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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상징하는 사각 캡슐,그 속에서 인간이 벌이는 사투

사각 캡슐에 갇힌 인간. 빨간 눈의 로봇카메라가 그를 주시한다. 빛이라고는 로봇카메라가 비추는 조명뿐이다. 불안하다. 긴장된다. 그리고 숨 막힌다. 정장 차림의 남자가 천천히 회전한다. 느리게 움직여 의자에 걸터앉아 건조하고, 주의력 깊게 팔을 뻗는다. 회색 벽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가 유일한 벗이다. 미세하지만 신경을 거스르기에 충분한 소음 사이로 청명한 단음이 울린다. 캡슐 벽에서 자력이 발생하는지 남자는 벽으로부터 떨어질 수가 없다. 그 순간, 가로 3m, 세로 2.5m의 캡슐이 작아지기 시작한다. 캡슐 높이는 이제 남자의 키와 같다. 웨스턴 음악이 흐르고, 자력에 저항하듯 파충류의 모습으로 숨 막히는 공간을 탐색하는 남자. 거꾸로 선 채 팔짱을 끼고 막막함을 달랜다.

‘프레스’가 드디어 한국을 찾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해외초청작이다. 2008년 영국 초연 이후 3년간 17개국 60여 개 극장에서 200회 공연이라니, 분명 세계적인 대성공이다. 400m 허들 육상선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안무가 피에르 리갈. 안무경력 8년 동안 만든 5편의 작품으로 1년에 150일 이상 공연한다. 어느 거장보다도 많다. 지난해엔 신작 ‘마이크로’로 아비뇽축제 폐막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폭풍성장이다. 놀랍다.

그러나 양두구육(羊頭狗肉)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극도로 축소된 공간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신체표현은 그리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60분 동안 이어진 솔로는 단 1초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몰입을 이끌었다. 미니멀한 공간 속에서 자유자재로 펼치는 신체리듬, 곡예 같은 유연한 몸놀림, 의자를 이용한 오브제와의 결합, 라이브로 정교하게 짜 맞춘 음향, 그리고 그 안에 살아있는 유머. 1m도 안 되는 높이로 낮아져 버린 공간 속에서 미끄러지듯 반복되는 빠른 회전은 극의 절정을 이룬다. 로봇카메라와의 사투 끝에 로봇의 붉은 눈을 입에 넣은 남자는 기계인간이 되어 끝까지 투쟁한다. 하지만 결국 틈새 없이 줄어든 공간 사이에서 샌드위치맨이 되어 프레스(압사)당한다.

그런데 비극적 결말이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며 이데아 곁으로 간다고 행복해한 것처럼 모든 압박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짐이 해피엔딩과 상통했다. ‘프레스’는 ‘리버티(자유)’를 남겼다.
리갈은 사회·정치적 프레스(압박)와 기계문명과 대립하는 인간을 매우 흥미롭게 다뤘다. 문화적 차별, 이념적 분쟁 등 ‘대립’은 리갈이 꾸준하게 다루며 깊이를 더해가는 소재다. 2012년 9월 한국 LG아트센터와 스위스 비디로잔극장 공동 제작으로 서울에서 신작을 발표한다. 여섯 번째 안무작 ‘Theatre of Operations’다. 모든 대립이 발생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초연 이후 유럽투어까지 계획 중이다. 처음으로 10여 명이 등장하는 리갈의 신작이라는 점과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 무용수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컨템퍼러리 예술의 특징은 새로운 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표현수단을 가리지 않고 혼합하는 데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개념을 물려받았다는 증거다. 퓨전, 크로스오버, 탈장르, 전방위, 융합, 복합, 다원. 이 모든 용어가 각각의 정의를 달리하면서도 결국 공통적으로 ‘토털 시어터’를 꿈꾼다. 최근엔 ‘새 개념’이라는 모호한 명칭이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개념적으로 달라도 일성(一性)을 갖는다는 존재론을 들먹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언젠가부터 멀티디시플리너리(Multidisciplinary)라는 이름 아래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를 규정하고자 하는 성급함이 아쉽게 느껴진다. 무용작품 ‘프레스’가 보여준 신체와 움직임에 대한 진지한 탐구야말로 컨템퍼러리 댄스, 나아가 컨템퍼러리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요즘 ‘비빔밥’이 넘쳐나는 공연계에서 제대로 된 음식 만나기가 쉽지 않다. 화려하게 다양한 재료는 있는데 적당한 배합으로 잘 비빈 손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재료 하나하나를 정성껏 고르는 초심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넘쳐나는 ‘비빔밥’ 속에서 소 한 마리를 넣고 제대로 고아낸 진득하면서도 깔끔한 설렁탕 한 그릇, 소면 사리까지 넣어서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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