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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버드’ 게임에 숨은 코드

2010년 전 세계 스마트폰을 뜨겁게 달구었던 앱이 있다. 바로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7억5000만 회, 매월 4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자랑하는 앵그리버드란 게임이다. 이 게임은 돼지에게 알을 빼앗긴 성난 새들이 새총으로 자신의 몸을 날려 돼지를 죽이는 게임이다. 무척 단순하면서도 흔한 게임 중 하나다. 그런데 왜 이 게임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며 경이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 훨씬 더 정교하고 재미있는 게임도 많은데 말이다.

이 게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 게임의 세계는 두 개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성난 새들의 세계다. 새들은 잔뜩 화가 나 있는 모습이고 게다가 매우 소란스럽다. 어떤 새들은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이 폭탄 자체로 변한 것도 있다. 또 다른 한쪽은 살찐 돼지의 세계다. 이들은 나름대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살찌고 만족스럽게 사는 모습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게임의 방식이다. 게임은 새총으로 새가 자신을 날려 돼지의 성을 무너뜨리고 돼지를 죽이는 방식이다. 기존의 게임은 새가 총알이나 미사일 폭탄 등을 날려 목표를 제거하면 됐다. 그러나 앵그리버드는 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몸 자체가 무기가 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낳은 알을 떨어뜨려 폭탄으로 사용한다. 즉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게임에는 승자가 없다. 말하자면 ‘너 죽고 나 죽자’의 논리가 지배한다. 모든 것은 파괴로 끝맺는다.

남의 것을 빼앗아 호화로운 성 안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배부른 돼지, 싸울 것도 없어 자신의 몸밖에는 던질 것이 없는 불쌍한 새, 바로 세상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인 동시에 가진 자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원한에 찬 피해의식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그렇게 우리의 피해의식과 분노를 충족시켜 준다.

그런데 이 게임이 충족시켜 주는 것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남을 파괴하는 동시에 자신을 학대하고 처벌받고자 하는 우리의 자학적 소망의 충족이다. 이 게임은 새와 돼지를 통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아성에 숨어 사는 기득권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가진 것을 착취당하고 사는 힘없고 빽 없는 불쌍한 평민인 자신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이 혐오감과 분노는 결국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파괴로 끝을 맺는다.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도 죽어야 한다. 오직 전멸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외로움과 무력감에 시달릴 때, 자신이 가치 없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자신에 대한 자학과 죄책감의 이중(二重)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고통과 학대를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 주는 관계 맺음의 방식으로 여긴다. 이들은 고통과 학대를 통해 쾌감과 안정감을 얻으며 고통을 당하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나르시시즘적 충족감을 동시에 추구한다.

알을 지키지 못하고 돼지에게 빼앗긴 새의 분노, 그러나 어찌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한 자신을 보면서 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기의 몸을 던져 상대에게 복수하는 길뿐이다. 그런 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게임을 다운받고 새총에 자신의 몸을 싣고 돼지처럼 살이 찐 기득권을 향해 자기의 작고 힘없는 몸을 날린다.

어쩌면 이 게임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무력감과 희망의 상실, 자포자기적 분노와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 그리고 자기 연민과 사도마조히즘적 욕망의 충족이라는 숨겨진 코드를 반영한 게임이어서 그 많은 사람을 조그만 휴대전화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현대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거나 지배하고 있고, 이 심리를 읽어내는 사람들에게 성공과 부가 돌아가고 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심리적 압박감과 갈등 속에서 살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앵그리버드 말고 ‘해피버드’란 게임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돼지들이 성벽을 허물고 나와 꽃밭과 과수원을 가꾸고, 여기에 몰려든 벌레들을 새들이 먹어 없애주는, 그런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예쁜 게임이 나왔으면 좋겠다.



김혜남 52세. 고려대 의대 졸업.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 수상, 저서로 『어른으로 산다는 것』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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