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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父 “정치판 정신 들게 한 건 상쾌, 철수는 정치할 성격 아닌데…”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안철수 교수 부친 안영모 원장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부친인 안영모 범천의원 원장이 지난 2일 중앙SUNDAY와 인터뷰를 하며 안 교수의 정치 참여 여부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한국 정치의 장외 상수로 굳어졌다. 여론조사에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필적하는 대항마로 확실하게 등장했다. 그의 본격적인 정치 참여 여부와 그 시기를 놓고 정치권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회피하고 있다. 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중앙SUNDAY는 지난 2일 안 교수의 부친 안영모(81) 부산 범천의원 원장을 만나 아들이 정치를 하는 걸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2010년 서울 여의도 안철수 원장(왼쪽) 집에서 아버지 안영모 원장과 함께 =송봉근 기자
안 원장은 “내 생각에는 큰아이(안 교수)는 정치판에 가는 성격이 안 될 것으로 느껴지는데…”라며 “내 아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잖아요”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중앙일보를 수십 년간 봐 왔고 며칠 전 ‘(안 교수가) 대선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50%나 된다는 여론조사 기사를 읽었다”며 “그게 내 생각과 똑같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보도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안 교수(47.7%)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42.6%)와의 가상 대결에서 앞섰다. 그러나 안 교수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응답(50.3%)이 ‘출마했으면 좋겠다(28.0%)’는 것보다 높았다.



안 원장과의 인터뷰는 2일 부산진구 범천4동에 있는 범천의원에서 이뤄졌다. 안 원장은 서울대 의대 졸업 후 7년간 군의관 생활을 한 뒤 1963년에 이곳에서 개업해 같은 장소에서 48년째 진료 중이다. 제대 후 7개월 만에 당시 피란민들이 사는 판자촌으로 들어와 병원을 연 것이다. 그 뒤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범천의원 주변에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산다. 이곳에서 진료하며 안 원장은 부인 박귀남(76)씨와 함께 안철수(49) 교수와 차남 상욱(48·한의사)씨, 차녀 선영(45)씨를 키웠다.



2일 오전 10시40분쯤 범천의원에 들어서자 80년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문을 열자 낡은 소파가 놓여 있는 진료실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원장실도 따로 없었다. 손때를 탄 나무 책상에 앉아 일본어 원서를 읽고 있던 안 원장은 기자가 “사전에 연락을 못 드리고 갑자기 찾아 뵙게 됐다”고 하자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 게냐”라며 내치지 않았다.



안 원장은 “큰아이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자기 할 일은 분명히 한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원칙을 지키고, 아버지 입장에서 봐도 겁이 날 정도로 철저하게 지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판에 가면 아무래도 힘들고 게다가 요즘 여야를 보면 국민의 신망만 잃고 있다”며 “아무리 잘해도 욕을 얻어먹는 게 정치판”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정치에선 잘해도 좋게 안 보는 이들은 있게 마련”이라며 “지금까지 큰아이가 좋은 일만 하며 살아 오려고 했는데 비판하는 얘기나 깎아내리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버지로서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9월 안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 움직임에 대해서는 “(시장은) 본인이 아무리 잘해도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방대한 공무원 조직과 수십조원의 예산을 다루려면 주위에서 도와야 한다”며 “친척들도 순수하게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던 데에서 오염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사방에서 전화를 걸어 왔고, 우리(부부)도 (시장 출마를) 반대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안 교수와 전화 통화는 자주 하나.

“가끔 한다. 부모 건강이 염려되는지 전화를 해서 건강부터 물어본다. 다른 얘기는 서로 하지 않는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큰아이가 박원순 변호사를 지원하는 것을 놓고 기자들이 집에 진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출근하기도 곤란했던 모양이다. 요새는 선거가 끝났으니 조용해진 것 같다.”



-지난 9월 안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 얘기가 나왔을 때 어떻게 얘기했나.

“나도 신문과 TV를 보고 알았다. 평소엔 정치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나도 묻지 않는다. 친척들도 그렇고 함부로 정치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집사람이 두 차례나 전화를 걸어서 출마를 말렸다. 나보다 집사람 말을 더 잘 듣는다.(웃음)”



-원장님도 반대했나.

