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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대장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

요즘 산악계의 대세는 ‘알파인 등반’이다. 보조 산소기구나 고정 로프, 셰르파의 도움 없이 최소 인원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정상에 도전하는 것이다.
등로주의(登路主義)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기존 등정주의(登頂主義)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만 정복하는 게 능사인가’라는 자문(自問)이다. 수십 명이 팀을 이뤄 올라가 먹고, 싸고, 버린다. 셰르파와 동료 대원이 루트를 개척하고 고정 로프를 설치해 놓으면 이를 잡고 정상에 오른다. 등정을 위해 설치했던 로프와 온갖 쓰레기들을 남겨두고 내려온다. 이런 식으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섭렵하는 피크 헌터(Peak Hunter)는 더 이상 존경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영재 칼럼


박영석 대장이 ‘신루트 개척’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이어 남극점과 북극점까지 정복함으로써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지만 박 대장은 ‘알파인 방식’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남들이 가지 않은 새 길을 열고자 했다.

2009년 5월, 박 대장은 신동민ㆍ강기석ㆍ진재창 대원과 함께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그런데 귀국 후 등정보고회를 지켜본 산악인 사이에서 “코리안 신루트가 기존 루트와 일부 겹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8400∼8600m 지점에서 유고슬라비아루트(1979년 개척)를 거쳐 갔다는 것이다. 산악계는 일부 구간이 불가피하게 겹쳐도 용인해주는 관행에 따라 신루트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대장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고 한다.

이번에 사고가 난 안나푸르나 남벽 도전을 위해 박 대장은 또다시 신동민ㆍ강기석 대원과 팀을 꾸렸다. 그러고는 “안나푸르나에서는 무결점 신루트를 개척하겠다”고 거듭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그런데 안나푸르나 남벽에는 8개 이상의 기존 루트가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박 대장은 눈사태가 빈번히 일어나는 골짜기 하단에서 출발해 남벽 중에서도 가장 경사가 급한 서쪽 벽을 관통하는 코스를 택했다. 그러고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박 대장이 너무 ‘무결점 신루트’에 집착한 건 아니었을까. 산악계 사람들은 “영석 형만 알겠지요”라며 말을 아낀다.

원정대의 규모가 너무 작았던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도 있다. 박 대장은 출국 2주 전인 9월 19일 “(3명 외에) 함께할 등반대원을 더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하면서 단 3명의 등반대원으로는 버겁다는 것을 박 대장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세 사람만이 안나푸르나로 떠났다. 국내 산악계는 히말라야 거벽등반을 할 만한 산악인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 대장 사고를 계기로 ‘상업등반’에 대한 논란도 거세졌다. 한 중견 산악인은 지난 3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등반은 기업체 홍보마케팅 차원의 등반이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성과주의의 연속선상이었고,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산악인의 비극이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박 대장은 등산용품업체 소속이고 이번 원정도 그 회사의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산악인은 “원정대의 첫 번째 목적은 등정 성공이 아니라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원사에 등 떠밀려 원정을 떠난다면 그건 스폰서의 노예지 산악인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산악 언론인은 “후원사의 지원이 있으면 좀 더 풍족하게 다녀올 수 있겠지만 스폰서가 없다고 해서 원정을 못 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장의 성격상 후원사의 압력에 밀려 준비 안 된 원정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하지만 자신과 후배들의 생계와 원정 경비를 지원해 주는 후원사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산사람들의 어깨를 누르는게 배낭의 무게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더 숙연해진다. 지난 3일 박 대장과 신동민ㆍ강기석 대원의 합동영결식이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사람들은 박 대장과 두 대원의 높은 뜻과 도전정신을 기렸다. 그들은 지금 히말라야의 품에 안겨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박 대장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우리 곁에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면 그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위험한 코스를 택해야 했는지,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마음 속 부담감이 얼마나 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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