대기업에 의존관계를 맺지 않는다. 우리는 을사(乙死)조약이라고 한다. 을이 모두 죽는 관계다. 경제 구성원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격차가 지나치게 크지 않은 게 경제 민주화다.”



-2040 세대의 불만 해소책은 뭔가.

“2040의 불만이란 게 결국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취직이 안 돼 살기가 막막한데 희망이 안 보이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위로조차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동반성장 노력을 열심히 했다면 서울시장 보선에서 여당이 이렇게 참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동반성장 얘기를 하고 동반성장위원회는 띄웠는데 정부와 여당이 딴지 걸고 있으니 일반 국민이 혼란스럽지 않았겠나. 최소한 막막한 마음에 다가서려는 자세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정부가 못해 안철수 바람 생겨”

-안철수 바람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못했던, 어깨를 두들겨 주는 일을 안철수 교수가 청춘 콘서트 등을 통해서 했고 그것이 먹혔다고 본다. 우리 국민이 기존 정치에 실망한 나머지 안철수 개인에게 희망의 아이콘을 찾으려 한 것이다. 마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찾던 심정과 유사한 것이다. 거기에다 안철수 바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와 결합돼 깊이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선 다른 대상으로 쉽사리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정치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바람이 계속될까.

“안철수 교수가 국민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모른다. 만족시키려면 경제와 사회·정치를 아우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이상과 비전이 무엇

인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국민과 공유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실천할 수 있는 제도와 관행, 사고방식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은 유지되고 있다고 보나.

“안철수 바람에 꺾였다고 본다. 1년여 남았는데 대세론이란 게 어디 있겠나.”



-대선에 직접 나설 생각이 있나.

“지금은 동반성장위원회 일로 바쁘다.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평생 어떤 일을 맡으면 끝까지 했다. 도중에 그만둔 일이 없었다. 물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무슨 일은 하고 무슨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다만 총선이나 대선은 구체적으론 생각해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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