“그렇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던 아이인데 그런데 휩쓸리면 좋아하는 책도 못 읽을 텐데.”



-안 교수의 성격은 어떤가.

“내성적이다. 나도 내성적이고 친구를 많이 안 만들고 책을 좋아하는데 나를 똑 닮았다. 또 온순하다. 그런데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큰아이가 회사(안철수연구소)를 만들었던 초기에 내게도 주변에서 채용 부탁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내 아이의 성격을 내가 아니 나도 (어렵다고) 거절했다.”



-그런 성격이 정치판에서 통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것인가.

“사람이 자기 성격대로 안 갑니까. 내가 봐선 아무리 봐도 정치판에 가는 그런 성격이 안 된다고 느껴져요.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고 조용히 있는 아이를 정치판에서 난리를 쳐서 고민 속에 빠뜨리게 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이 고민하는 게) 안타깝다.”



-정치 바깥에서 출발해 정치인으로 성장한 분도 많다.

“그것도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나는 교수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는 게 별로 좋게 안 봐진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큰아이가 존경을 받고 살아왔는데 아무리 잘해도 욕을 얻어먹는 게 정치판이다. 좋게 안 보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요즘 정치를 보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민의 믿음만 잃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다 승인해 놨는데 민주당은 왜 저리 반대하나.”



-안 교수는 의대에 들어가고도 컴퓨터 백신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원래 큰아이는 공대를 가려 했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해 친척 집에 가면 기계 제품을 끄집어내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곤 했다. 친척들이 내가 내심 의대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 앞에선 ‘철수가 기계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과학 잡지에 아이디어를 응모해 라디오를 선물로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완성품이 아닌 부품으로 왔다더라. 그걸 납땜을 해서 라디오를 만든 뒤 내게 보여줬다. 그런데 고3 때 본고사를 몇 개월 앞두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게 의대’라며 내게 의대를 가겠다고 말했다. 나야 ‘그럼 좋지’라며 기뻐했다.”



-부모의 뜻을 어긋난 적은 없나.

“글쎄, 그런 적은 없었는데….(한참을 생각한 뒤) 우리 시대엔 의대를 졸업한 뒤엔 개업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4학년 때 휴일도 아닌 평일에 부산 집으로 내려와 ‘개원을 하지 않고 기초의학을 더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배우고 싶냐’고 했더니 ‘생리학’이라고 했다. ‘개원하면 좋아하는 책을 볼 시간도 없고, 환자를 진료하기보다는 공부를 더 해 교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바를 하라’고 했다. (미소를 띠며) 내 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부모에게 참 잘한다.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하거나 할 때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음식을 뭘 원하는지 아니까 굳이 뭐라 얘기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사서는 서울에서 보내주곤 한다. 그런데도 직원들 몇 명으로 (안철수)연구소 차릴 땐 자금이 필요했을 텐데 아버지에겐 일절 부탁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조달했다고 하더라.”



안 원장이 48년째 지역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는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4동의 범천의원 건물. 부산=송봉근 기자
-안 교수는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유료화했으면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남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신문을 보니 그것 때문에 젊은이들이 큰아이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진짜 그런가. 베풀면 자손들까지 다 잘된다고 하는데 그게 베푸는 것이니 우리로선 흐뭇하다. 안철수연구소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는데 당시 큰아이가 ‘없는 직원들이 주식을 팔아 집도 사고 그랬다’고 얘기한 게 기억난다.”



-그런 점이 정치적 이점이 될 수 있다.

“여야를 깜짝 놀라게 하고 정치판을 정신차리게 한 것은 그건 뭐 상쾌하다. 그런데 정치가 내내 마찬가지다. 처음엔 정신차리는 듯했는데 요즘 보니 똑같다. 저러니 국민의 믿음을 잃는다. 큰아이가 아무래도 그런 정치에 대한 흥미는 많지 않을 텐데….”



-불신받는 정치에 몸을 담그면 상처를 받을까 염려하나.

“그런 면이 있지 않겠나.”

