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현악 4중주’엔 현대음악적 취향 넘쳐 당의 비판 피하며 사사로운 감성 발산

두 달에 한 번씩 내 작업실에서 평론가 모임을 열고 있다. 세상이 알 만한 면면들인데 구성원 절반이 평론가가 아닌 어여쁜 여성 아나운서들인 덕택에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잘도 모여든다. 모여서 하는 일이라야 술과 잡담뿐인데 좀 허무한 기분이 든다. 며칠 전 모임에서 내가 제안을 했다. 마음먹고 음악 좀 들어보자고. 조명을 어둡게 바꾸고 진지모드로 해설을 곁들여 턴테이블에 올려 놓은 음반은 쇼스타코비치 제5번 교향곡이었다. 조마조마했다. 과연 좌중이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인가.

詩人의 음악 읽기 쇼스타코비치<2>

불과 10분을 채우지 못했다. 이쪽에서 말을 시작하고 저쪽에서 킬킬거리고 결국 뒤죽박죽 1악장도 못 넘기고 포기해야 했다. 음반을 톰 존스의 딜라일라로 바꾸니 환호가 터져나왔다. 교향곡 하나의 무게를 견뎌 할 수 없는 시사·영화·문학·출판·스포츠 평론가들이여! 우리가 사는 시대의 분위기가 이렇다. 무겁고 진지한 것은 억압으로 다가온다. 최대한 가볍고 부담 없고 경쾌해야 한다. 개인들 탓을 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중압감이 우리더러 깃털처럼 가벼워져라 요구한다. 영혼의 19세기는 이제 철 지난 유행, 앤티크숍의 진열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어째서 그 많은 음반 중에 쇼스타코비치에 손이 닿았을까 생각해 보니 진지함을 도모하고자 할 때 표준이자 상징처럼 그가 인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위대한 교향곡의 역사에서 최후의 불꽃처럼 여기는 것이 말러의 작품들인데 수정되어야 할 견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들어 작곡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편이 버티고 있다. 제5번의 위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1시간20분이나 소요되는 제7번 ‘레닌그라드’, 유대인 대량 학살 현장을 곡명으로 하는 제13번 바비 야르(Babi Yar), 베이스와 소프라노 음성이 음산하게 주고받는 제14번 등의 감흥은 참으로 각별하다. 음악에는 야채수프 같은 것도 있고(하이든 현악곡), 생강같이 톡 쏘는 것(바르토크)도 있다고 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간에 마냥 부담을 주는 한약이 아닌가 싶다. 글린카를 출발점으로 하는 러시아 로맨틱 내셔널리즘 전통의 구현자로서, 거기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음악의 창안자로서, 동시에 베르크·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은 현대적 감성의 소유자로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세계는 무척 거대하고 복잡하게 다가온다. 모범과 표준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오소독스(정통)의 억압을 견딜 수 없어 했던 큰 인물로 사상가는 루카치, 작가는 솔제니친을 든다면 음악으로는 단연 쇼스타코비치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은 서방이나 자본주의를 동경하거나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어디에도 없는 곳을 꿈꾸어야 했던 것이 그들의 고뇌였다. 그들은 존재의 개별적 영역, 집단을 벗어난 사적 영토를 포기할 수 없는 방외인(方外人)이었다. 자본주의 속에서 그 혜택을 입고 살면서도 자본주의를 혐오해 마지 않는 이 땅의 지성들에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역설적인 동병상련을 안겨준다.

쇼스타코비치도 물론 순정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추구했다.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 op.87’ 같은 곡이 그렇다. 총 24곡으로 근 3시간에 육박하는 이 피아노 솔로 곡은 그의 선배 라흐마니노프의 같은 형식의 곡 ‘두 개의 전주곡집 op.23, 32’와 비교해 들으면 매우 흥미롭다. 쇼스타코비치는 마치 ‘자, 잠시 모차르트 시대를 여행하겠습니다’ 하는 듯이 단순명료한 악상을 제시한다. 무언가 중압감에서 해방된 상태를 구현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걸작으로 칭송받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인생의 멍에가 전편에 흐르는 듯이 느껴진다.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작이 교향곡과 수가 같은 현악4중주 15곡이다. 이 곡들에는 그의 현대음악적 취향이 담뿍 들어 있다. 편안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무언가 ‘있어 보이는’ 면으로는 바르토크 곡들 못지않다. 당의 비판을 피해 가면서 그의 탈소비에트적이고 사사로운 감성을 마음껏 표출한 장르로 여겨져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안겨 준다. 15곡 중 몇 번 곡을 더 나은 작품으로 여길지는 잘 판단이 서질 않는다.

정명훈이 바스티유 오페라를 지휘한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그는 일생 작품을 통해 생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의문을 표현했다. 그런데 또 하나 그의 작품 속에는 ‘통렬하게 빈정거리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아직 그 빈정거림을 접하지 못했다. 당으로부터 자아비판을 요구받았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같은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아직 들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마냥 비장하기만 한 예술가가 빈정거린다면 어떻게 표현한 건지 궁금하건만 시간은 빨리 가고 음악은 너무 많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번 진지해 보겠다고 쇼스타코비치를 틀었다가 대실패를 맛봤다. 어디 두고 보자. 포기하지 않을 테다. 앞으로 방문객마다 쇼스타코비치 고문을 할지도 모른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