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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흰개미

학술행사 참석차 최근 방문했던 인도네시아에선 더운 기후 때문에 현지인들이 생선회나 날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팜유에 볶거나 튀긴 음식이 주류다. 밥도 볶은 것(나시 고랭)을 즐겨 먹는다. 부패를 고려한 생존전략이 음식문화로 정착된 셈이다.

자연에 대한 생존지혜와는 별개로 국가의 생존과 발전 전략의 핵심이 ‘부패 고리의 단절’이란 것은 지구적 상식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반(反)지구적 상식을 보았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자카르타 시내를 달리던 자동차가 길을 잘못 들어 유턴(U-turn)하는데 반대 차선에서 진행하는 차를 막아준 대가로 돈(U-turn fee)을 주는 것을 목격한 건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구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인도네시아를 ‘부패왕국’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네 이웃이 염소를 훔쳐 갔다고 해서 그를 법정에 끌고 가지 말라. 일이 해결될 때까지 네가 경찰과 판사에게 바쳐야 할 비용 부담으로 소까지 잃을 것이다”라는 인도네시아 속담이 유턴 피(fee)를 주고받는 현장을 목격한 나에겐 피부로 와 닿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지 지수(CPI) 조사 결과에서 인도네시아는 178개 국가 중 110위를 차지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열대우림의 딥터로카프(dipterocarp) 삼림이 지탱해 왔다. 일반적으로 열대림 1㏊에서 10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내면 삼림 망에 큰 피해를 주고 삼림 전체가 훼손된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숲에선 1㏊당 26그루의 나무를 베어내도 생태계가 상처를 딛고 복원되는 비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항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이었는데, 벌목 채취 가공업을 하는 교민이었다.

비법은 딥터로카프 뿌리에 잘 달라붙는 진균류다. 이 균은 나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과 영양소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나무에 해로운 다른 균류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다 해마다 발아 장소를 제공해 주고 어린 나무들을 비바람과 초식동물들로부터 보호해 주기까지 한다. 나무들은 진균류 생존에 필요한 탄수화물을 제공하는 등 ‘상호부조 시스템’을 작동한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진균류에 관해 뭘 알았을 성싶지는 않다. 하지만 삼림자원이 어떤 권력을 가져다줄 것인지는 잘 알았던 것 같다. 삼림 관할권을 잘게 쪼개 수하의 장군들에게 벌채권을 나눠줬다. 그들의 충성 덕에 수하르토는 32년간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으며 나라를 통치했다. 장기독재와 부패의 정권구조는 진균류라는 단순하면서도 믿음직한 기반을 응용했던 것이다. 이게 없었다면 수하르토 정권은 일찌감치 무너졌을 것이다. 정치 시스템이 생태 환경시스템에 의해 작동되었지만, 그것의 영속성은 부패라는 사회시스템의 오작동 요인 때문에 중단되기도 한다. 수하르토 정권이 결국 붕괴한 이유다.

지금 인도네시아는 발전의 용틀임을 하고 있다. 개발 붐을 타고 밀려드는 외국 기업인이 많아 호텔 예약이 쉽지 않을 정도다. 세미나에서 만난 현직 부통령의 정무비서는 한국 기업이 돈벌이에만 혈안이고 자국에 대한 기여가 부족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배짱이 담긴 충고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부패의 흰개미’가 경제의 밑동을 부지런히 갉아먹고 있음을 그네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흰개미는 나무의 셀룰로오스라는 성분 때문에 나무를 갉아먹는다.

배흘림 양식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이 흰개미에게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흰개미 탐지견(watch dog)을 이용했다. ‘부패의 흰개미’를 박멸하기 위한 탐지견인 부패 감시자(watchdog)가 없다면 국가체제의 밑동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알 길이 없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 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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