인터뷰는 중간중간 중단됐다. 환자들이 간간이 이어져서다. 환자를 진료한 뒤 안 원장은 “할 말도 더 없는데 이제 고마합시다”라고도 했다. 환자들은 안 원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 진료실로 들어서는 40대의 한 남성에게 안 원장은 “요즘 왜 안 왔노”라고 물었고, 이 남성은 “오늘은 마 일이 없어서 하루 쉬었습니다”라고 했다. 기자를 보고 밖에서 순간 멈췄던 정모(54·여)씨에겐 안 원장이 “들어오이소”라며 불렀다. “언쳤는가봐예. 머리까지 아프고,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라는 정씨에게 안 원장은 진료를 한 뒤 약을 처방해 줬다. 환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점심시간 때까지 1시간30분가량 안 원장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찾아온 환자는 대여섯 명이었다.



-여론조사를 보면 안 교수 지지도는 40대 이하에선 높은 반면 50대 이상에선 낮다. 세대별로 크게 차이가 난다.

“나이 든 세대는 6·25를 겪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과 사상이 다르다. 이렇게 이북과 대치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좌익 색채를 띠면 싫어한다. 내 자신도 전쟁을 직접 겪었다.”



-안 교수가 좌파는 아니지 않나

“(고개를 가로로 크게 저으며) 아니 그건, 일절 그건 아니다.(시종일관 온화하게 인터뷰에 답하던 안 원장은 이 질문에 얼굴이 굳어졌다.)”



-안 교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나.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학교에서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집적거리는 경우가 있지 않나. 너무 일찍 보냈던 것 같다. 한 번은 몸에 멍이 들어 돌아왔길래 ‘누가 그랬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더라. 어찌어찌 알아내 해당 학생의 학부형에게 잘 말씀을 드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땐 어깨가 탈골된 채로 집에 왔다. 정형외과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우선 치료를 받게 했다. 그 후 내가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 부탁을 드렸다. 며칠 후 담임 선생님이 강단에 서서 ‘철수를 건드리지 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랬더니 좀 나아졌던 모양이다.”



-안 교수는 책벌레·공부벌레로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공부하는 방법도 달랐다. 남들은 문제집을 풀어 O, X로 배우는데 큰아이는 먼저 관련된 책 일체를 탐독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물어보면 내용을 다 숙지할 정도로 읽었다. 서울대 의대 들어가서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아 학비가 들지 않았다. 지 엄마가 학비를 모아 결혼할 때 선물로 줬다. 나도 모르고 있다가 결혼 때 알았다.”



-아드님을 만나실 계획은.

“큰아이가 이번에 여의도에서 용산으로 이사했다. 둘째 아들도 서울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데 최근 이사했다. 그래서 내년 1월에 한번 서울에 올라가려 한다. 그때 큰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내게는 진심을 얘기하지 않겠나. (웃으면서) 아비에겐 속마음을 얘기하겠지.”



-안 교수는 몇몇 인터뷰에서 수십 년 전 부친이 교통사고를 당한 신문배달 소년을 무료로 진료했던 일화를 얘기하며 ‘사회적 책임을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고 마 됐다. 한두 명도 아니고…. 진료하고 (돈이) 없다고 하면 그냥 보내고 그랬지. 그게 당시 신문에 보도되니 자기도 뭘 느낀 모양이다. 아이들을 키워 보면 알겠지만 부모를 닮아간다. 조금만 특별해도 감동받는 게 아이들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정말 조심해야 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그대로 배우고 따라간다.”



-그동안 한곳에서만 진료하고 ‘부촌’으로 옮기지 않았던 이유는.

“63년 제대 후 보니 이곳이 빈촌인데 병원이 없었다. 처음이니 우선 여기서 개업하자 이런 생각에 시작했다. 그때는 뭐 다 없는 시절이었고 그래서 시내보다 진료비를 반값으로 받으며 했는데 그걸 알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딴 데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래 했지. 이제 그만둬야지.”

인터뷰를 마친 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물러나는 기자에게 안 원장은 “서울에서 왔는데 부산 교통을 알겠는가”라고 교통편을 가르쳐 줬다.



부산=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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